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금의리 71번지 오뚜기목장 김유헌씨(59세)·임효순씨(51세)부부의 말이다. 목장입구에 들어서면 국화·장미·패랭이·능소화·황철쭉이 차례로 반긴다. 차량으로 목장에 들어가려면 소독분무기실을 지나야 한다. 소독약은 장안면에서 분기별로 나눠 주는 것이 부족해 H약품을 별도로 구입해 이용한다. 우사는 매주 한번씩 정기적으로 소독하고, 비가 온 뒤 또는 미심쩍다고 생각되면 한다. 방역의식이 높은데 대해 김유헌씨는 “1998년 브루셀라가 한번 찾아와 많은 소를 잃었다”면서 “그 이후 소독만큼은 철저하게 한다”고 밝혔다. 우사와 살림집 사이에 탠덤착유실(4두 복열)이 있는데 착유업무를 맡은 임효순씨가 시간이 나면 쓸고 닦아서 윤이 날 정도로 청결하다. 착유전후 유두침지는 물론 소독된 수건으로 유두를 깨끗이 닦은 후 착유를 하여 오뚜기목장 원유는 올해 들어 1㎖당 체세포수 11만미만, 세균수 5천미만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한다. 현재 사육중인 젖소 1백1두 가운데 착유우는 45두. 이달 들어 하루 평균 1천4백50㎏의 원유를 매일유업으로 내고 있다. 하절기인데도 두당평균 32㎏씩 생산하는 셈이다. 美군납우유 목장 7개소 가운데 한 목장으로 환경개선제를 급여하고 우사에 모기퇴치기구를 설치해야 하는 등 그 기준이 까다로워 오뚜기목장은 해충이 거의 없다. 이들 부부가 낙농인이 된 동기는 1982년 용인서 낙농을 하던 형으로부터 수정단계에 접어든 처녀젖소 5두를 분양 받으면서다. 그러나 땅 한 평 없던 이들 부부로서는 남의 목장 소를 돌보면서 그 우사 한쪽에서 키워야 했고 착유실 옆에 살림방을 만들어 한 지붕 아래 젖소와 함께 생활을 했다. 그러면서도 김유헌씨 부부는 항상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고 근면·성실함으로 일관해 1991년 금의리 산야 1만5천평을 구입했다. 남의 땅만 일구고 남의 집에서만 살았던 김유헌씨 부부는 “밤에도 잠이 오지를 않아 손을 서로 잡고 금의리 땅을 수십차례 들르면서 이곳에 우사를 짓고 저곳에는 창고와 집을 지어야 겠다는 설계를 했던 일을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 기뻐서 가슴이 쿵쾅거린다”고 한다. 그렇지만 오뚜기목장도 경영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1998년 브루셀라가 찾아와 많은 젖소를 잃었으나 오뚜기처럼 일어섰다. “가족이라는 한울타리속의 딸<현정(28세>과 아들<현수(25세·경희대재학)>의 힘이 컸다”고 전제한 이들 부부는 “딸이 착유하는 일을 4년 동안 돕다가 발안으로 출가했는데 지금도 종종 들려 돕고 있으며, 아들도 거들고 있어 낙농이 즐겁다”고 덧붙였다. 김유헌씨는 자가 5천평 외에 평당 1천원씩 임대료를 주고 밭 1만5천평을 포함, 모두 2만평에 사일리지용 옥수수를 재배한다. 김유헌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2만5천평을 임대했었지만 근년 들어 인삼재배농가가 임대료를 올려놓아 1만5천평으로 낮췄다”며 “그러나 연중 사일리지급여가 가능하여 원유생산비는 1㎏당 2백80~3백원 사이로 낮다”고 말했다. 후작은 않고 겨울김장에 활용할 알타리무우 재배 농가에 평당 5백원에 임대한다. 결국 김유헌씨가 옥수수 재배를 위해 임대한 임대료는 평당 5백원으로 1만5천평 임대료는 7백50만원 정도다. 소1백두에서 생산되는 축분뇨는 스키드로더로 비스듬히 경사진 30평규모 분뇨처리장으로 옮겨 1차 숙성시킨 후 1백40평규모 퇴비사로 옮겨 사용한다. 그 물량이 절대 부족해 인근 목장에서 축분뇨를 구입해 밭에 넣는 실정이라고 한다. “국내산 축산물 소비 확대를 위해서는 전 축산인이 깨끗한 축산, 아름다운 농장, 안전한 축산물 생산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 김유헌씨는 매일유업연합낙우회장직을 맡고 있는 낙농지도자다. 조용환 ywcho@chuksan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