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조직 농협이 개혁압력에 직면해 있다. 농협에 대한 작금의 개혁압력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과거의 개혁은 주로 외부로부터의 압력이었지만 지금은 내부적인 압력까지 겹쳐 있다. 농협은 지금까지 정부나 농민단체등 외부의 개혁압력으로 인해 수세에 직면할때마다 특유의 ‘조직력’을 극복해왔다. ‘국민의 정부’시절엔 수세적 상황에서도 농·축협 통합으로 오히려 몸집을 불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조직력과 놀라운 복원력(復元力)으로 개혁국면을 헤쳐나온 농협으로서도 내부적 압력이 겹친 현상황은 결코 간단치가 않은게 사실이다. 농협 입장에서 개혁주문은 잠재적이면서, 그것이 주기적으로 노출되어 강한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거대조직 농협이 주기적으로 개혁요구에 밀려 허둥지둥하는 것은 그동안의 개혁이 수요자인 회원조합이나 농민조합원의 기대에 부응치 못해 농촌현장에 튼튼한 뿌리가 없기 때문이다. 개혁다운 개혁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은 바로 이러한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나라 농민의 대대수가 조합원이고, 놀라운 조직력을 자랑하는 농협이 개혁국면에서는 항상 방어논리를 찾느라 허둥대며 내부단속을 위한 조직관리에 치중하는 왜소한 위상을 드러내는 것은 안타까움을 넘어 차라리 안쓰러울 지경이다. 농협이 농촌현장에 뿌리를 깊게 내린 명실상부한 생산자단체라면 개혁국면에서 허둥대거나 수세에 몰릴 필요가 없으며, 개혁국면을 오히려 농민조합원의 이익대변을 위한 기회로 전환시킬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농민조합원은 물론이고 외부에서 조차 농협을 명실상부한 생산자단체로 보는 시각은 찾아보기 힘든게 사실이다. 정부의 필요에 의해 출범한 농협은 태생적 한계와 한국적 현실속에서 정책의 도구로 기능하는데 중점을 두어 왔다. 농협은 이를 ‘정부와 농민을 연결하는 가교역할’쯤으로 치부해오면서 비교적 쉽게 조직을 키워왔다. 천문학적 액수의 정책자금 창구를 독점하고 시군금고까지 독식한 것은 오늘날 농협이 내세우는 ‘슈퍼뱅크’로 커올수 있었던 원동력이며 자양분이었다. 정책자금이나 시군금고 독점사례는 농협이 아니면 엄두도 못낼 혜택이기 때문이다. 농협이 누려온 이러한 혜택과 역할은 결과적으로 농촌현장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채 생산자조직으로서 정체성의 위기를 초래한 요인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거대금융기관으로서의 조직논리에 집착한 나머지 정책의 도구역할마저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더욱이 커진 덩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권위주의에 빠져 조직운영에 경직성을 초래함으로써 조합원과 조합위에 군림한다는 비판마저 받고 있다. 이는 농협이 ‘안팎 곱사등’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오늘날 농협이 처한 위기의 본질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농협이 처한 현상황은 변해도 너무 변했다. 수입개방의 와중에서 1차산업의 위상이 갈수록 왜소해지고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어 ‘슈퍼뱅크’에만 안주할 상황이 아니며, 과거와 같은 정책도구 역할 역시 빛이 바래고 있다. 수입개방으로 국내 농업은 그야말로 중병(重病)에 걸려 있고 농민들은 부채에 시달리며 자포자기하고 있는데 반해 농협은 거꾸로 비대해져만 간다는 불만들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개혁은 농협이 진정한 농민의 협동조직으로 거듭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농협은 그동안의 개혁국면에서 보여준 두려움과 방어논리를 과감히 떨쳐버리고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명(名)과 실(實)이 부합되는 농민의 협동조합으로 바로 설수 있다. 본란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버려야할 것은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틀에서 생존의 길을 찾을 때 진정한 개혁을 이룰수 있다는 점이다. 전문조직 육성이나 신·경분리와 같은 민감한 사안이 불거지면 어떻게든 덮어보려는 자세로는 진정한 개혁을 이룰수 없는 것이다. 농협이 농민의 조직이라면 농민이 원하는 협동조합으로 거듭나는 개혁을 외면하거나 부정할 이유가 없다. 태생부터 잘못 길들여진 체질을 과감히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타의보다 자의에 의해 개선되도록 농협의 구성원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야할 과제인 것이다. 개혁의 산물로 이뤄진 농·축협 통합 3주년을 맞아 또다시 개혁을 말하는 농협에 농민조합원과 회원조합이 원하는 개혁을 할 것을 재삼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