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축장이 축산물 위생·안전성 좌우 21세기 먹거리산업에 있어서의 최대 화두는 위생과 안전성이다. 육류뿐만 아니라 전체 식량생산량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에게 있어 식품 선택의 기준은 맛과 양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영양적 가치와 그 이상으로까지 옮겨가고 있다. 웰빙 바람과 함께 사람들은 특정 식품에 함유된 위해성분과 질병전이의 위험이 있는 미생물, 항생제 잔류량 등에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게다가 현대인들의 변화된 생활패턴은 식습관에 있어서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굽고, 끓이고, 볶는 등의 조리행위를 생략한 간편식품이 식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났고, 조리과정을 단축할 수 있는 가공식품도 그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이러한 현상은 축산물 소비에 있어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각종 질병 및 식중독 사고 등으로 식품의 위생과 안전성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위생적이고 안전한 축산물 생산에 있어 생산단계 못지않게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도축가공처리장이다. 깨끗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사육된 가축이 농장에서 출하돼 축산식품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거치는 과정이 도축 및 가공처리다. 때문에 축산물 생산의 허리역할을 하는 도축장의 위생상태가 축산물의 위생과 안전성을 좌우하는 커다란 요소가 되고 있다. ■HACCP계기로 혐오시설서 탈피 2002년 도축장 HACCP(Hazard Analysis Critical Control Point: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인증이 전격적으로 이뤄지면서 전국 80여개 도축장은 일제히 막대한 자본을 들여 설비교체 및 리모델링을 실시했다. 국내의 웬만한 도축장들이 하루 수용 가능한 도축물량은 평균 돼지 5백두, 소 20두 가량. 이 정도 규모의 도축장 한개가 HACCP 인증을 받기 위해 초기 투입한 비용만 해도 적게 잡아 15억원이다. HACCP 인증 이전의 도축장은 그야말로 일반인들에게 혐오시설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가축운반차량의 상하차 구역 입구에 셔터가 설치돼 작업시간외에는 입구가 차단되고 계류, 도살, 가공, 포장 단계별로 자동개폐문이 설치돼 있지만 불과 4~5년전만 해도 웬만한 도축장에는 제대로 된 문이 없었다. 있다 해도 오래되고 낡은 상태라 여닫기가 용이하지 않아 계류장과 운동장에서도 톱질과 발골하는 모든 과정이 훤히(?) 보이는 상태에서 작업이 이뤄졌다. 또한 도축장내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구조로 인해 청소마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듯 낙후되고 협오스럽던 도축장이 HACCP 인증을 계기로 첨단시설 및 장비와 단계별 전문인력을 투입해 위생적이고 안전한 식품생산기지로 탈바꿈했다. 계류, 도살, 예냉, 발골 및 가공, 포장에 이르기까지 과정마다 작업물량이 이동하는 레일 경로를 제외한 나머지 문은 모두 자동개폐식이다. 또 외부에서 유입되는 위해요소의 차단을 위해 설치된 소독조 및 소독실, 작업복, 손, 장화 소독 등은 도축작업장내 출입을 위한 필수코스가 됐다. 도축업체 관계자들은 “예전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것”이라며 “도축가공처리과정에서 충분한 물을 사용해 세척하고, 가공이 끝난 제품에 대한 냉장설비 뿐만 아니라 발골실에서도 냉방시설이 완비돼 교차위험 요소를 줄이고 있다. 위생을 위한 소독과정도 철저하게 이뤄지고 작업도구 소독은 온도센서를 통해 정확성을 기하는 등 도축장은 첨단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전과정 위해요소 차단 ‘만전’ 충북 음성군에 소재한 대상팜스코 육가공장을 찾은 지난 9월 20일. 여느 때에 비해 늘어난 도축물량으로 인해 모든 일손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이곳에선 계류장부터 가공 및 포장단계에 이르기까지 자동레일로 물량이 이동되고 있었다. 자동레일이 다음단계로 이동하는 부분에만 작은 통로가 나있고 모든 출입문은 봉쇄돼 있다. 출입문을 열고 닫기 위해서는 버튼을 조작해야만 한다. 지육이 자동레일을 통해 이동하면 가공과정 곳곳에 배치된 작업자들은 맡은 부위를 자신만의 작업도구로 해체한다. 이곳 근로자들은 모두 10년 이상 근무해온 숙련된 기술자들이다. 돼지 최대 1천2백두까지 수용이 가능한 계류장을 포함해 82년 준공당시 전국에서 최대의 도축가공처리 능력을 보유, 도축에서 포장에 이르기까지 일자라인을 갖추고 있는 이곳은 그만큼 빠르고 효율적인 작업처리능력으로 국내에서 손꼽히고 있는 도축가공처리장이다. 대상팜스코 변병성 상무는 “여기서 그치치 않고 보다 깨끗하고 쾌적한 가공처리환경을 위해 작업장내 낡은 바닥과 천정 보수공사를 주말을 이용해 단행하고 있다”며 “일선 도축장에서는 해마다 HACCP 인증 심사를 받으며 노후화된 장비 교체 및 시설투자, 전문인력 확보 등 우리 축산물의 위생과 안전을 책임지는 중추기관으로서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축산물의 안전성을 위해 모든 도축장에서는 수의사 축산물도축검사관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모든 도축장에는 1명 내지 2명의 검사관과 2명에서 많게는 4명정도의 검사보조원이 상주하고 있다. 이들은 생축이 운반돼 계류상태에서부터 콜레라, 구제역, 브루셀라, 오제스키, 광우병 등 제1종 내지 2종 법정전염병 감염 여부에 대한 육안검사를 실시한다. 또 지육 및 내장검사에서도 살모넬라, 식중독균 등의 미생물검사와 항생제 잔류량 검사를 실시한다. 경기도 포천 소재 포천농축산 김기철 검사관은 “모든 소와 돼지에 대한 질병감염 유무에 대한 육안검사를 하고, 감염축은 격리한다. 검사관이 이상이 없다고 판정해야만 도축이 이뤄지는 것”이라며 “특히 항생제 잔류량 기준치 위반 농가는 6개월간 검사대상이 되고 과태료가 부가되는 등 패널티제도가 운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구조조정, 시설지원…정책배려 절실 소위 축산선진국으로 불리는 많은 나라들이 도축가공과정에서의 위생과 안전성에 역점을 두고 생산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는 도축가공 단계에서 위생과 안전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야말로 믿고 소비할 수 있는 축산물을 소비자에게 당당히 내놓을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는 점을 반증한다. 국내 도축업계는 HACCP 제도가 도입 이후 지금껏 악화되고 있는 경영여건에도 불구하고 위생과 안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국내 도축장이 한층 업그레이드 되기 위해서는 난립한 80여개의 도축장이 구조조정 및 통폐합을 통해 25%수준으로 숫자를 줄이고, 보다 첨단화된 장비와 시설로 무장해야 한다는 것이 도축업계의 주장인데 이를 위해서는 정부차원의 과감한 정책지원 및 배려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축산업 대외시장 개방에 있어 우리 축산물의 경쟁력이 한층 배가되기 위해서는 보다 투명하고 깨끗한 생산환경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임을 누구나 인정하듯이 우리나라도 정부차원의 도축장 지원 및 육성책이 긴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도영경 ykdo@chuksan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