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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형의 ‘황소 발자욱’ / 제2부 시련은 극복하라고 오는 것

지역개발지도원 시험 응시…호랑이 꿈꾸고 합격

뉴스관리자 편집장 기자  2006.09.06 14: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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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첫출발서부터 맞이한 시련 Ⅰ

제대 후 복학을 한 나는 1년 6개월이 늦은 1961년 9월에 대학을 졸업하게 됐다. 졸업장을 받기전인 1961년 8월 25일 나는 부흥부에서 전공과 관계없이 대학졸업자를 대상으로 5백명의 지역사회개발요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시험에 응시하게 됐다.
물론 그 당시에는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을 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으며 더군다나 그해에는 직원 모집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농촌진흥청의 연구원 및 지도원 모집과 농협사원 모집마저 없었다.
이러한 이류로 나는 합격을 해야 한다는 일념이 더욱 절실해 졌고 짧은 시간이나마 벼락치기 공부에 전념했다.
시험을 보러 가는 날 밤의 꿈 이야기다. 내가 시험을 보러 새벽에 싸리문을 열고 나가는데 싸리문기둥에는 불을 밝히는 전등이 켜져 있었고 그 싸리 대문기둥 옆에 송아지만한 큰 호랑이가 정좌(正坐)를 하고 앉아서 빛나는 푸른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시험을 잘보고 오라는 듯이 다정하게 마중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신기한 마음에 뒤를 몇 번이고 돌아보며 호랑이에게 마음속으로 “고맙다, 우리 집을 잘 지켜줘”라고 부탁을 하고 시험장을 가려 기차에 올라탔다. 그 영상은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우리 집은 내가 어렸을 때에 살던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인 초가로 지붕과 울타리는 짚으로 엮은 이엉으로 만들어 졌으며, 마루 앞의 마당에는 외양간이 있어 우리 가족의 삶을 책임지고 있는 누런 황소의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는 선산을 찾아 새로운 다짐을 하거나 호랑이 꿈을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편안해 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회에 첫 출발하는 날의 밤, 꿈에서 본 호랑이가 나의 일생동안 가슴 깊숙이 잠재하고 있으며 심리적인 안정을 갖는데 정신적인 지주역할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도 내 집 현관 벽에는 호랑이 그림이 걸려 있고, 손자들이 다녀 갈 때에는 ‘호랑이야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잘 지켜줘’라고 부탁을 하고 가도록 권유한다. 이는 손자들 자신이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보호자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교육적인 효과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시험 보기 전날 밤 호랑이 꿈의 덕택으로 시험을 잘 보았는지 생애 처음으로 보는 취직시험에 합격을 했고 3개월간의 교육을 거쳐 1961년 12월 6일 경상북도 고령군 매촌리에 농림부 지역사회개발국 지도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시험 볼 때에는 보사부업무였으나 발령을 받을 때에는 업무가 농림부로 이관이 됐고, 그 다음해 3월경에는 농촌진흥청 지도원으로 편입이 됐다.
나는 그 당시에 지역사회개발요원이 부락에 정착해 가장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었다는 매촌리에서 사회의 첫출발을 하게 됐으며 지도요원으로서 부락의 사회, 경제, 교육(어린이로부터 청소년으로 구성된 4H, 부녀회 등 부락의 각종 조직의 활성화), 농업기술 및 새마을 운동을 겸한 농촌의 근대화를 이끄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게 됐다.
그렇지만 농촌지도소로 편입이 되면서 봉급은 한달에 5천8백원에서 3천8백원으로 감봉됐고, 내 인생을 걸기에는 전공과 먼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