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농장은 공산품을 생산하는 공업시설과 비슷할 정도로 현대화되고 산업화되어 갈 것으로 전망하는 이들이 많다. 그 이전에 위생적이고 깨끗한 식품생산기지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때문에 벌써부터 규모화 된 농가들은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미리 준비하는 강력한 추진력을 보이고 있다. 한우산업의 근대사를 돌아보면 ‘육량=돈’이되는 시기가 있었다. 거세 고급육 생산의 개념이 도입되기 전까지만 해도 크게 키우는 것이 개량의 목표가 될 정도였다. 축산물등급판정제도가 도입된 이후로 정부의 주도하에 거세고급육 생산이 급속히 확산됐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50%이상의 농가들이 거세 고급육 생산의 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당시에는 5% 미만의 농가만 거세고급육 생산에 관심을 가졌다. 누구보다 빨리 초기에 거세고급육에 몸을 던진 한우농가들의 경우 지금은 상대적으로 앞선 자리에까지 올랐다. ‘고급육이 곧 돈’ 이라는 새로운 기류에 일찍 주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깨끗한 목장 가꾸기’(일명: 크린팜 운동) 역시 마찬가지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 깨끗한 환경에서 사육…“가격 더 받아요” ◈농장경영 자신감 얻어 경기도 화성의 불기둥농장. 젊은 한우인 양정석 불기둥농장의 대표는 농장을 깨끗하게 가꾸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변한 것은 주위의 시선이라고 말한다. 양 대표는 “처음 귀농을 하고 나서 축산업을 바라보는 주위의 곱지않은 시선 때문에 한동안 가축을 키우는 것에 대해 자신감을 갖기 어려웠다. 하지만 내가 농장을 가꾸는 것에 관심을 갖고 농장의 모습이 하나둘 변해가면서 주위의 나와 내 농장 그리고 우리 가족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농장경영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던 그에게 불기둥농장의 대표라는 자신감을 심어 주는 중요한 기회가 됐다. 번식우를 전문으로 사육하는 불기둥농장의 경우는 시장보다는 농장 내 거래를 주로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농장의 깨끗한 이미지가 불기둥농장표 송아지의 가치를 높이는데 일조하기 때문이다. “비육농가들이 송아지를 구입하기 위해 농장을 방문하면 아무래도 송아지들이 깨끗한 환경에서 위생적으로 사육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그 가치가 올라가게 마련”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 농장의 송아지는 미리 예약을 해야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인기가 높다. 그는 크린팜운동에 대해 “많은 시설비를 투입해 아름다운 목장을 가꾸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영세농가들에게 이것은 그림에 떡일 뿐, 작은 것부터 실천해 나가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농장을 조금만 관심있게 살펴보면 관리인의 작은 손길하나로도 내 농장이 좀 더 아름다워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는 나름의 견해를 나타냈다. 불기둥 농장에 있어 크린팜은 유형의 자산은 물론 수치로 계산할 수 없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점에서 크게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축산이 가야할 길 깨끗한 농장만들기 열풍은 축산업계 전체에 불고 있다. 악취나 민원 등으로 맘 고생하는 농가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되고 있다. 한우농가의 경우 상대적으로 분뇨 문제로 고민하는 농가들이 적지만 환경에 대한 규제가 날로 강화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한우도 환경문제에 있어 자유로울 수는 없다. 친환경 무항생제 축산을 몸소 실천해오고 있는 한우전문 브랜드 한단고기의 신승호 대표는“친환경축산을 처음에 실천하기는 어렵지만 우리축산이 살길이며 우리축산의 미래를 위해서 언젠가는 가야할 길”이라고 강조한다. 자체 농장에서 친환경 무항생제로 키운 한우를 ‘한단고기’라는 고유브랜드로 만만치 않은 가격임에도 전국적으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 또한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이미지를 부각시킨 결과다. 신 대표는 “최근 정부에서도 친환경축산에 지원을 확대하고 농가들도 전국적으로 예전보다 관심이 높지만 중요한 것은 농가의 의지와 자발적인 참여”라며 “사실 무항생제 친환경축산은 말과는 달리 실천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축산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면 선택의 여지는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서울시 도곡동 타워팰리스 내 벽제갈비에 한우를 공급하는 농장으로 유명한 포천한창목장의 김인필 대표 역시 크린팜 매니아 가운데 한명이다. 그는 “이제는 우리의 이웃들하고 함께 공생하면서 축산업이 혐오시설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버려야 한다”라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기도 하다. 한창목장은 현재 한우 한 마리당 5.5평의 여유로운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농장주변으로 대규모의 조경수와 야생 들국화 등을 심고, 산책로를 만들어 지역주민들에게 안락한 환경을 제공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쾌적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자라는 한우들의 육질은 단연 최고급. 이곳에서 생산되는 한우는 전량 벽제갈비에 공급되어 보통 한우의 2배가 넘는 고가에 팔리고 있다. 말 그대로 크린팜으로 돈을 벌고 있는 표본이다. ◈친환경 순환농업과 크린팜 축산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미래 축산의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측면에서 친환경 순환농업과 크린팜 운동은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전북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총체보리·벼를 이용한 친환경 순환농업이 한우산업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쌀이 남아도는 현실에서 사료 자급율을 높여 축산업경쟁력을 강화하고 농지를 유지해 식량안보적인 면에서도 유리하다는 측면에서 개방화 시대의 전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사료작물의 재배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축산분뇨의 처리에 사료작물재배지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북 오성그린농장(대표 김상준)의 경우 총 650마리의 사육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국내 굴지의 기업형 전업농이다. 조사료포 만해도 무려 20만평이다. 농장에서 나오는 분뇨를 퇴비화해 전량 조사료포에 살포하는 자연순환형 농업에 가까이 가고 있다. 만약 이 농장이 조사료포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쏟아져 나오는 분뇨를 해결하는 것이 농장의 최대 과제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충분한 조사료의 확보는 생산비를 낮추고 분뇨를 처리해 주는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경기도 연천군의 명성농장(대표 명인구)의 경우 2만여 평의 초지에서 소가 풀을 뜯고 있으며 인근주변에 사료포만 7만평을 갖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양질의 조사료로 소를 사육하고 있다. 또한, 야생 갈대를 채취, 곤포 사일리지를 만들어 소에게 급여함으로써 생산비를 최대한 낮추고 있다. 명성농장에서 나오는 분뇨도 전량 자체 조사료포에 살포하는 것 외에 식용지렁이 생산에 활용해 농장의 부수입을 올리는데 한몫하고 있다. 타 농장에선 골칫거리인 분뇨로 부수입까지 올리고 있으니 부러워 할 만 하다. 축산업은 생산위주에서 소비자 중심의 산업으로 체질개선을 한 지 오래다. 현재 2백여개가 넘는 축산물브랜드가 있지만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90%이상이 머지않아 사라지게 될 전망이다. 아직까진 고급육만 생산하면 높은 가격을 받고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일지 모르나 머지않아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고서는 경쟁력을 갖기 어려울 것이 자명하다. ◈크린팜은 곧 ‘한국형 축산업’ 일부 선도농가들이 앞서 깨끗한 농장 만들기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많은 농가들이 ‘규모가 크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깨끗한 농장가꾸기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농장이 좀 지저분하더라도 고급육만 잘 만들어 내면 그것이 농장의 수익에 더 도움이 된다고 자위하는 사람도 있다. 크린팜은 지금이 당장이 아닌 미래를 보는 시야에서 그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뉴질랜드나 호주, 북유럽 같은 축산 선진국의 환경을 가지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그들과 같은 축산을 하라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크린팜운동은 농가들에게 이런 축산 선진국형 농장을 하자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최소한 지켜야 할 것은 지키면서 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형 축산을 해나가자는 것이다. 내 농장 주변의 쓰레기를 줍는 것에서 크린팜은 시작되고 이것이 농장의 미래를 준비하는 첫걸음임을 모든 축산농가들이 인식한다면 우리 축산을 바라보는 색안경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이동일 dilee@chuksan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