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교 입학 때까지 행운인지, 기적인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턱걸이로 진학해 대학문턱을 넘어서게 됐다. 지금도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에 무슨 영향으로 홀로서지 않으면 살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지 알 수가 없다. 그때부터 형제도, 부모도, 친척도 나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살아가야 겠다는 생각을 굳힌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로서 나는 대학졸업을 할 때부터 아버지께서 목장할 땅을, 그리고 집을 사주신다는 것을 사양하며 살아왔고 셋째 숙부의 도움도 일체 받지를 않았다. 다행히 어머니께서 숙부에게 대학까지 가리킨 아들을 양자로 줄 수 없으니 다른 조카를 선택하라고 완곡히 말씀하셔서 양자의 짐도 대학졸업과 동시에 덜게 됐다. 다시 말하자면 자수성가의 길을 선택해 오늘에 이르렀으나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가르침을 잊고 지낸 것은 아니다. 다시 대학시절의 이야기이다. 나는 대학입학과 동시에 국가기술고등고시를 준비하기로 하고 낮에는 학교 도서실에서 시간을 보냈고 밤에는 집에 돌아와 책상에서 3년간 토막잠을 자면서 공부를 했다. 겨울에는 그 추운 방에서 공부를 한답시고 의자에서 잠을 자는데 발바닥에 따듯한 기운이 올라오는 감을 느껴 마루로 나가 보면 형수께서 내 방 아궁이에 불을 때고 계셨다. 그러나 나는 자칫 정신이 해이해 질까봐 형수께서 잠도 못 주무시고 밤을 기다렸다가 불을 집히는 고생을 무시하고 아궁이에 불을 모두 앞마당으로 끌어내어 밟아 버리는 일이 겨울마다 종종 있었다. 이렇게 3년을 공부하며 4학년 년초에 볼 국가기술고등고시 시험에 대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3학년 11월경, 국가기술고등고시가 폐지된다는 뜻밖의 비보를 접하고 분루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고등고시 이외의 모든 것은 버리고 배수진을 치고 공부를 했는데 또 한번 인생에 쓰디쓴 고배를 마시게 됐다. 그래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인생을 정리할 시간을 갖고자 자원입대를 신청해 1959년 2월에 육군논산훈련소 29연대에 입소하게 됐다. 그리고 나는 일반병과로 군번을 받으면 후방에 배치된 후에 1년이 넘어서 학병으로 변경신청을 해도 관계가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최전방 배치를 원해 처음부터 학병군번 ‘0017773번’을 받았다. 그래서 한탄강변 백마고지가 보이는 최전방부대인 11사단 화랑부대 13연대 9중대 3소대에서 배치됐고, 3개월 후부터는 중대의 일종계 업무를 보면서 1년 6개월의 군대생활을 마감했다. 그 당시 아버지께서 훈련소에 면회를 오셔서 부대배치는 미리 부탁을 해야 후방부대에 배치를 받을 수 있다는 말씀에 나는 이미 학병군번으로 변경해서 전방부대로 지원을 했으니 걱정하시지 마시라고 당당히 말씀을 드렸다. 그렇게 해 전방소대에 배치된 첫 날 새벽 4시경이었다. 부대 고참들이 나에게 대학을 다니다 온 것이며 가방에 책을 넣어 온 것이 건방지다고 얼차려를 주며 야전용 곡괭이 자루로 6대를 때리는 것이었다. 그때 정신이 번쩍 들면서 이것이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을 뼈저리게 느꼈다. 군대에서 전방생활은 내 오늘이 있기까지 인생에서 인내와 기다림 그리고 저돌적인 추진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 됐다. 그리고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죽을 각오를 하고, 모험을, 그리고 배수진을 치고 목표를 향해 도전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