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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형의 ‘황소 발자욱’/ 제1부 나는 누구인가

어린 시절 엄한 훈육…자립심·배짱 길러

뉴스관리자 편집장 기자  2006.08.21 11:2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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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부끄럽기도 한 어렸을 적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때로는 구박과 함께 엄한 훈육을 받으며 자라는 동안 스스로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구박덩이 넷째 아들 Ⅱ

나는 초등하교 다닐 때에 새 공책을 사용해본 경우가 없었다. 아버지께서 항상 사용하지 못하는 종이들을 묶어주시면 그것을 공책으로 사용했다. 책가방 또한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닐 때까지도 형이 쓰던 것을 고쳐 쓰곤 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새 공책이나 새 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어느 겨울날의 일이다. 일요일이었는데 무척이나 새 공책이 갖고 싶던 나는 마침 형이 집에 없는 사이 형의 가방에서 새 공책을 꺼냈다. 그리고 글씨가 적혀 있는 공책 앞면의 2~3장의 종이를 찢어 버리고 내 가방에 집어넣었다.
이틀 뒤 아침에 아버지께서 내 가방을 열어보시더니 형의 공책을 찾아내셨다. 그리고는 갑자기 화로 속 쇠로 만들어진 인두로 내 머리를 때리시는 것이 아닌가? 그 때에 아픔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는데 나는 오기가 발동해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눈을 떠 보니 방바닥에는 인두의 목이 부러져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다행히 화로에는 숯이 달궈져 있지 않아 뜨겁지는 않았다.
내가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자 아버지께서는 더욱 역정을 내시며 볼기를 때리셨고, 이를 밖에서 지켜보시던 어머니는 황급히 방으로 들어오셔서 “이 쇠귀신 같은 놈아 도망이라도 가야지”라고 하시며 나를 가슴에 품어 안으시고 아버지가 더 매를 때리지 못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인두로 어떻게 아이 머리를 때리느냐”고 아버지와 말다툼을 하셨다. 그 때에 인두로 머리를 맞아서 그런지 내 머리는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렇게 좋지가 않은 것이 사실이니 어찌하겠는가?
이상의 몇 가지 예를 보더라도 나는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거나 시원시원한 성격이 아니고 어릴 때부터도 무뚝뚝하고 말이 없으며 고집이 세었으니 가족은 물론이고 형으로부터 귀여움을 받았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어머니로부터 똑똑한 형들은 다 죽고 쇠귀신 같은 놈이 살아 속을 썩인다는 구박을 자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형과의 나이차가 많아서 그랬는지 형으로부터는 단 한번도 꾸지람이나 매를 맞은 경우가 없었다.
내가 부끄럽기도한 어렸을 적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때로는 구박과 함께 엄한 훈육을 받으며 자라는 동안 스스로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어떻게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혼자서 살아남아야겠다는 자립심이 강했으며, 어떤 일을 하기로 결정하면 그 일에 집중해 결과를 도출해 내는 인격(人格)을 형성할 수 있었고 일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배짱 또한 키울 수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강점들이 내 후회없는 삶의 원동력이 됐기에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면 부모님의 삶을 통해 전수 받은 나의 인생철학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사례로 가문의 장손이신 아버지는 안양에 사셨고 친척들은 모두 안성과 평택지역에 거주하고 계셨다. 해방과 6.25전후에는 교통이 불편해 먼 거리라도 걸어 다녀야 했기에 명절(名節)과 기제사(忌祭祀)날이면 친척들은 아침 일찍 나서야 해가 넘어갈 무렵까지 안양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 셋째 할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당숙들 모두가 불평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어머니께서는 고마움에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집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에게 쌀 또는 생활필수품을 매번 챙겨주셨으니 이를 통해 인척간의 친화력(親和力)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터득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