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Ⅱ 나는 지금도 옛 동료들을 볼 때면 어려운 고비가 많았는데도 협조자보다는 일의 주체가 돼 적극적으로 업무를 추진, 대부분의 일들이 실수 없이 잘 마무리가 될 수 있었다. 나는 그 과정에서 동료직원들에게 어느 누구보다 고생을 많이 하게 했다는 것에 대해 미안한 생각을 하며 영원히 가슴 깊이 간직하고 살아가련다. 그런가하면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마차에 땔감인 장작을 싣고, 서울로 팔러 떠나는 아버지를 위해 새벽 1시면 일어나 집에서 5백m 정도 거리에 있는 산길을 내려가 소 멍에 메는 일을 도우면서 자라왔다. 이때에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나무숲이 우거진 비탈길을 올라 올 때면 무서워서 머리가 삐쭉 삐쭉 곧게 뻗기도 했다. 또한 추운 겨울이면 코끝, 뺨 그리고 귀 끝이 얼어서 참기 어려울 정도였으니 나는 일찍부터 황소가 되기 위한, 아니 농민후계자가 되기 위한 실습을 시작한 것 같다. 이렇듯 나의 살아온 과정을 더듬어 볼 때에 어린시절 마차를 타고 이사를 간 것이며, 새벽이면 소에 멍에를 메고, 소띠 해 새벽에 출생을 한 것, 그리고 어머니께서 듣기 싫도록 불러주신 ‘쇠귀신 같은 놈’ 등등 소와 연관된 추억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소중한 추억을 기리기 위해 자서전의 제목 또한 ‘황소 발자욱’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그리고 책을 집필하면서 이제까지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고 살펴보면서 객관적이고 현실적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어느 부분에서는 주관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았나 하는 대목도 있을 것으로 생각 되지만, 이러한 점이 발견되더라도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나의 잘못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었거나 고통을 받은 분이 있다면 이 또한 이 글을 통해 나를 용서하시고 이해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나 자신을 소가 밟고 또 밟고 , 뜯기고 또 뜯겨도 또 다시 새싹이 돋아나는 길가의 질경이에 비유하며 살아왔다. 내가 걸어가는 길목이 가로막혀 돌아서 가든가, 내가 하고자 하던 일을 포기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항상 정면으로 돌파해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고비 고비 마다에서는 항상 생각하지도 않았던 위인(偉人)이 나를 구해주시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나는 고마운 분들 덕에 가끔 환희의 순간을 맞보면서 성공적으로 일을 완수할 수 있었던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내가 세상에 태어 날 때에 간신히 살아난 것과 같이, 기적 아닌 기적 같은 일이 여러 번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어머님의 말씀을 항상 되새기면서 살아온 황소의 우직함과 쇠고집통의 결산서(決算書)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바보스럽게 살아온 것 같은 생각도 들지만, ‘영리하게 살았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참삶을 누릴 수가 있었을까?’하고 상념(想念)에 잠길 때가 더러 있었다. 그리고 내가 70세가 되는 해, 결혼 40주년이 되는 해(10월 9일)의 2006년 3월 15일인 생일날에 자서전을 발행하고, 교육문화회관에서 조촐한 출판기념회도 개최했다. 이렇게 자서전을 펴내고 행사를 갖게 된 것은 나를 인생에 낙오자가 되지 않도록 이끌어주시고, 밀어주신 모든 분들의 은혜에 보답하고, 옛 동료직원들에게 대한 감사의 표시이며,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나의 인생역정(人生歷程)을 참고해 삶의 지혜를 터득하게 하기위해서 이다. 아울러 축산신문 윤봉중 회장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