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은 우리 농업과 이 땅의 농민들에게 잔인하고 참담한 계절이었다.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WTO 제 5차 각료회의의 DDA협상은 ‘전 세계의 미국화’를 지향하는 미국의 패권주의적 세계화에 다름아니었으며 이에 저항하여 한국의 농업과 세계의 가족농보호를 외치며 저항해 온 농민운동가 이경해를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에서 있었던 9월20일의 故 이경해 열사의 농민장에 각 지역 농민단체에서 내걸어 펄럭이는 만장에 ‘우리 농업 죽이는 WTO거부’, ‘한·칠레 FTA비준 결사반대’, ‘신·경 분리/시·군지부 폐지로 농협개혁 쟁취’, ‘농가부채문제 근본대책 세우라’는 내용으로 가득했는데 이는 참담한 한국농업의 몰락을 막아보겠다는 이 땅에 사는 농민들의 피 맺힌 절규이며 한국농업의 당면과제를 웅변하는 몸부림이였다. 사실 이경해씨의 자결이라는 사건으로 상징하는 ‘몰락하는 한국농업’의 참담한 현실에 대하여 이 땅의 내로라하는 정치인, 농정관료, 학자, 농협임직원, 언론할 것 없이 책임 있는 반성의 소리 한마디 듣기 어렵고(장례식장에서 그들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어려웠다) 확실한 대안을 내놓는 책임있는 사람하나 없으니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결국 오늘의 한국농업 현실로부터 희망을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 나라 농업의 직접적 이해 당사자인 농민이 나서는 방법 밖에는 없다.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지만 신자유주의-세계화의 시대에 농민이 농업의 주체로 나서는 인식적 전환의 바탕위에 정치세력화하여야 한다. 농민의 정치세력화를 위하여는 농협을 중심으로 하는 농민단체의 강력한 연대활동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 협동조합의 개혁이 요구된다. 협동조합의 개혁을 통하여 농민의 정치세력화를 기할 수 있으며 이것이 협동조합의 성립과 존재의 주체적 조건이며 농협법 제1조가 명시하는 ‘농민의 경제적·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자본주의 초창기 영국의 협동조합 운동가들이 챠-티스트(시민헌장 운동가)였으며 챠-티스트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그들의 정치적·경제적 권익쟁취를 위한 입법 활동을 하도록 그들의 대표자들을 의회에 내보낸 것이 그 역사적 사례이다. 농림부를 중심으로 하는 농협법 개정작업이 최근 들어 본격화되고 있다.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당면한 농업문제에 대한 근본적 대책마련의 일환으로 농민단체들로부터 제기된 농협개혁의 소리가 다시 높아졌으며 이에 따라 농협개혁위원회가 구성되었고 그 활동이 개시되었으나 당시 4선의원 출신 농림장관은 농협개혁을 농협중앙회에 일임하고 수수방관하는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이는 언뜻 보기에 농협개혁의 이니셔티브를 협동조합개혁의 당사자에게 주는 듯 하나, 개혁논의의 대상인 농협중앙회에 개혁의 주도권을 넘겨주는 우(愚)를 범하였으며 이와 같은 농림부의 이해 못할 행동에 농민단체들이 반발을 하였다. 일이 이쯤 되자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된 농림부는 주무당국으로서 서둘러 농협개혁위원회가 제출한 중앙회 및 조합관련 개정 법 검토안과 자체안을 종합해 지난 4일 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11월초 개정안을 국회에 내기로 했다. 개정법안의 주요 내용은 중앙회장 비상임제 전환, 사업연합회 법인 인정, 부가의결권 도입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농협중앙회의 신·경분리 시한, 시·군 지부폐지, 지역본부장 선출직 전환등 농민단체들의 핵심적 요구 내용이 배제되어 농민들의 반발은 물론 입법과정에 논란이 예상된다. 사실 농협법 개정에 임하는 농림부로서는 참여정부시대에 걸맞는 민주적 정책형성과정, 즉 협동조합의 주체인 농민, 농민단체, 회원조합, 관련 연구기관과 학회 그리고 원내 정당이 입법과정에 참여하는 민중입법 내지는 의원입법 형식을 취하는 것이 사회법적 성격을 띠는 농협법 개정의 올바른 접근태도일 것이다. 이러한 합리적 정책과정을 거쳐 농협법개정과 개혁이 이루어져야 정권이 바뀔때마다 농협조직이 개혁의 도마위에 오르는 연례행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조합원 농민으로부터 신뢰받는 협동조합으로 거듭 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농협개혁의 기본방향과 개혁방안에 대하여 논하고자 하며 특히 개정법안 가운데 시정되어야 허거나 좀 더 검토되어야 할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농협개혁의 기본방향으로는 첫째 모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DDA협상과 FTA등 한국농업을 더욱 강하게 조여 오는 시장개방 압력을 방어할 수 있는 농정활동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협동조합 조직의 개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로 이러한 개방 농정으로 인한 농정 난맥상의 총체적 결과인 과중한 농가부채에서 벗어나 당면한 농업의 위기를 극복하고 농가경제를 향상시킬 수 있도록 소농의 가족농적 강인성과 농업생산과 유통·저장·가공등 일련의 영농과정에서 협업적 기제가 작동하는 농협이 되도록 개정법안의 가닥이 잡혀야 할 것이다. 셋째 농협의 궁극적 목적의 하나가 조합원 농민의 소득향상과 후생의 증진에 있으며 이를 위하여 농협의 사업과 운영조직체계가 조합원과 회원조합 중심으로 되어야 하며 동시에 조합의 제반사업에 대한 참여와 이용을 높이는 방향으로 협동조합이 바뀌어져야 한다. 이러한 농협개혁의 기본방향에 대한 논의는 한마디로 농협중앙회의 경우 본부, 지역본부, 시·군지부의 기능을 재검토하여 농정활동 기능을 강화하고 경제·지도 사업의 활성화와 신용사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하여 전문화하는 한편, 농협조직의 슬림화가 요구된다. 그리고 조합원 농민의 직접적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회원조합의 경우 조합사업에의 참여와 이용을 높이는 방향으로 협동조합이 개선되어야 하며 영세소농의 경제적·사회적 권익옹호를 위한 조직으로 농협이 기능할 수 있도록 민주적 운영체제를 확립하여야 하며, 제반사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이제 중앙회 및 회원조합의 구체적인 개혁방안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 우선 현재 입법예고 되고 있는 개정법안 내용중 중앙회 조직의 기구개편의 핵심적 내용 가운데 하나인 중앙회장 신분의 비상임화와 교육지원담당 대표제 문제는 솔직히 신·경분리 문제가 전제되지 않을 때 필요한 내용이며 신·경분리를 할 경우, 교육지원담당 대표제로의 분리는 농협조직의 힘을 분산시키는 불필요한 분할이며 중앙회장의 비상임화도 농협조직의 농정운동기능의 약화를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중앙회 계통조직의 광역시도별 조직은 회원조합에 의하여 구성되는 연합조직이 되어야 하며 회원조합장들이 시도(市道) 연합조직의 대표를 선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의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요인 가운데 하나인 서울중심의 수도권 비대화와 도·농의 불균형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지방분권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지방분권특별법과 지역균형발전특별법이 금년안으로 입법화될 전망이다. 농민 조합원의 소득수준 향상과 농촌지역 균형발전을 위하여 농협조직도 이러한 사회적 요구와 국정지향에 부응하여 농업이 산업적 주류를 이루는 道단위의 광역자치단체와 파트너쉽을 발휘하는 가운데 기초 및 광역자치단체의 지역(농업)발전을 위한 적극적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기구조직적 대응을 위한 개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같은 지방분권적 사회추세의 측면에서도 그러하지만 지역 농협 가운데 부실조합의 정리와 회원조합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합병운동의 명분을 살리기 위해서도 시·군지부 폐지 문제도 구체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명제이다. 둘째, 중앙회의 신·경분리 문제인데 이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지난 2000년 7월 통합농협법에서도 명기한 바와 같이 (부칙 제 16조 4항) ‘농림부장관은 이 법 공포와 동시에 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를 추진하기 위해 협의 기구를 설치 운영해야 한다’고 농협중앙회의 신·경분리를 기정 사실화하였다. 특히 제 16조 3항에는 신·경분리 연구용역(금융연구원)과 관련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한 2002년 6월말로 부터 2년 이내에 연구결과에 따른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농림부도 농협중앙회도 실천의 구체적 의지가 약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일 국정감사에서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은 신·경분리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고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는데 지난 DJ정부이래 국공영기업과 대기업의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합병과 구조조정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였는데 ‘한국농업의 회생’과 농협의 건전한 육성을 위한 신경분리에 소요되는 공적자금의 투입은 대단히 중요한, 시의적절한 투융자가 아니겠는가? 원래 농협의 신용사업이란 상호금융으로서 생산 및 구·판매사업과 이용가공사업 즉 경제사업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신용사업이 역할하여야 하나 현실적으로 신용사업이 협동조합을 주도하는 감 없지 않다. ‘농업협동조합’의 설립목적에 충실한 경제사업의 자생력과 활성화를 기여하기 위하여 신·경분리 문제가 결론지어져야 한다. 셋째, 소 이사회 구성문제와 관련한 문제로 중앙회의 이사회 구성에 있어 회장과 대표이사를 제외한 이사수의 2/3이상을 조합장 중에서 선출하던 것을 1/2이상으로 변경하여 조합장이 아닌 이사의 수를 확대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 것과 소이사회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여기서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으나 비 조합장 이사로 학·경이사 즉 관련분야 학자 및 전문가 그리고 농민단체 대표들이 참여하는 것이 전향적인 농협발전을 위한 방안이라고 생각된다. 넷째, 회원조합의 기구조직 및 운영의 민주화 즉 지역농협의 제반사업 방침결정과 운영에 농민 조합원의 직접적 참여기회확대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하여 먼저 이사 및 대의원의 정수를 현행법은 임원으로서 이사의 수는 조합장을 포함한 7인 이상 25인 이하(법 제45조)로, 그리고 대의원은 50인 이상 200인 이하(정관 제45조)로 되어있으나 대부분의 조합이 이사 7인, 대의원 50인 수준으로 운용하고 있는 바, 현실적으로 이사, 대의원 수를 늘리도록 하는 법규내용 조정이 이루어져야겠다. 이를 통하여 지역의 영농법인과 같은 생산조직과 주요 작목조직의 대표를 대의원 또는 이사로 영입하여 지역농협과 생산조직간의 유기적관계 강화와 조합사업 참여 유도가 요구되며 학·경이사 영입의 제도화가 요청된다. 끝으로, 농협법개정에 즈음하여 절실하게 요구되는 점은 이번에야말로 ‘농협은 농민에게 돌려주는’ 협동조합개혁이 이루어져야겠다는 점과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참여정부시대에 걸맞는 민주적 정착형성 과정을 통한 법개정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