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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농발전 토양 조성…노익장 과시

뉴스관리자 편집장 기자  2006.09.11 10: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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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국내 낙농발전을 위해 노익장을 과시했던 정원영옹(85세). 그는 40대 후반 고향인 양평군 옥천면에서 면장으로 공직 생활을 마감하던 1971년 낙농을 시작했다. 1993년까지 23년 동안 낙농을 하면서 하루 최고 8백kg의 원유를 빙그레로 내면서 차남에게 대를 물렸다. 그러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한채 젖소를 모두 처분해야했던 아픔을 안고 있는 정원영옹은 “아들이 그때 젖소를 팔지 않았더라면 지금 내라도 할 텐데…”라며 미수(米壽)를 목전에 두고서도 낙농업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정원영옹은 80년대 빙그레 양평낙우회장·빙그레연합낙우회장·양평낙협발기위원장·한국낙농육우협회 이사 등을 역임하면서 국내 낙농발전을 위해 매진했다. 서울우유 양평낙우회 이병일회장은 “정회장은 80년대 빙그레유업으로 함께 납유하면서 최신 낙농기술과 정보를 전달해주던 웃어른이자 스승였다”며 “낙농발전을 위한 길이라면 버스와 기차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어디든지 달려가는 원로 낙농인”이라고 덧붙였다. 정원영옹은 90년대 초까지 사일리지용 옥수수를 재배했던 옥천면 아신리 밭에 2층짜리 건물을 세우고 월세를 받으면서 소일 하는데 “월세를 10개월 동안 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경기가 나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기력은 50대 장년 못지않게 왕성하다고 했다.

조용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