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통합 농협중앙회의 과제와 발전방향 1. 중앙회 통합 합헌 판결의 의미와 협동조합 본질의 회복 지난 2000년 6월 1일 협동조합 통합 논의가 헌법재판소(이하, 현재)의 합헌 판결에 의해 형식적으로는 종결되게 되었다. 헌재 결정에 대한 찬반여부를 떠나서, 그 판결요지는 협동조합에 대한 우리나라의 평균적인 인식수준을 나타내는 것인 동시에 소위 관제조합의 사법적 성격과 그 운명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협동조합의 향후 발전 방향에 커다란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번 합헌 판결의 주된 근거는 헌재의 결정요지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농협, 축협등 각 중앙회는 한편으로 회원조합이나 그 조합원의 이익을 위하여 기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의 농업정책 수행의 기능을 보조·담당하기도 하여 국가의 농업정책 수행을 함께 긴밀히 조율해 나가는 기능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는 공익성 판단에 의한 것이다. 이것은, "지역별 ·업종별 조합과는 달리, 이들을 회원으로 하는 중앙회는 자생조직이 아니며, 법률에 의하여 탄생한 것으로서 공업인이거나 기본권 주체성이 제한되는 특수법인"이라는 농림부장관의 의견을 실질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며 중앙회의 "관제조합적" 성격이 사법적으로도 인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향후 자생조직이 아닌 관제조합적 성격을 갖는 협동조합 및 그 연합조직은 조합원 또는 회원의 의사와 관계없이 정책 결정자의 판단에 의해 그 운명이 좌우될 수 있다는 매우 중대한 결과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한편, 협동조합이 "단순히 국가로부터 소극적 보호를 받는 대상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국가의 편에 서서 국가 경제정책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역할까지를 담당하게 되었다"거나, "본래의 자조적 협동조합적 성격으로부터 지배 단체적 성격으로 변질되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는 현재의 인식은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발전사에서 기인된 것으로서, 우리나라의 생산자협동조합이 그 기본적 가치로부터 얼마나 동떨어져서 성장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통합 농협중앙회는 그 탄생과정과 관계없이 협동조합으로서의 본질을 되찾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협동조합이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책수단으로서의 역할에서 어떤 점이 벗어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개선하고 실현해 나갈 것인지를 심의 추진하기 위한 별도의 기구로서 가칭 「협동조합 가치 실현위원회」를 둘 것을 제안한다. 이런 노력에는 법적 제도적 개선과 함께 정부로부터의 경제적 독립도 병행되어야 한다. 현재의 이번 합헌 결정은 관제조합적 성격을 유지하는 한 통합 중앙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이다. 2. 단계별 기능 분담의 재검토에 의한 사업기능 강화 그간 우리나라 중앙회의 사업활동은 연합조직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명확한 이론적 배경없이 추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가 경제사업에 있어서의 기능의 취약성, 회원조합사업과의 경합 등으로 나타났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먼저 경제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각 단계별(조합-[시군지부-도지회]-중앙회)의 기능 분담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진지한 연구와 검토하에서 중앙회 통합의 당위성이 제기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논의는 없이 단순히 많은 민원이 제기되는 회원조합과의 경합사업을 이관한다는 선에서 마무리되고 말았다. 작년 10월에 발표된 "제2단계 협동조합개혁 추진계획"도 이런 점에서는 극히 불완전한 계획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계획"은 중앙회 직원의 추가 감축과 각종 유통시설의 조합 이관 및 자회사화에 의해 조직의 경량화를 도모하는 것이 주된 골자로 되어 있다. 중앙회 조직의 비대화는 오랫동안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던 것이며, 경량화가 통합의 큰 명분(일종의 공약사항?)이었으므로 그 이행은 당연한 귀결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큰 조직규모에 비해 기능이 취약하다는 것이므로, 기능을 줄이면서 조직을 경량화 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업다. 이번에 발표된 "계획"에서도 조직정비와 경량화라는 점을 제외하면, 중앙회 기능 강화를 위한 어떤 구체적인 마스터플랜도 제시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유통시설의 조합 이관문제도 이런 의미에서 너무 성급히 결정되었다고 생각된다. 외국의 많은 예를 보면, 경제사업에 있어서의 연합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가공·판매사업에 있어서의 브랜드 확립도 품목에 따라서는 전국적인 브랜드 확립이 훨씬 유리한 경우가 많으며, 이런 경우에는 중앙회의 가공 유통시설 보유가 오히려 바람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더욱이 현재 조합에서 운영하는 많은 가공사업이 원료 확보 및 마케팅 미숙 등으로 부실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는 신중한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대기업에 의한 독과점 현상이 강화되는 속에서 협동조합이 이에 대항해 조합원의 경제적 이익을 향상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연합조직의 기능 강화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중앙회는 경량화 이전에 사업활동에 있어서의 단계별 기능 분담과 업무 추진체계,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한 마스터플랜 등을 먼저 마련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3. 판매사업의 활성화 농협에는 많은 사업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조합원의 농축산물을 판매함으로써 그 가치를 실현시켜 주는 판매사업이다. 조합의 다른 사업은 사실상 농산물 판매를 지원하기 위한 파상적 사업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여러 가지 사업을 겸영하는 다목적 연합조직의 시너지 효과에 의한 유리성도 이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생산자협동조합은 오랫동안 이를 소홀히 해옴으로써 조합원들에게 비판받은 가장 큰 요인이 되어 왔다. 협동조합의 판매사업은 농협설립 초기에는 조합의 영세성으로 인해 활성화되지 못하고 정부의 농산물수매사업을 대행해 주는 정액판매사업이 중앙회와 군조합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본격화하기 시작하였다. 현재 농축협의 시장점유율은 약 20∼30%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판매사업의 문제점으로는, 유통관련 전문인력 및 산지 유통시설의 부족, 자금의 부족 등으로 판매사업의 효율성이 떨어짐으로써 조합이용율이 낮고 중간상인에 의한 시장 지배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 등이 지적되어 왔다. 이런 농산물 판매기능의 저위성은 중앙회 단계에서 더욱 크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와 생산여건이 비슷한 일본의 경우 판매사업의 계통이용율이 현연합회 단계에서 90%이상, 전국연합회 단계에서 60%이상인데 반해, 우리나라 계통이용률은 30%정도로 그나마 감소추세에 있다는 것은 이런 현실에 대한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중앙회의 판매사업은 공판장 도축장 물류센터 등의 유통시설 운영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규모 유통시설의 운영도 연합조직이 수행해야 할 보완기능중의 하나이지만, 이에 못지 않게 상품개발, 수급조절, 시장개척, 시장정보의 수집 및 전달, 판매물량의 대량화 등을 수행함으로써 가격교섭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기능을 위해서는 산지단계에서부터 연합조직의 기능이 발휘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시군지부나 지역본부에서는 이런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중앙회는 적어도 도 단위에서부터 판매지원기능을 활성화해야 하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사업연하 및 품목조합연합회의 설립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보완 및 대행기능의 공백을 메꿔 나가야 할 것이다. 4. 교육·지도 사업의 강화와 전문인력의 양성 교육·지도사업은 세 가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첫째로는, 협동조합 그 자체에 관한 교육의 중요성이다. 협동조합이 그 본질을 지키면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의 기본적 가치와 운영원칙 등에 대해 조합원과 직원들에게 교육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바탕위에서 운영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조합원의 생산·경영과 생활에 관한 기술이나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회원조합의 경영활동을 지도함으로써 조합원의 경제적 지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돕게된다. 이런 교육·지도활동은 농축산업의 대규모화와 조합의 대형화에 따라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셋째로는, 협동조합에 종사하는 직원들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업무의 합리화를 촉진시키기 위함이다. 중앙회의 기능강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문인력의 양성이 중요해지고 있다. 교육·지도사업은 이밖에도 조사 연구 및 홍보활동을 포함한다. 특히 농업의 산업적 지위나 발전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사업이지만 직접적인 수익을 동반하지 않는 비경제적 사업이므로 그간 소홀히 되어 온 감이 없지 않다. Ⅴ.결론 우리는 이번 통합의 계기가 된 소위 "협동조합 개혁" 논의가 어떤 배경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특히 개혁의 주 대상이 된 중앙회에 대한 비판의 핵심이 신용사업의 이익에 편승한 경제사업의 소홀과 부실한 운영, 그리고 조합원이 주인이 아니라 직원이 주인이 되어 조직비대화를 초래한 점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개선방안으로서 주로 논의된 것은 통합보다는 신경분리로 대변되는 전문연합회로의 분리였으며, 이 논의는 아직도 유효하다. 개정 농협법에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법인격을 가진 품목조합연합회의 설립과 그 경제사업이 가능해 졌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중앙회의 원초적인 문제점은 회원조합의 필요에 의해 설립되지 않고 정부의 정책적 필요에 의해 설립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연합조직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조합의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설립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거대 중앙회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서도 다양한 연합조직이 발전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설립요건의 완화와 실시가능 사업의 확대, 조직의 다양성 등이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통합중앙회는 과거보다 더 큰 조직과 다양한 사업을 하게 되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이는 의사결정구조가 훨씬 복잡해짐으로서 회원조합이나 조합원들의 의견수렴과 운영의 투명성 확보가 더욱 어려워 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협동조합이 조합원들을 위한 조직으로서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민주적 운영과 이를 담보하는 운영의 투명성 확보에 있었다. 협동조합의 기본적 가치와 원칙을 지키면서 민주적 의사결정에 의한 투명한 운영이 실현될 때 비로서 농협중앙회가 모든 농업인의 협동조합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