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박덩이 넷째 아들 Ⅰ 나의 아버지는 휘자(諱字) 상(相)자, 철(哲)자이며, 어머니는 성씨가 곡부공(曲阜孔)씨이고 휘자는 은(殷)자, 순(順)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해는 다른 해보다도 살기가 어려웠고 대가족인 18식구가 한집에 살았으니 장손 집안의 맏며느리인 어머니는 나를 뱃속에 두고서 매일 죽으로 끼니를 때웠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맥박은 뛰는 것 같은데 숨은 쉬지 못하는 가사상태(假死狀態)였다고 한다. 이때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 답답하고 참담하셨을 것이다. 아이가 태어났는데 젖도 빨지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아이, 집안이 어려워 병원문턱에도 데리고 가지 못하고 사람이 드나드는 문턱에 이불을 덮어 놓고 있던 중 4일째 되던 날 숨을 쉬는 것 같아 아래 목으로 옮겨 놓고 젖을 먹이기 시작했다는 거짓말 같은 옛날이야기, 나는 내가 숨을 쉴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감사를 드릴 뿐이며, 지금도 1년에 5~6회는 선산을 찾아 묘 앞에서 인사를 드리며 후회없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을 한다. 선산에 갈 때는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 두 녀석과 반드시 같이 간다. 아이들이 불평 없이 항상 동행을 해주니 흐뭇할 따름이다. 이렇게 해 나는 넷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내 위로 형님 두 분이 어릴 적에 질병으로 사망해 졸지에 둘째 아들이 됐다. 현재의 형님과는 나이가 열 살이나 차이가 있으며 내 아래로 여동생 한명과 남동생 둘이 있다. 그러므로 본디 7남매 중 현재는 4남 1녀인 5남매가 가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사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온갖 역경을 딛고 길러 주셨기에 공직생활(公職生活) 36년간을, 아니 인생 70년을 지내오면서 역경을 당할 때마다 오뚝이같이 일어날 수 있었다. 특히 경쟁자가 갈 길을 재촉하며 걸어가는 내 다리를 걸며 가는 길을 방해하려 할 땐 세상에 태어나서 초유는 물론이고 젖도 제대로 먹지 못했지만 젖 먹던 힘을 다해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났다. 칠전팔기는 아니지만 불의와 타협하지 아니하고 바보스러울 정도로 꿋꿋하게 오늘까지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인생칠십고래회(人生七十古來稀)라 큰 사위와 큰 딸은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게 됐다. 나는 어려서부터 대가족속에 태어나서 별로 귀여움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것 같다. 항상 불만이 많았던지 말수가 적었고 고집불통에다 거짓말을 자주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마을의 친구나 나보다 나이가 많은 형들과 같이 놀기 위해 환심을 사려고 쌀이나 먹을 것을 몰래 갖다가 주고 나서 어머니에게 발각돼 꾸중을 듣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또한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는 하늘이 맑은 날에도 우산을 달라고 하고, 어머니께서 걱정을 하시면 도망을 쳤다가 다시 집으로 가서 우산을 줘야 학교에 간다고 목청을 높여 때를 써서 해가 뜬 맑은 날에 우산을 쓰고 학교를 가기도 했다 하니 어머니의 속을 억세게 썩여 드렸던 것 같다. 사실 내가 우산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그 당시에 집에는 우산이 매우 귀했던 관계로 형이 우산을 가지고 일찍 나가면 나에게 돌아올 우산이 없었다. 그래서 우산을 쓰고 학교에 가는 것이 소원이었던 때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