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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전 구제역 발생지역 그 현장을 가다

뉴스관리자 편집장 기자  2001.03.26 11: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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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3월 22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금파리 권수목장.
따사로운 봄볕 속에 젖소 열서너마리가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너무도 평화로운 풍경에 지난해 이곳에서 생각조차 하기 싫은 구제역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잊게 한다. 다만 코를 찌르는 지독한 소독약 냄새에 이곳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었음을 짐작케 할뿐이다.
지난해 3월 24일 이곳에서 발생한 구제역으로 최초 발생농장인 권수목장의 젖소 15두를 비롯해 인근농가의 가축 1백6두를 살처분 조치했다.
66년동안 발생이 없어 구제역에 대한 개념조차 제대로 없었던 이곳의 주민들. 하루밤새에 평생을 가족처럼 생각하며 애써 길러왔던 가축을 살처분한 가축들은 땅을 치며 통곡했지만 워낙 전파속도가 빠르고 그로인한다 국가경제의 손실이 엄청나다는 말에 정부의 살처분 조치를 고스란히 떠 안을 수 밖에 없었다.
최초 발생농장인 권수목장의 김영규씨.
구제역 발생으로 인해 가슴이 찢어드는 듯한 아픔을 가슴으로 삼키며 애지중지 했던 자식같은 젖소 15두를 살처분했다. 해외여행도 다녀오지 않았고, 중국산 건초도 아닌 자신이 직접 생산한 볏짚으로 사용했는데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구제역이 들어왔는지 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하루아침에 자식같은 젖소들을 살처분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아픔도 잠시, 자신으로 인해 이웃농장의 모든 가축들까지 살처분하자 마치 큰 죄를 지은듯한 죄책감에 이웃의 얼굴보기조차 두려워 문밖출입을 삼갔다고 한다.
한달이면 그래도 3백여만의 유대수입이 있었지만 젖소의 살첨분으로 인해 수입마저 끊어졌다. 생활비른 빚을 얻어 해결을 했지만 대학생과 고등학교를 다니는 자식들의 학비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주저앉아 하늘을 원망할 수 만은 없었기에 지난해 6월 28일 젖소 두 마리를 시험입식해 앞으로 사육해도 좋다는 판정을 얻어 현재 젖소 13두와 염소 3두를 사육하고 있다.
김씨는 현재 구제역의 악몽으로 인해 이웃의 농가 4명과 함께 고향을 떠나 파주시 적성면 객현리에 4천4백평규모의 젖소목장 단지를 건설하기 위해 현재 기반공사를 하고 있다.
앞으로 5년동안 착유우 50두를 포함한 젖소 1백두 규모의 농장을 건설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며 재기의 의욕을 다지고 있다.
김씨는 특히 구제역의 유입원인을 알면 쉽게 재발을 막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현재 상태에서는 철저한 소독만이 구제역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강조하고 있다. 소독을 안하는 농가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한 벌금을 부과를 해야 된다고 강조할 정도로 소독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김영규씨 농장 바로 옆에서 낙농을 하던 이근창(당시 구제역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씨.
당시 젖소 28두를 사육하고 있던 이씨는 살처분후 생활비 걱정이 눈앞이 캄캄했다고 그때를 회상한다.
살처분후 몇푼의 보상금을 받았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매일아침 5시면 일어나 우사를 청소하고 착유를 했지만 살처분으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멍하니 있다는 것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고 한다. 특히 이씨를 괴롭혔던 것은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살처분 보상금을 많이 받아서 마치 횡재라고 한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는 몇푼의 살처분 보상비를 받기는 했지만 재기하기에는 너무도 적은 금액이었고 오히려 구제역 발생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6월 이후에 가서야 6두를 시험사육할 수 있어 그나마 일이 생기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때의 수입을 보장받지 못한채 김영규씨와 함께 고향을 떠나 적성면 객현리에 젖소단지를 건설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씨는 그때의 기억을 회상조차 하기 싫지만 다시는 이런 불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육두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내 재산은 내가 지킨다"는 각오로 철저하게 소독을 하는 굳은 결의와 자세를 갖지 않고서는 축산을 할 자격조차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권수목장에서 직선거리로 1.5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한우를 사육했던 장석호씨.
장씨는 당시 구제역 확산을 막기위해 자신의 농장 소들마저도 살처분 해줄 것을 요구했던 사람. 구제역 발생으로 인해 당시 사육하던 소들을 지정된 북부도축장으로 출하해 시세보다 싼 가격에 팔 수밖에 없었다며 그때의 아픔을 전하고 있다. 특히 자우를 구입하지 못해 할 수 없이 파주관내에서 생산된 젖소 숫송아지를 구입해 현재는 젖소 육성우를 비육하고 있다.
구제역 발생으로 인한 피해는 농가만의 것이 아니었다.
권수목장 바로 코앞에서 인공수정소를 하고 있는 윤화영 인공수정사. 윤씨는 권수목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자 즉각 인공수정사협회 파주지부 소속 9명과 함께 자발적인 휴업에 들어가며 농장방문을 삼갔다. 인공수정을 해야 수입이 생기지만 구제역으로 인해 농장방문을 할 수 없었기에 자발적인 휴업에 들어갔던 것이다. 이로인한 손실 또한 엄청났던 것이다. 그러나 구제역이 발생하면 국내 축산업은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생업을 뒤로한채 구제역 박멸을 위한 예방접종 가축에 대한 천공작업을 적극 나서기도 했다.
윤화영씨는 특히 문산에 있는 금촌가축인공수정소 한규영(인공수정사협회 경기북부 지회장)씨 등 다른 인공수정사들과 함께 가축질병예찰팀을 구성해 가축질병 예찰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윤씨를 비롯한 인공수정사들은 농가의 사정을 가장 정확히 알고 있고 농가와의 친분을 무기삼아 차량에 소독기를 탑재하고 소독활동을 강화했으며 회원 1인당 10-15농가씩 담당해 예찰활동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구제역 발생을 처음으로 방역기관에 신고해 확진을 얻어냄으로서 구제역 확산금지 및 박멸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승진동물병원의 성차현 원장.
성원장은 구제역 발생이후 농장진료를 다닐 수 없어 생업에 엄청난 어려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