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제5차 WTO각료회의는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의 주요분야에서 합의하지 못하고, 각료 결정 없이 9월 14일 종료되었다. 특히 농산물의 경우 수출국과 수입국의 극한 대립 아래 입장 차이만을 확인한 채 선언문조차 채택하지 못하고 폐막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또한 합의를 못했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주장이 별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평가이고 보면, 올해 12월 15일 이전에 제네바에서 고위급 일반이사회를 개최하여 협상의 성공적인 종결을 위해 필요한 결정을 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고 본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시장개방 반대의 의지를 강하게 표명해 나가는 한편, 농산물 시장 완전개방이 대세라는 점을 인정하여 경쟁력 제고 방안을 마련해 나가는데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농업 내부를 들여다보면 쌀을 포함한 경종부문과 한우를 위시한 축산부문과는 협상 합의가 가져오는 영향이 다르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실 축산부문은 경종 부문과는 달리, 그 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시장을 개방해 온 편이다. 이 와중에 수많은 농가가 퇴출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퇴출농가의 몫을 남아있는 농가가 대신함으로써 대규모화를 이루어 경쟁력을 다소나마 제고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축산물 시장개방 내용을 살펴보건대, DDA협상이 원만히 합의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축산분야에 충격으로 다가올 일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DDA협상 합의 여부보다는, 이미 개방된 시장하에서 어떻게 하면 한우산업의 생산기반을 굳건히 지켜 나갈 것인가에 의견이 집약되어야 한다고 본다. 여러 차례 주장한 바와 같이 한우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은 빠른 시일 내에「친환경·명품 생산·유통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즉 생산·경영측면에서는 점차 친환경축산 생산체제를, 또한 유통·소비측면에서는 강력한 브랜드파워를 갖춘 명품의 유통체제를 갖추어 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체제를 갖추어야 만이 비로소 수입쇠고기와 차별화가 가능해 지기 때문이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식품에 대한 인식은 크게 변화하고 있다. 핵심적인 단어를 꼽자면 아마도 품질, 안전성, 신뢰성 등이 될 것이다. 따라서 가격경쟁력이 어려운 현실을 받아들여 품질, 안전성, 기능성 등의 측면에서 차별화 노력을 기울여가지 않고서 경쟁력을 확보할 길이 없다. 이와 같은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기 위해서는 한우산업 관계자 및 농가의 철저한 역할분담이 요구된다. 예를 들면, 정부 및 지자체는 친환경축산 생산체제를 구축한다든가, 유통질서를 재편하는데 재정적인 지원을 할 수가 있으므로 이와 같은 측면에서 지원을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생산자단체 및 한우농가 또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즉 과거의 안이한 의식에서 벗어나 소비자의 요구와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명품, 즉 소비자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한우고기를 생산하지 않고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부 및 지자체의 역할 첫째, 정부는 정책의 신뢰성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나가면서 다소의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축종별, 지역별 여건을 고려한 축산업등록제를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 축산업등록제의 도입을 둘러싼 의견 대립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국내에서 생산되는 축산물의 고품질·위생·안전성 확보 및 동물복지가 향후 축산업 생존의 관건이 되는 바, 향후 소비자들이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역추적시스템(trace back system) 구축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둘째,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명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송아지 생산을 위한 번식단지와 고급육 사양기술을 바탕으로 한 비육단지간의 일관경영체제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개별 농가 차원에서 수행하기란 쉽지가 않으므로 도 및 시·군이 나서서 지역내 일관경영 체제를 마련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이와 같은 사업에 다소의 비판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한우가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제법 큰 시·군의 경우 지역내 일관경영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 나갈 수 있으므로 이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셋째, 도 및 시·군은 정부 정책을 일선에서 수행하는 기관으로서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축산정책을 농가에게 잘 알려야 한다. 실제로 매우 유용한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역의 경우 담당 공무원이 제대로 숙지하고 있지 못함은 물론, 농가에게 홍보가 되지 않아 제대로 이행되고 있지 못한 경우가 있다. 한 예로, 현재 정부는 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 하여금 축산물에 대한 품질인증을 실시하고 있는데, 도 및 시·군 차원의 브랜드사업을 하려면 이와 같은 품질인증 절차를 파악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는 담당자가 있다. 따라서 담당자가 품질인증제도를 숙지하여 품질인증을 받도록 유도하고, 품질인증을 받게 되면 인센티브를 부여해 주는 등 브랜드사업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홍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한우고기의 경우 우수한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함에 있어 마케팅 PR은 쉽지가 않다. 바로 이 점을 누군가가 나서서 해 주어야 하는데, 이는 도 및 시·군이 나서서 담당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도 및 시·군은 한우브랜드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품질인증을 받은 것으로써 품질, 안전성 등의 측면에서 우수한 제품임을 소비자들에게 선전·홍보해 주어야 한다. 예를 들면, 도 및 시·군 차원에서 농협중앙회가 주관하는 우수 농축산물 초청전에 참가한다든가, 서울의 대형백화점에서 열리는 지역특산물전이나 이벤트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생산자단체의 역할 첫째, 조직화를 통한 대규모생산에 앞장서야 한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생산자단체가 브랜드사업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 개인의 능력으로는 소(牛)상인 및 유통업자와의 거래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기가 어렵고, 생산비 절감 또한 쉽지가 않다. 그러나 조직을 만들어 규모를 확대하면 생산비를 줄일 수 있음은 물론, 대외교섭력을 높일 수가 있다. 둘째, 일본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혈통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한우브랜드란 바꾸어 말하면 송아지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선진지역을 중심으로 송아지 자체생산기반을 마련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비육에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고 있는 밑소는 그 지역에서 생산된 송아지가 아니라, 인근의 가축시장에서 구입해 온 송아지가 대부분이다. 즉 밑소의 혈통관리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그 지역 나름대로의 사양관리만을 통하여 육성된 한우를 브랜드 상품화한 것이다. 이와 같은 사양관리의 차별화만으로는 브랜드사업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우농가의 역할 첫째, 균일한 품질의 좋은 한우고기를 생산해야 한다. 이미 쇠고기시장은 한우고기시장과 수입쇠고기시장으로 나뉘어져 있고, 전체 쇠고기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한우고기시장의 주고객은 소득수준이 높은 계층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우농가가 이들 주고객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품질을 최우선으로 하는 생산에 힘써야 함은 물론, 균일한 품질의 한우고기를 생산해야 한다. 등급제가 시행되고 있는 현재, 품질 최우선의 생산이란 곧 1등급 출현율을 높이는 생산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위생적이면서도 안전한 한우고기를 생산해야 한다. 쇠고기의 위생·안전성을 둘러싼 최근의 사건으로는 일본에서 발생한 광우병(BSE)을 들 수 있다. 2001년 11월 발생한 광우병으로 말미암아 일본의 화우산업은 소비자의 신뢰를 상실함으로써 쇠고기 소비가 절반이하로 감소하는 등 커다란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따라서 광우병 등 질병을 사전에 철저히 예방하지 않도록 하지 않고서 쇠고기 소비가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농가는 인식해야 함은 물론, 가능하면 유기(有機)축산을 통하여 위생적이면서도 안전한 쇠고기 생산에 힘써야 한다. 셋째, 책임소재가 분명하고 물량을 장기·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1991년 쇠고기 수입이 전면 자유화된 일본의 경우 국내산 쇠고기, 특히 화우(和牛)고기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하여 도입한 정책은 다름 아닌 브랜드 활성화였다. 이 시기에 화우산업 관계자 모두는 화우고기가 쇠고기시장에서 경쟁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을 신뢰로 판단하여 품질이 우수하고 위생적이며 맛이 좋은 화우고기를 비싼 가격으로 공급하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등급판정을 통하여 고급육 생산·유통에 힘써온 결과 10년이 지난 현재 커다란 변화 없이 시장을 지켜 나가고 있는바, 이와 같은 경험을 우리 실정에 맞게 잘 활용해 나갈 필요가 있다. 한성일 교수(건국대 축산대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