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농촌 문제를 생각해보면 가슴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마치 10년전 농산물 수입 개방 위기 상황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더욱 그렇다. 당시 우리 농촌과 농민들은 농산물과 쇠고기 등 농·축산물 수입 반대를 최대 현안으로 삼았고 그 함성이 온 국토를 뒤덮었을 때의 상황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의 분위기는 농가 뿐만아니라 정치권·학계·종교계는 물론 도시민 할 것 없이 모두 하나 같이 한목소리를 냈고 동학혁명이래 가장 격렬한 농민 시위가 이어졌다. 그 때에도 수입 개방 반대에 못지 않게 개방에 대비한 철저한 대책을 준비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하지만 이같은 나름의 조언 그 자체가 반농민적 행위로 몰리기 십상이어서 개방 준비 의견을 제대로 언급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농축산물 수입 개방을 농민과 함께 반대해온 김영삼정부도 결국 쌀은 관세를 유예받는 조건으로 최소 물량만의 수입을 허용했고, 축산물 등 다른 품목 역시 저율 관세를 부과하는 선에서 수입 개방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토록 완강하던 우리 농민들의 절규가 도도히 흐르는 국제 시장질서에 철저하게 외면당한 아픔 그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김영삼 정부는 총리를 비롯한 7명의 각료를 경질한바 있다. 개각 성격은 농민들의 격앙된 반대 여론을 희석시키기 위한 국면 전환용 개각이었다는 뒷얘기를 기억하게 된다. 김영삼 정부는 수입 개방으로 어려워지는 농업을 위해 42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관련법이 만들어지고 42조원이 연차적으로 투입됐다. 축산분야는 축산발전장기대책의 일환으로 지난해까지 매년 1조원의 막대한 예산이 투융자 지원됐다. 축산 단지가 새로이 조성되고 규모화 경쟁이 불붙었다. 부작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규모화 정예화에는 일단 많은 성과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쌀 등 경종농업은 어떠한가. RPC사업과 농지정리는 물론 농산물의 브랜드 사업을 비롯 농업기반 조성사업에 다각적인 대책을 세웠다. 하지만 오늘에 와서 개방대책으로 쏟아 부은 막대한 예산이 엄청난 농가 부채로 또 다른 농촌 문제를 야기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농업 인구는 꽤나 줄었지만 농민 의식과 단체들의 운동 마인드는 10년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개도국 지위를 연장하자는데 공감대가 형성된 정도다. 학계도 그동안의 농정에 대한 점수를 매기는데는 인색하지만 DDA대책에는 제안을 아끼고 있다. 농민 감정을 건드리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이제는 당면한 DDA협상이다. 어떻게 우리의 뜻을 관철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참여 정부 첫 농정 최고 책임자인 김영진장관 행보가 주목된다. 단연 농정의 최대 현안은 DDA대처다. 김장관은 지난번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미국을 방문했다. 농림부 장관이 대통령을 수행한 것은 건국이래 처음있는 일이라고 한다. 김장관은 미국 농무장관과 별도로 만났다고 한다. 상호 첫 만남이긴 하지만 DDA협상 때 우호적인 협력을 얻어내기 위한 포석인데 사실 만남 자체 만으로도 이해의 폭을 넓히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김장관은 또 지난달 22일부터 29일까지 제네바 등 구라파 출장을 마치고 30일 귀국했다. 이번 출장도 DDA협상을 앞두고 인도등 우리와 입장을 같이하는 국가와 사전 포석의 외교 활동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농민 여론과 함께하는 개도국 지위 확보가 이번 DDA협상에서 관철되지 못할 경우에 대한 대책이다. 우리는 지난날 농산물 수출국들의 첨예한 이해 관계를 극복치 못하고 미흡하지만 쌀은 지키고 수입 개방을 허용하는, 고배의 쓴잔을 마시고만 아픈 경험을 했다. 우리 통상 외교의 한계를 나탄낸 것이었고, 이것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통상 전문가들의 분석들은 또다른 우려를 금할수 없게 한다. 참여정부는 벼랑 끝까지 미뤄온 쌀 수입 개방을 슬기롭게 대처하지 않으면 안될 운명적인 부담을 안고 있다. 당장은 그동안 농촌에 지원된 정책 자금들이 농민들의 부채로 고스란이 남아 있는 것을 대선때 공약했듯이 농민들의 무건운 짐을 벗겨주는데 필요한 예산 확보가 발 등에 불이고, 참여 정부의 농촌과 농축산업에 대한 비젼 제시에 따른 투자 재원 확보도 현안임이 틀림없다. 아무튼 어려운 시기에 농정 최고 책임자인 김영진 장관의 책무가 막중하다. 15년 동안 국회에서 농어촌을 지키기 위한 왕성한 의정 활동 경험과 그 경륜을 농정에서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농업 통상외교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는 동시 산업과 복지, 즉 운명적인 농축산업의 국제 경쟁력 확보와 농민 복지 증진을 이룩할 수 있는 선 굵은 농정 수완이 도마위에 올려져 있는 셈이다. 벼랑 끝에서 개도국 지위 연장 카드에 매달려 미완의 협동조합 개혁을 비롯한 농정 현안들을 뒤로 한채 10년전의 경험이 담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