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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엄마’의 망중한에 노을이 아름답다

뉴스관리자 편집장 기자  2006.01.25 1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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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김수자의 다섯 번째 수필집 ‘딸아, 나 괜찮은 엄마지?’를 읽고
그러고 보니 책을 읽어 본지도 오래 되었다. 더욱이 전문 서적이 아닌 수필과 같은 문학 서적은 정말 언제 어떤 책을 읽었는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이니 내가 이러고도 기자인가 싶다.
김수자씨의 다섯 번 째 수필집 ‘딸아, 나 괜찮은 엄마지?’를 받아 든 순간, 나는 옛날 즐겨 보았던 TV외화 드라마 ‘초원의 집’을 떠 올렸다. 대충 80년대쯤에 방영됐던 것으로 알고있는 이 드라마는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내용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특별한 이야기나 극적인 반전이 없으면서도 잔잔한 감동을 줬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니까 ‘초원의 집’의 감동과 같은 김수자씨의 수필에 대한 선입감이 새 수필집을 받아 든 순간, 되살아 난 것이다. 그것은 재빨리 책을 펼쳐들고 싶은 충동이기도 했다.
책을 읽을 때면 누구나 나름대로 버릇이 있다. 어떤 사람은 제목을 먼저 훑어보고, 또 어떤 사람은 가장 재미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부문부터 먼저 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나는 어떤 책이든 책 제목에 관심을 갖는다. 책을 쓴 사람의 의도가 숨어 있으리라는, 어쩌면 기사글의 제목을 뽑는 편집자로서의 직업 의식의 발동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책을 읽고나서 왜 책 제목을 그렇게 선택했는지 나름대로 가늠해보면서 “음, 그래서 이런 제목을…”이라며 혼자 생각해 본다.
왜 책 제목을 ‘딸아, 나 괜찮은 엄마지?’라고 했을까. 이 물음은 이 책의 앞 부분 ‘천국보다 아름다운’ 제하의 미리 쓴 유서에 나온다. 그러나 그 제목이 내 마음에 와닿은 것은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이었다.
김수자씨는 이 책을 4부로 나누고 있는데, 각부별 제목은 ‘눈꽃을 보았느냐<1부>/흐르는 노을도 아름답다<2부>/들풀들의 몸짓<3부>(으로 그린)/정원이 있는 그림<4부>(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로 연결되어 한편의 시가 되고 있어 훌륭한 수필가는 제목을 달아도 이렇게 멋있게 다는가 싶다.그러나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내용을 내 나름대로 ‘1부, 돼지엄마, 2부 망중한, 3부 노을’로 분류하고 싶다. 이는 독후 감상의 재분류이기도 하다.
1부 돼지엄마는, 생각하는 돼지엄마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돼지가 동료 돼지꼬리를 잘라먹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돼지를 키우는 사람뿐이다. 하지만 이를 보고 “넘쳐나는 시간의 홍수속에 떠밀려 시간이 짐이 될 때가 있다”며 호미를 잡는 모습은 절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방초 할아버지와 이웃집 아저씨’는 협동조합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고, ‘한방에 돈 버는 법’은 축산인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똥이 돈이 되고, 돈이 똥이 된다”는 ‘똥철학’이 아닌 ‘돈철학’을 일깨우고 있다. ‘돼지 꿈’은 축산업이 우리 국민의 먹거리 산업으로 잘 육성되고 발전됐으면 하는 꿈을 담고 있다.
2부 망중한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그야말로 망중한의 즐거움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그대 눈동자에 뜨는 달’에서 가장 맛있는 술맛은 일하고 나서 마시는 술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으로 읽혀진다. ‘꽃밭에서’ 식물의 생각과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관찰하고, 식물인간은 식물에 대한 모독이라고 일갈하고 있는가 하면, ‘박새의 죽음’에서 풍장을 언급하며 자연을 노래하고 있는 모습은 자연에 동화된 바로 그 모습으로 느껴진다. ‘오리 이야기’에서는 그 재미있다는 싸움 구경(야생고양이와 까치)을 혼자 독차지 하고 있으니 마냥 부럽기만 하다.
특히 부러운 것은 ‘봄날의 하루’에서 냉이를 깨끗하게 씻어 뜨거운 불에 살짝 덖어 말린 냉이 차 맛이다. 언젠가는 그 냉이 차 맛을 꼭 보고 싶다.
3부 노을은 김수자씨가 ‘안단테칸타빌레’에서 언급한 ‘제3의 인생’이란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암보다 무섭고 호랑이보다 무서운’ 치매의 어머니를 모신 사모곡이 가슴 찡하다. ‘네 둥지를 찾았느냐’며, 모정을 쏟아놓는 장면은 ‘연기는 엄마의 체온’이라는 그의 표현처럼 따뜻하고 정겹다.
이 책의 클라이막스는 역시 노을이다. “(죽어서) 우리 가족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지…어디에 있든 건강하고 자발적인 사람이 되어라. 세상은 자신이 꿈꾸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잃지 말고…”라며 유서를 쓰다가 바라본 노을앞에서 “오늘은 유난히 노을이 아름답다”고 하는 장면은 정말 죽음을 앞두고 모든 세상의 번뇌를 내려놓고 서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난 너희들에게 괜찮은 엄마였는지 궁금하네?”라고 던진 한 마디는 작가의 모습도, ‘이웃아저씨’의 부인 모습도 아닌 엄마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저절로 코끝이 시큰해진다. 이제야 왜 책 제목을 그렇게 선택했는지 알만하다.
아참, ‘깨를 볶다가’에서 중국에서 참깨를 한 보따리 들고와서 얼굴이 붉어지도록 반성하고 있는 모습은 이 책의 재미를 보태주는 깨소금같은 양념이었으며, ‘라스포사’는 그 비싼 모피코트를 혹시나 구입하면 어쩌나 하는 긴박감을 주었는데, 이는 김수자씨가 얼마나 훌륭한 수필가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글이었다고 본다.
나도 이만하면 술먹는 핑계는 하나 생기지 않았나 싶다. 좋은 수필집을 읽었으니 말이다. ‘그대 눈동자에 뜨는 달’에서 처럼.

장지헌 본지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