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양계 질병은 조용한 때가 없었다고 보지만 지난해 말부터는 발병 빈도가 극에 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AI)는 흔히 천의 얼굴을 가진 병원체라고도 한다. 사람에 유행하는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도 여러 형이 있고(A, B, C) 같은 형의 바이러스일지라도 여러 종류의 아형이 있어 효과적인 백신을 만드는데 어려움이 있다. 조류에 유행하는 AI 바이러스(AIV)는 A형만 있지만 그 안에 100종이 넘는 준 아형이 있어 실제로는 사람 독감 바이러스보다 훨씬 많은 형들이 있다. AIV의 병원성 또한 극히 다양해서 100% 치사율에 이를 정도로 강한 것도 있지만 거의 증상조차 일으키지 않는 약 병원성도 있다. 1997년 홍콩에서 사람까지 치사시킨 AI는 전형적인 강병원성 AI의 예이다. 전염 방법도 비말(공기)과 소화기 전염에 의한다고 하지만 좀더 구체적으로는 밝혀지지 않은 부분들도 많다. AI는 전염성이 가장 강한 병중의 하나로 꼽히는데도 1996년 국내에서 최초로 발병한 이래 1999년 말까지 3년 넘게 단 한 건의 양성도 검출되지 않은 점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역학상의 숙제로 남아있다. 1999년 11월부터 다시 유행하기 시작한 AIV는 1996년과 같은 형(H9N2)이나 필자가 조사한 성적에 의하면 32%의 농장과 22%의 계군이 AI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날 정도로 발병 빈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적인 발병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 유행하는 AIV와 같은 형의 AI가 중국에서도 유행하는데 소수이지만 독감 환자에서도 같은 형의 바이러스가 분리됐다는 보고도 있고 브로일러 계군에서까지 흔히 발병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풍문도 있다. 빈도는 낮지만 국내에서도 브로일러 계군에서 마저 AI감염이 확인되고 있으며 특정 종계나 부화장과 관련이 있는 징후도 나타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AI 단독 발병의 경우보다 뉴캣슬병(ND)과 같이 발병하는 빈도가 높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산란계 농장들은 가금티프스에 오염돼 있고 일부 종계군까지 오염돼 있는 상황에서 ND만 발병해도 티프스 발병을 악화시키는데 AI까지 겹치게되니 그야말로 엎친데 덮친 격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내에 유행하고 있는 AI는 약병원성으로 그 자체만으로는 그리 큰 피해를 미치지 않는다. 앞에 언급했듯이 3년 동안 발병이 없었던 때도 있었지만 발병한 농장에서 여러 계군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데도 몇 개월 후에 농장에서 완전히 소멸되는 경우도 접하고 있다. 발병 계사에서도 어떤 줄은 감염되고 어떤 줄은 감염이 안된 상태로 상당 기간 유지되는 경우도 자주 목격되는 것으로 보아 분변 오염이 주된 전염 수단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한다면 신발이나 손만이라도 제대로 소독하고 출입한다면 계사간 전염도 피할 수 있는 성격으로 본다. 이러한 예는 티프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AI 피해가 큰 농장일수록 AI만이 아닌 두 가지, 세 가지 질병이 동시에 발병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그만큼 차단 방역이 허술 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떤 전염병이나 가장 무서운 전염 수단은 외부로부터 들여오는 닭이며 다음으로 닭과 관련이 있는 수송 차량이며 난좌며 (백신접종, 인공수정 등) 닭을 다루는 사람들이다. 어느 나라나 강 병원성 AI는 살처분 정책을 채택하고 있으며 약 병원성 AI에 대해서는 어떤 대안(백신)도 없는 상태이다. 차단 방역 외에 대안이 없는 AI에 대해 방역 당국만 채근할 것이 아니라 각자의 문은 각자가 단속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언제부터인가 유행하든 약병원성 AI가 강 병원성 AI로 변하여 쑥대밭이 됐든 이태리 양계가 지난해 4월 이후 발병이 없어 국제 수역기구(OIE)로부터 공식적으로 비 발병국 인증을 받았다지만 다 망한 후에 인증이 무슨 가치가 있을지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