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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형의 ‘황소 발자욱’ / 제2부 시련은 극복하라고 오는 것

목포행 완행열차 타고 검소히 제주 출장, 과장 2등칸 배표 ‘3등칸’으로 교환 명령

뉴스관리자 편집장 기자  2006.10.16 12: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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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혹독한 훈련 Ⅱ

제주도로 출장을 가기위해 서울기차역에서 밤 10시 경 과장을 만나 서울기차역을 출발하는 목포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우리가 탄 것은 목포에 도착할 때까지 모든 기차역에서 정차해 손님을 내리고, 태우고 또 기적을 울리며 떠나는 전형적인 완행열차. 잘~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대전 발 0시 50분의 목포행 완행열차. 열차 안은 한동안 시끌벅적하다 밤 12시가 넘어 사뭇 조용해지자 여기저기서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가 아마 초여름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6시 30분경에 목포기차역에 내리니 날은 밝아오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고, 하여튼 여느 시골 기차역의 모습 그대로였다.
기차역을 나오자 과장께서는 주위를 살피시더니 이제 여관에 가서 눈을 좀 붙이고 내일부터 강의 할 자료를 본 다음에 밤에 떠나는 제주도행 여객선을 타고 가자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아침을 먹고 부지런히 여객선 부두터미널에 가서 2등 칸 배표를 2장 구입해가지고 돌아와 과장님께 보고를 드렸다. 하지만 과장님께선 뜻밖에도 다시 가서 3등 칸 표로 바꿔오라고 말씀, 아니 명령을 하시는 것이었다.
말이 여관이지 그 옛날 역전의 여인숙을 한번 되새겨보면 알 수 있듯이 아는 사람이 지나가다가 내가 과장을 모시고 이런 곳으로 안내한 것으로 오해를 한다면 크게 창피를 당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내일 아침 신문에 날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 당시의 과장직급은 국가공무원 서기관급으로 중앙부처의 과장과 같은 직급이었으며, 군수는 한 급이 낮은 사무관급이 많을 때였다.
나는 과장의 명령에 따라 다시 부두로 가서 3등 칸 표를 2장을 구입해 여관으로 돌아왔다. 구박 받으랴 배표를 구입하러 다니랴 시간을 다 보내고 나니 잠도 오지 않고 책도 눈에 들어오질 않아 강의할 내용을 들여다보는 척만 하다가 여인숙을 나와 저녁을 먹고 여객선부두에 도착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생애 처음으로 세발낙지를 산채로 고추장에 찍어서 먹어보는 기억에 남을 저녁식사를 맛보기도 했다.
저녁 늦은 시간, 아마도 저녁 9시경에 승선해 3등 칸에 오르니 평평하고 넓은 마루바닥에 어느 자리가 좋은지도 알 수 없어 과장님을 모시고 중간쯤에 자리를 잡았는데 출발시간이 다되자 배 안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앞과 뒤를 분간할 수 없는 마루바닥에 여자, 남자, 노인, 어린이할 것 없이 뒤섞이게 됐고 뱃고동 소리가 울릴 때쯤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어 누어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그때의 진풍경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기 한이 없다.
나는 잠을 청하기 위해 누워서 왜 이러한 여행을 해야 하는지? 상념에 잠겼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도 과장께서는 왜? 이렇게 스스로 고된 여행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은 한마디도 없으셨다. 당신이 무슨 일이 있어서 밤 기차, 그것도 우리나라의 가장 상징적인 완행열차를 선택하셨는지, 오늘까지도 검소하게 살라고 한 말이 전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