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농협조직에서 사용빈도가 가장 높은 구호는 ‘통합농협 하나되기운동’이다. 농협이 지역별로 치른 농·축협 조합장들의 남해화학 견학이나 한마음전진대회는 ‘하나되기’라는 구호아래 이뤄진 행사들이다. 이런 행사들에 앞서 안성연수원에서 합동연수도 했다. 그런데 농협은 이런 행사와 교육만으로는 하나되기가 미진하다고 생각했는지 최근에는 CI약칭까지 제정해 축협명칭을 축산농협으로 통일할 것을 회원축협에 시달했다. 전말(顚末)이야 어찌되었든 중앙회 통합을 계기로 회원조합도 ‘하나’가 되어야 하고 대외홍보를 통일해야 한다는 논리는 맞다. 그러나 약칭통일이 ‘하나되기’차원이라면 앞뒤가 맞지 않을뿐더러 협동조합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겨야할 의견수렴 절차를 간과한것임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축협인들이 “통합농협 등기부의 잉크가 마르지도 않았는데 일선축협의 이름마저 바꾸느냐”며 반발하는 것은 20년이상 사용해온 이름을 잃는것에 대한 서러움도 서러움이지만 농협의 일방통행이 한도 끝도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설령 통합이 되었으니 명칭도 통일해야 하고 그것이 합리적이라고 하자. 그렇더라도 의견을 수렴하며 설득하는 절차를 무시한채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것은 축협인들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처사라고 밖에 할수 없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서는 하나되기란 요원한 것이다. 사람 이름이 단순히 글자만의 조합(組合)이 아니듯 조직의 명칭도 그 구성원들의 애환이나 정신이 담겨 있기에 함부로 바꾸지 않는 것이다. 대기업들이 CI변경을 할때 수십억원이 투입되는 충분한 준비기간을 거치며 공을 들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축협’이란 명칭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20년이란 긴 시간과 천문학적인 돈이 투자된 무형의 자산이기 때문에 이걸 바꾸려면 모든면에서 종전의 가치를 압도할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수 있어야 한다. 과연 ‘축산농협’이 ‘축협’보다 일선축협에 보다 나은 자산가치를 보장할수 있을까? 가까운 동네정육점을 두고서도 짜증나는 교통체증을 마다 않고 굳이 축협판매장을 찾는 주부들의 발걸음이나, 중앙회 지침대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가 축산물판매량이 격감한 한 일선축협의 사례는 축산물을 판매함에 있어 ‘축협’만한 이름이 없다는걸 보여주는 본보기다. ‘축협’은 한우전문점을 통해 등급제나 부위별 차등가격제를 이만큼이나 정착시키면서 소비자들에게 “저곳에 가면 최소한 속지는 않는다”는 믿음을 심어준 정감이 묻어나는 브랜드인 것이다. 사료판매도 ‘축협’과 ‘축산농협’중 어떤 것이 더 어울릴까를 생각하면 축산물판매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약칭통일문제는 축협인들로 하여금 ‘농협과는 진정으로 하나되기가 불가능하다’는 이질감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정대근회장의 시정약속으로 일단락된 문제를 새삼스럽게 거론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농협의 잣대로 잴땐 별일 아닌 일이 축협에는 가슴아픈 일일수도 있다는 점을 다시한번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다. 어쨌건 정회장의 시정약속은 늦은 감은 있지만 잘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