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험농장을 가다 우리가 견학할 체험농장은 파리에서 서쪽으로 약 2백㎞ 떨어진 ‘노르망디’ 지방에 있었다. 버스 차창 밖으로 아름다운 프랑스의 농촌경관이 마치 오래된 흑백영화처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백년도 더 된 듯한 돌로 쌓은 고택들. 마을마다 한가운데에는 어김없이 높은 성당이 있었고, 감자밭 너머 낡은 창고에서는 금방이라도 ‘라이언’ 일병이 소총을 메고 걸어 나올 것만 같았다. 이렇게 버스로 3시간 쯤 달리니 어느새 오늘의 첫 방문지인 ‘가이웅’ 농장에 도착했다. ‘가이웅’ 농장은 약 30만평 규모의 체험전문 농장으로 시야가 탁 트인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농장이었다. 농장에서 사육하고 있는 가축의 수는 많지 않았지만 소, 말, 염소, 양 등 다양했으며 방목과 친환경농업을 지향하고 있었다. 수용인원 80명의 어린이숙박시설과 식당을 함께 운영하고 있었기에 교육부, 보건부 뿐아니라 소방서의 감독까지 받아야 하는 전업체험농장이었다. 우리 일행은 ‘가이웅’ 농장의 가장 큰 장점이 아름다운 경관이나 시설에 있는 게 아니라 농장주의 뛰어난 자질에 있다는 데 모두 공감했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40대 후반의 이 농장주는 수학, 지리, 역사, 과학 등 모든 학습 분야에 박식했으며 놀랍게도 모든 체험프로그램을 이와 연관시켜 놓았다. 자신의 농장체험을 단순히 농업체험이나 자연학습 위주에서 탈피해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가르치는 새로운 형태의 교육프로그램으로 탈바꿈 시켜놓은 것이다. 중고철재로 만든 천체관측실, 고대화석 전시관, 요리실습실 심지어 어른들을 위한 댄스홀까지 우리 모두 그의 뛰어난 교육적 독창성과 사업수완에 감탄했다. 우리가 농장을 방문한 그 순간에도 학교 교사의 인솔로 예약된 단체 체험단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가이웅’ 농장을 견학하면서 우리는 체험농장의 성패가 우선 농장주의 자질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체험농장의 가장 큰 경쟁력은 농장주 자신’이라고 단언해도 될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는 우리 낙농업이 갖고 있는 특성과 너무나 흡사하다. 목장주가 직접 착유하지 않는 목장이 경쟁력이 없듯이 체험농장에서 농장주를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사람들이 체험을 통해 농장주의 땀과 노동의 소중함, 자연속 삶의 순수함을 함께 느끼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방문지인 ‘노베르’ 체험목장은 프랑스의 전형적인 낙농목장이다. 이 목장 역시 30만평의 면적에 부부 노동력으로 거의 모든 사료를 자급하고 있었으며, ‘노르망’종 60두를 착유하여 하루 평균 9백㎏의 우유를 생산하고 있었다. ‘홀스타인’보다 유생산성이 낮은 ‘노르망’종을 기르는 것은 이 품종에서 생산한 우유를 가지고서야 ‘노르망디’ 특산품인 최고급 ‘까망베르’치즈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베르’ 목장이 ‘가이웅’ 농장과 다른 것은 ‘가이웅’이 철저히 체험위주의 상업목장이라면 ‘노베르’는 우유생산이 우선이고 남는 시간을 목장체험에 할애한다는 것이다. 목장체험은 목장주 부부가 체험단을 2개조로 나누어 교대로 목장소개, 젖 짜기, 버터. 치즈 만들기 등으로 진행한다고 했으며 프로그램 내용이 우리와 유사한데에 깜짝 놀랐다. ‘노베르’목장은 교육시설이나 홍보물 심지어 축주의 말솜씨나 표정까지도 여러 가지 면에서 앞서 견학한 ‘가이웅’농장보다는 허술하고 부족한 아마추어였다. 하지만 이런 점이 목장을 방문한 체험단에게는 오히려 순수하고 진실된 농촌체험 매체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노베르’ 목장을 떠날 때 목장주 내외는 현관에서 우리에게 일일이 조그맣게 비닐로 포장된 건초를 자랑스럽게 나눠 주었다. ‘노르망디’ 지방에서만 생산되는 이 건초를 소에게 먹여 ‘까망베르’치즈를 생산한다는 것인데, 나는 건초를 목장 안주인에게서 받다가 그만 나눠주던 건초만큼이나 거친 그녀의 손을 보고야 말았다. 40대의 나이인데도 깊은 주름으로 마치 60대의 나이로 보였던 그녀,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면서 내내 그녀의 모습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름도 모르는 이 프랑스 부부는 30만평을 경작하고, 60두를 착유하며 그것도 모자라 낙농체험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낙농가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사는 존재인가? 이번 프랑스 체험농장 방문은 우리에게 향후 낙농체험목장의 상업화냐 아니면 교육농장으로의 정착이냐에 대해 많은 논의와 고민의 시간을 갖게 했다. 황병익 회장(낙농경영인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