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현재 위에서 열거한 제반 시책 가운데 특히 생산이력제에 관하여 관심을 갖고 연구중인데, 이 날 연사로 나선 일본 교토대학의 니이야마(新山陽子) 교수는 필자의 답답함과 궁금증을 속 시원히 해결해 주었다. 니이야마 교수는 일본의 식품 생산이력제 도입에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특히 축산물의 경우 구체적인 도입 방안 및 구비 여건 등에 대하여 현장의 여건을 고려한 대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등 이 분야의 업적이 높게 평가받고 있는 분이다. 생산이력제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 오면서 필자는 이 제도에 관심을 갖고 있는 선도 양축가 및 축산현장의 관계자들을 많이 만나고 있고 그들의 얘기를 귀담아 듣고 있는데, 축산업의 경우 대다수 현장 담당자들은 생산이력제 도입의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현재의 축산업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섣불리 도입하는 것은 긴 안목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사실 생산이력제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원을 추적해 보면 원어에 해당하는 말은 traceability이고 이는 정확히 해석하면 추적가능성이 된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추적가능성 제도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생산이력제라고 번역할 경우 앞으로 농축산물의 안전·안심 시스템을 구축해 감에 있어 행여나 소비자의 불신을 유발하는 불상사가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을 주로 생산자가 져야 한다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기기 때문이다. 웰빙이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즈음 식품의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 및 반응은 상상을 초월한다. 생산자들은 소비자들의 이와 같은 인식 및 취향의 변화에 즉각 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땅에서 생산한 안전한 먹거리를 소비자인 국민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생산, 가공 및 유통에 관여하는 모든 이의 합심된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축산업 관계자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니이야마 교수에 따르면 traceability란 ‘생산, 처리, 가공, 유통, 판매 등 이른바 푸드 체인(food chain)의 각 단계에서 식품 및 그 정보를 추적하거나, 또는 소급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또한 그 목적은 위험(risk) 관리를 수월하게 하고, 식품관련 정보를 소비자에게 투명하게 제공하며, 나아가서 식품의 관리 및 품질의 개선에 이바지하는데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각 단계별 식별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록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2002년 11월 자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여 큰 충격에 휩싸인 일본의 경우 식품의 안전·안심에 관한 논의는 이전부터 활발히 진행되어 왔고 나름대로 용어선택에 고민하다가 원어에 해당하는 traceability를 그대로 채택하였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용어가 갖는 의미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은 광우병 발생을 계기로 소 및 쇠고기에 대한 traceability를 서둘러 도입하였지만, 사실 정책담당자들의 고민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왜냐하면, 정부 주도 아래 대책회의를 거듭하면서도 축산업계 관계자들의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여 난항을 거듭하다가 일단 작년 12월에 생산단계에서만 우선 도입하고, 유통단계는 올해 12월부터 시작하기로 합의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제도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사업비는 시간이 경과할수록 증가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예산 확보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기조차 하다. 이와 같이 광우병이 발생하여 불안감을 느낀 소비자들이 쇠고기 구매를 꺼림으로써 한 때 쇠고기의 소비가 40%이상 대폭 하락하는 등 매우 심각한 사태에 봉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업계관계자들의 합의를 도출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현재의 여건을 고려하여 차분히 논의해 나가는 것이 긴 안목에서 보았을 때 한결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생산이력제 도입에 관한 논의는 일본의 경험을 거울삼아 정책담당자, 학계 및 업계 관계자들이 모두 참여하여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합의를 도출하는 등 체계적으로 진행되어야하고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