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본지 창간이후 15년간 축산기관 단체 어떻게 달라졌나

뉴스관리자 편집장 기자  2000.09.28 15:55:29

기사프린트

본지 창간이후 15년간 축산기관 단체의 변화는 어떠했을까. 농림부 축산국 조직은 물론 축산기술연구소와 국립수의과학검역원 등 산하 기관은 WTO출범이후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또 축협중앙회가 농협중앙회로 통합됐으며, 한우협회가 새로 발족했는가 하면 기타 많은 축산관련 단체들이 나름대로 경쟁력있는 단체로 거듭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우선 농림부 축산국은 지난 85년까지 81년 11월에 개편된 조직인 축산과, 낙농초지과, 사료과, 가공이용과, 가축위생과로 운영돼 오다 86년 5월, 낙농초지과와 사료과가 초지사료과로 통합되고, 가공이용과가 폐지됐다. 대신 대가축과와 중소가축과를 신설, 축종별로 기능을 조정함으로써 축산국은 축정과, 대가축과, 중소가축과, 초지사료과, 가축위생과등 5과 체제를 갖췄다.
이같은 조직은 WTO출범이후 조직 개편에 따라 지난 94년 12월에 다시 개편된다. 즉 축정과를 축산정책과로 개편하고, 초지사료과를 축산경영과에 통합 폐지함으로써 현재는 축산정책과, 축산경영과, 축산물유통과, 가축위생과등 4과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축산정책을 총괄하는 축산국장은 "축산장관"으로 불리우며, 그동안 축산정책을 이끌어 왔는데 그 수장들의 면면을 보면, 지난 85년 본지 창간 당시 축산국장은 지설하씨였다. 이어 86년에
김광희씨가 바통을 받은 이래 김영래씨, 신구범씨, 김정룡씨(작고), 김동태씨, 원광식씨, 안덕수씨, 이관용씨, 김옥경씨, 소만호씨가 그 뒤를 이었으며, 현재는 김주수국장이 축산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농림부산하기관으로서 국립수의과학검역원도 큰 변화를 겪었다. 지난 85년 당시 현재의 검역원은 동물검역소와 수의과학연구소로 분리돼 있었다. 그러던 것이 불과 2년전인 지난 98년 12월 이들 기관은 2부 13과 5지원 8출장소 체제의 국립수의과학검역원으로 통합됐다. 통합이후 지난 3월에는 특수독성과를 신설하는 등 조직을 정비했다. 최근에는 책임운영기관제 도입 여부로 시련을 겪고 있기도 하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을 이끈 원장들은 초대 원장에 이관용씨가, 2대 원장에 현재의 김옥경원장이 국가 검역 및 방역, 그리고 위생업무를 지휘하고 있다. 통합 이전에는 동물검역소의 경우 김범래씨에 이어 김옥경씨, 이관용씨가 소장을 맡아 왔으며, 수의과학연구소는 설동섭씨에 이어 박근식씨, 이재진씨가 소장을 이어왔다.
우리 축산기술 연구의 산실, 축산기술연구소는 지난 85년 본지가 창간될 당시, 83년에 개편한 가축단위 중심의 과체제에서 84년 국립종축장을 국립종축원, 지장을 지원으로 개칭하는 등 조직의
변화가 있었다. 이어 89년 2월에는 국립종축원에 종축위생과를 신설했는가 하면 94년 12월에는 대통령령으로 연구직 정원이 65명에서 1백15명으로 늘어나는 등 조직이 확대 개편됐다. 그러나 94년에 와서는 농림수산부 국립종축원, 농진청축산시험장과 고령시험장 축산과를 통합하여 농촌진흥청축산기술연구소로 개편됐다. 이어 지난해 5월에는 사천지소의 기능을 종축개량부로 통합, 사회적 개혁 분위기를 반영했다. 축산연도 검역원과 마찬가지로 책임운영기관제 도입 여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축산기술연구소로 개편되기전 축산시험장장은 85년 본지 창간당시 김강식씨가 맡고 있었으며, 이후 설동섭씨, 이근상씨, 이인형씨가 그 뒤를 이었다. 현재의 축산기술연구소 체제에서는 천중인씨, 원광식씨, 정선부씨에 이어 김경남씨가 소장으로서 축산물수입완전 개방시대에 대응한 축산기술연구의 지휘봉을 잡고 있다.
한편 축협은 지금은 농협중앙회에 통합됐지만 본지가 창간하던 지난 85년이후 통합되기전까지 나름대로 축산분야 민간조직으로 축산 발전을 주도해왔다.
지난 81년 축협이 농협중앙회로부터 분리돼 중앙회가 발족되고, 여의도 국회의사당앞 잠사회관에서 둥지를 틀고 축산진흥기금을 재원으로 사업을 펼치게 된다. 이후 축협은 우선 상호금융업무와 중앙회 은행업무를 취급하면서 서서히 협동조합으로서 더욱 확실한 자립의 발판을 마련해가다 89년 중앙회청사를 현재 농협중앙회 별관인 성래동 청사로 옮기면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특히 축협이 "값싸고 질좋은 사료공급"을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면서 적극적인 사료 생산에 임함으로써 일부 축산인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민간사료와의 가격 경쟁을 통해 축산농가들의 축산 생산비 부담을 줄이는데 일조했으며, 지금도 전국 사료시장의 4분의1정도를 점유하며 이제는 가격 경쟁 뿐만 아니라 품질 경쟁도 선언하면서 건전한 사료산업 발전을 통한 축산농가의 경영 안정에 이바지 하고 있다.
축협은 또 지도사업과 함께 유통 경제사업에도 점점 비중을 늘려가면서 축산인들이 생산한 축산물을 제값에 팔아주기위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축산인을 위한 축협으로서 거듭나고 있다. 최근 지역 축협을 중심으로한 브랜드축산물 생산 등은 이같은 노력의 결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러한 축협을 이끌어온 인물의 면면을 살펴보면 본지가 창간될 당시에는 이득룡씨가 회장으로 있었으며, 이후 86년7월 현 낙농진흥회장인 명의식씨가 그 뒤를 이었다. 명회장은 2대에 걸쳐 회
장직을 수행하면서 특유의 추진력으로 80년대 중반과 9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축협발전을 견인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명회장에 이어 명회장 당시 부회장이던 송찬원씨가 바통을 이어받아
축산 전문가로서 축산 발전을 주도했다. 송찬원회장 이후에는 박순용씨와 신구범씨가 회장을 맡아 나름대로 축협 조직을 위해 일했다. 그러나 명회장이후의 역대 회장 모두가 시대적 상황에 따
라 혹독한 시련을 겪기도 했다. 특히 박순용회장은 협동조합개혁과 관련 협동조합 사상 처음으로 조합장으로부터 불신임을 받는 불명예를 당하기도 했다. 반면 신구범회장은 협동조합 개혁과 관련 국회에서 할복으로 통합에 반대하는 희대의 사건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