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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평화를 위한 忍苦의 세월

출발! 양의해, 강원 홍천 유산양목장 용연호씨를 찾아...

뉴스관리자 편집장 기자  2003.01.02 1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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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괘석리, 해발 6백50m의 초원농장. 잘 조성된 초지위에서 유유히 풀을 뜯는 산양. 그야말로 평화 자유 행복이 가득할 것 같은 그림같은 풍경이다.
2003년은 양의 해. 그래서 찾은 곳이다. 그러나 농장안에 들어서서 농장주인 용호연씨(61세)를 만나면 그런 그림같은 풍경은 환상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 마치 호수위의 오리가 겉으로는 평화롭게 보이지만 그런 평화로운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물밑에서 수없이 바쁜 발놀림 하는 모습과 같다고나 할까?
용씨의 "처음부터 유산양을 사육할 것이 아니라 소를 사육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오늘 얼마나 어려운 가운데 유산양을 사육하고 있는지 짐작케 한다. 용씨는 70년대 10여년의 농협 생활을 청산하고 80년대에 들어와서 소를 사육했으나 때마침 당시 온 농촌을 뒤흔든 소파동으로 84년 3백마리에 가깝던 소 사육마리수가 3년후인 87년 30마리로 줄어드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러던 차에 임대한 도유림에 군부대가 들어서자 이곳으로 축산의 터전을 옮겼다고 한다.
94년 이곳에 초지 조성을 하고, 뉴질랜드로부터 유산양 6백마리를 수입해서 20명이 부푼 꿈을 키웠다. 이들 농가들이 유산양을 사육해서 우유를 생산하면, 홍천축협이 우유를 가공하고 판매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그렇게 꿈을 키워 나갔다. 그러나 산양유를 가공해서 판매하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농가에서 사시사철 꾸준하게 산양유를 생산하지 못하고 겨울철에는 산양유를 납유할 수 없게 되자, 그나마 개척해 놓은 고객마저 하나둘 발길을 돌림으로써 결국 홍천축협이 경영난을 견디다 못해 이 사업을 포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홍천축협도 20명의 조합원을 위해 절대 다수 조합원들이 희생할 수 없다는 논리에 어쩔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해서 적지 한때 3천마리가 넘었던 유산양은 대부분 북한에 보내지고, 이제 불과 수백마리가 남아 있는데 용씨가 1백마리 남짓한 유산양을 사육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유산양의 연간 평균 산유량은 3백∼4백kg수준. 가격은 1등급 기준 kg당 겨울엔 1천4백원, 여름엔 1천2백인데, 문제는 역시 판로다. 개인 유업체가 있어서 산양유를 납유하기는 하지만 유대 지급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한다. 얼마전에 6개월만에 유대를 받았는데 그것도 전액이 아닌 절반밖에 받지 못했다는 하소연이다.
저 푸른 초원위에 산양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데 산양이 그렇게 풀을 뜯기까지 용씨가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용씨는 "미련하니까 하지요"라며, 할수만 있다면 소를 사육하고 싶다고 솔직히 털어 놓는다. 그렇지만 아직 산양유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다. 산양유의 생산성이나 영양적 가치를 감안할 때 마케팅만 잘 하면 해볼만한 사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농가형 유가공공장을 설치하고 산양유를 자체 가공하고 판매할 사람이 있다면 생산엔 자신이 있다며 동업자가 나타나기를 희망하기도 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축산인으로서 산전수전을 다겪은 용씨는 축산부문의 자금 지원정책과 관련 따끔한 지적을 잊지 않았다.
"정부의 축산자금 지원은 축산인들의 빚을 불가피하게 키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초지를 조성해서 소를 키우고 소득을 얻자면 최소한 5년은 소요되는데 자금은 그 이전, 혹은 막 초기 소득이 발생할 참에 상환해야하니 결국 그것이 빚이 됩니다. 자금의 성격에 따라 이자와 상환 기간을 합리적으로 적용하지 못한 정부가 결국 농가 부채 문제를 자초한 셈입니다"
이같이 불합리한 축산자금 지원이 어디 초지 조성에서 뿐이랴. "우리가 열심히 축산을 하고자 했을 뿐 무슨 잘못이 있어서 이렇게 고생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는 용씨의 이같은 푸념이 새해부터는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장지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