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 추세와 한국농업 산업사회의 고도화에 따라 우리는‘더 많이, 더 빠르게’를 목표로 무한 질주를 지속하여 왔다. 그 결과 우리는 물질적 풍요는 다소 얻었을지 모르나 정신적 여유와 안정은 상실되고 심성 또한 메말라가고 있음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러한 고도산업사회의 병폐에서 탈출하여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한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게 전개되어 왔다. 규격화, 기계화로 맛을 표준화하고 동질화하려는 맥도널드의 패스트푸드(fast food)에 반대하여 1980년대 중반 이태리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나라별, 지역별 특성에 맞는 전통적이고 다양한 식생활 문화를 추구하는 슬로푸드(slow food) 운동, 1990년대 초 ‘느리게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등장한 슬로비족(slow but better working people)과 부르주아의 물질적 실리와 보헤미안의 정신적 풍요를 동시에 추구하려는 보보스(bobos) 등은 이러한 병폐로부터 탈출을 위한 몸부림의 하나이었다. 2000년 이후 새롭게 등장한 웰빙은 ‘복지·행복·안녕’을 뜻하는 말로 몸과 마음, 일과 휴식, 가정과 사회, 자신과 공동체 등 모든 것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말하며 웰빙의 추구는 이제 산업화 사회의 가장 강력한 삶의 추세가 되어가고 있다. 웰빙추세의 대두 웰빙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① 자연친화적이고 ② 요가·단전호흡 등을 통하여 몸과 마음의 건강을 추구하며 ③ 인스턴트 식품보다는 슬로푸드(slow food)를 선호하고 ④화학조미료나 탄산음료는 가능한 한 섭취하지 않으며 ⑤ 여행, 레저, 스포츠 등을 통해 삶의 여유를 찾으려 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은 식품소비에도 독특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고기 대신 생선을, 일반농산물 보다 유기농산물을 선호하는 이들은 대부분이 축산물에 대하여는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동물성 단백질이나 지방이 바로 육체적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오해하기도 하며 성장홀몬과 항생제의 잔류 위험성은 그들의 축산물 기피증을 더욱 북돋우고 있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은 인류에 큰 위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염려하며 야채와 과일, 그리고 곡물의 농약 잔류에 대하여도 대단히 민감하여 높은 값을 지불하더라도 더 안전한 식품을 선택하려 한다. 이러한 식품소비 추세의 변화는 ‘더 많이, 더 빠르게’식 농업에 대한 강력한 혁신을 요구하며 동시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한국농업의 새지평-유기농업 이러한 추세에 따라 우리나라의 친환경식품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더구나 광우병, 조류독감, 불량식품 파동 등으로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친환경 식품은 ‘웰빙 제품’으로 각광을 받아 최근 몇 년 사이 연평균 20%대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며 년간 시장 규모가 4000억원 대로 커졌고 2006년에는 6700억원 수준이 될 전망이라고 한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해 호주산 유기농 쇠고기 판매를 시작으로 유기농 닭고기와 한우, 돈육 등 유기농 축산물 판매를 준비하고 있으며 신세계와 롯데백화점도 유기농 축산물의 입점을 서두르고 있다. 유기농산물은 최소한 3년간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농토에서 유전자 변형 종자, 방사선 처리, 화학비료와 유기합성 농약 등을 사용하지 않고 재배된 농산물이다. 유기농 축산물 생산을 위해서는 가축은 노천구역에, 특히 반추가축은 목초지에 접근이 가능 하고 산란계는 케이지가 아닌 충분한 횃대가 제공된 환경에서, 항생제나 성장 홀몬을 사용 하지 않고 유기농 사료를 급여하여 사육해야 하며 수정란 이식에 의한 번식은 금지된다. 조사료의 자급자족 기반은 유기농축산물 생산을 위한 반추동물 사육의 전제조건이다. 고기와 달걀, 우유가 유기농축산물로 인증 받으려면 도축 전 비육우는 12개월, 비육돈은 6개월, 육계는 7주 이상을 이러한 방식에 따라 사육되어야 하며 산란계는 산란 전 5개월 이상, 착유우는 착유 전 90일 이상이 사육되어야 한다. 농축산물에서 시작된 유기농 제품은 점차 화장품과 생활용품 및 의류 등 유기농 원료를 사용한 2차 가공제품들로 영역이 확대되어 유기농 방식으로 재배한 원료로만 만든 유아식, 유아용 스킨케어 상품 및 임산부나 민감한 피부를 가진 성인용 유기농 화장품 등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이러한 웰빙 추세에 부응하기 위하여 우리나라도 1993년부터 유기농산물 표시제도를 도입하였고 이에 대한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해 1997 친환경농업육성법이 제정 되었고 2001년 7월1일부터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의무인증제가 시행되고 있다. ‘늦더라도 제대로’ 날로 뜨거워지는 웰빙 추세는 ‘더 많이, 더 빠르게’식 영농방식으로 만 달려 온 한국 농업에 대하여는 발등에 떨어진 도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를 기약하는 새로운 지평이기도 하다. 이 추세에 맞추어 신속하게 변신할 수 있다면 한국농업은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맞을 수 있을 것이나 타성과 구습에서 벗어나질 못하면 국내 웰빙 농산물 시장을 모두 외국 유기농산물에 내어주게 될지도 모른다. 유기농업 정착을 위해 정책적, 제도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우선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첫째, 상업주의 급류에 휩쓸려 상실되고 있는 農心을 조속히 회복하여야 한다. 농업은 생명산업이므로 이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은 타인의 생명도 나의 생명처럼 소중함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아니 된다. ‘더 많이, 더 빠르게’대신 ‘늦더라도 제대로’ 식 영농방법을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선 과거 새마을운동과 같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의식개혁 운동이 강력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둘째, 축산물의 우수성을 체계적으로 알리는 전략적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 특히 웰빙과 관련된 ‘식물성 단백질의 한계성과 동물성 단백질의 필요성’, 그리고 축산물의 ‘다이어트 및 면역기능 강화에 관한 효과’등을 집중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셋째, 유기농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도를 높이고 이를 철저히 지켜 나가야 한다.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고객에게 변함없는 만족을 보증하기 위해서는 ‘엄격하고 철저한 인증제도’의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계를 향해 개방되고 있는 국내시장에서 우리 농산물이 가격 경쟁을 통한 승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품질경쟁에서 이길 수 밖에 없다. 다행스럽게 웰빙 추세는 가격보다 품질을 선호하고 있으니 이는 한국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이다. 그러나 유기농산물 인증제도가 적당히 운용되어 인증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상실하게 되면 우리 농업은 도약을 위한 마지막 보루마저 잃게 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