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돼지엄마’의 이(e) 편한세상

뉴스관리자 편집장 기자  2000.12.04 17:59:07

기사프린트

기고/김수자

가끔씩 나는 전생에 내가‘돼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 별명이 자칭 ‘돼지엄마’인데다 내가 누리는 기쁨이나 슬픔의 대부분이 돼지에게서 비롯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돼지 시세 따라 울고 웃고, 돼지 성적따라 회비가 엇갈리니 말 그대로 돼지인생이 아니고 뭔가. 아들아이가 축산대학을 갔으니 아마도 돼지와의 인연은 대물림을 할 지도 모를 일이
다.
지난달에 나는 결혼 스물 여섯 해를 맞았다. 마침 돼지값이 사상 최악으로 폭락한 때라 일생 중 가장 슬픈 기념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대맞춰 서울에서 내려온 아들은 어미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한답시고 단골 식당에서 돼지 삼겹살을 사주었다. 결혼 기념일에 아들과 둘이 먹는 돼지고기 맛은 유별난 것이었다. 이런 저런 감회가 없을 수 없었는데, 남편을 만나 돼지와의 첫 인연이 시작되던 날부터 태몽으로 돼지꿈을 꾸고 아들을 낳은 일, 밤새워 돼지새기를 받던일, 돈사에서 걸음마를 배운 아이들,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15년간 아이들 등하교 기사노릇, 질병으로 돈사의 절반을 비웠던 일, 대식구의 식사준비로 시장바닥을 헤매던 일, 일 부자 집 맏며느리로 태산 같은 일 일 일…. 온갖 크고 작은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수많은 추억 가운데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주일간의 ‘돼지농장실습’이다. 나는 5년전에 전북 익산의 한 양돈농가에 1주일간 실습을 간 적이 있다. 명색이 20여년 경력자로서 (자칭‘돼지엄마’라는 별명이 붙은 주제에) 새삼스럽게 실습생이 되어 떠나는 기분은 여러모로 복잡하고도 미묘했다. 그러나 배우는데는 나이가 없으며, 도둑질 빼고는 모두가 배워볼 만하다는 게 나의 지론이라 나는 자원해서 실습을 떠났던 것이다.
내가 택한 농장은 전국에서도 성적이 최고로 좋다는 곳으로, 부부가 사이좋게 농장일을 분담하는 ‘가족농장’의 표본이었다. 나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열심히 한 수 배워볼 요량이었다. 그래서 요즘 정치권에서 외쳐대는 ‘개혁열풍’을 우리 농장에다 일으켜 볼 참이었다. 실습을 떠나기 전에 그쪽 농장으로부터 몇 가지 준비물을 지시 받았다. 작업복 두벌, 장화, 세면도구, 기록장, 숙박비(어쩐 이유인지 나에겐 숙박비가 면제되었는데 그 보답으로 실습이 끝났을 때 한 턱 냈음) 등등……. 준비물을 챙기면서 나는 성공하는 사람에겐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도 본전을 뽑아야지. 나는 철저히 ‘벤치마킹’을 해볼 작정이었다. ‘왜’라든가 어떤 종류의 질문도 배재한 채 내가 선택한 모델을 24시간 그림자처럼 다라 다니기로 했다. 그 집
안주인이 밥을 먹으면 나도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면 나도 설거지를 하고, 그녀가 커피를 마시면 나도 커피를 미시고, 그려가 농장에 가면 나도 따라 가고, 돼지에게 사료를 주면 나도 사료를 주
고, 물을 주면 나도 물을 주고……. 그 집 부부는 평소의 대화도 오로지 돼지이야기 뿐이었다. 참으로 완벽한 모델이었다.
한편으로 아무리 돼지를 키우기로서니 사람이 어떻게 돼지 이야기만 하고 살 수 있는가? 여자로서의 직감이 갸우뚱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혹시 고민이나 갈등 같은 것도 있나요?”
사나흥이 지나면서 우리는 마음을 열고 고통을 나누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우들의 고민은 닮은꼴을 하고 있었다. 공동의 고민이 주는 유대감은 큰 것이다. 탤런트 채시라가 가리키는 ‘이(e) 편한세상’은 우리에겐 도무지 그림의 떡이었다. 우리가 기대하는 좋은 세상이란 비까번쩍한 호화 아프트에서 손가락 하나로 만사해결하는 초첨단 생활이 아니라 그저 ‘돼지 값이 좋으면 그게 좋은 세상’이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농촌주부들의 공통된 바람이란 한결같이 아이들 학비 걱정 안하고, 빚 없고, 일 때문에 골병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런 소박하고 수수한 세상은 언제나 오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