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생산이력제에 관한 단상

뉴스관리자 편집장 기자  2004.05.24 17:44:59

기사프린트

지난 5월 14일 농촌진흥청 농업경영정보관실 주관으로 열린 농축산물생산이력제에 관한 세미나는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시책, 즉 친환경축산직불제, 생산이력제, 축산업등록제, 축산물브랜드 육성 등을 종합적으로 생각해 보고 상호 연관성을 찾아봄으로써, 향후 우리나라 축산업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시야를 갖추어야 함을 일깨워준 매우 뜻깊은 행사였다.
필자는 현재 위에서 열거한 제반 시책 가운데 특히 생산이력제에 관하여 관심을 갖고 연구중인데, 이 날 연사로 나선 일본 교토대학의 니이야마(新山陽子) 교수는 필자의 답답함과 궁금증을 속 시원히 해결해 주었다.
니이야마 교수는 일본의 식품 생산이력제 도입에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특히 축산물의 경우 구체적인 도입 방안 및 구비 여건 등에 대하여 현장의 여건을 고려한 대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등 이 분야의 업적이 높게 평가받고 있는 분이다.
생산이력제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 오면서 필자는 이 제도에 관심을 갖고 있는 선도 양축가 및 축산현장의 관계자들을 많이 만나고 있고 그들의 얘기를 귀담아 듣고 있는데, 축산업의 경우 대다수 현장 담당자들은 생산이력제 도입의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현재의 축산업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섣불리 도입하는 것은 긴 안목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사실 생산이력제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원을 추적해 보면 원어에 해당하는 말은 traceability이고 이는 정확히 해석하면 추적가능성이 된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추적가능성 제도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생산이력제라고 번역할 경우 앞으로 농축산물의 안전·안심 시스템을 구축해 감에 있어 행여나 소비자의 불신을 유발하는 불상사가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을 주로 생산자가 져야 한다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기기 때문이다.
웰빙이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즈음 식품의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 및 반응은 상상을 초월한다. 생산자들은 소비자들의 이와 같은 인식 및 취향의 변화에 즉각 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땅에서 생산한 안전한 먹거리를 소비자인 국민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생산, 가공 및 유통에 관여하는 모든 이의 합심된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축산업 관계자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니이야마 교수에 따르면 traceability란 ‘생산, 처리, 가공, 유통, 판매 등 이른바 푸드 체인(food chain)의 각 단계에서 식품 및 그 정보를 추적하거나, 또는 소급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또한 그 목적은 위험(risk) 관리를 수월하게 하고, 식품관련 정보를 소비자에게 투명하게 제공하며, 나아가서 식품의 관리 및 품질의 개선에 이바지하는데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각 단계별 식별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록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2002년 11월 자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여 큰 충격에 휩싸인 일본의 경우 식품의 안전·안심에 관한 논의는 이전부터 활발히 진행되어 왔고 나름대로 용어선택에 고민하다가 원어에 해당하는 traceability를 그대로 채택하였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용어가 갖는 의미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은 광우병 발생을 계기로 소 및 쇠고기에 대한 traceability를 서둘러 도입하였지만, 사실 정책담당자들의 고민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왜냐하면, 정부 주도 아래 대책회의를 거듭하면서도 축산업계 관계자들의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여 난항을 거듭하다가 일단 작년 12월에 생산단계에서만 우선 도입하고, 유통단계는 올해 12월부터 시작하기로 합의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제도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사업비는 시간이 경과할수록 증가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예산 확보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기조차 하다.
이와 같이 광우병이 발생하여 불안감을 느낀 소비자들이 쇠고기 구매를 꺼림으로써 한 때 쇠고기의 소비가 40%이상 대폭 하락하는 등 매우 심각한 사태에 봉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업계관계자들의 합의를 도출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현재의 여건을 고려하여 차분히 논의해 나가는 것이 긴 안목에서 보았을 때 한결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생산이력제 도입에 관한 논의는 일본의 경험을 거울삼아 정책담당자, 학계 및 업계 관계자들이 모두 참여하여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합의를 도출하는 등 체계적으로 진행되어야하고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