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과장 “이 계장 같은 실무현장가 있나” 일침 ▶자네가 가장인가 Ⅱ 나는 유남열 선배님으로부터 이 계장이 지금 간식을 먹고 허기를 달랠 처지에 있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정신을 차리라는 걱정을 듣게 됐고 그 후부터는 오후에 배가 고파도 참았다. 낮 12시에 점심을 먹고 밤 10시 전후까지 텅 빈 배를 달래며 참아야하는 고통도 보통이 아니었다. 이것뿐인가, 나는 행정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축산국의 예산과 기획업무를 총괄하는 축산과에 가서 가끔 무엇을 배우려고 하면 계장은 직원에게 물어보라며 회피하고 직원은 잘 모른다며 서로 미루는 일이 많았다. 이러한 경우가 보통은 1주에 한번정도 있었으나 나는 그럴 때마다 불만을 표출하지 않고 인내심으로 묻고 또 물어보니, 결국에는 짜증이 나는데도 화를 내지 못하고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같이 있는 직원에게 시키면 될 것을 왜 계장이 직접 굽실대며 축산국주무과 직원을 상대 했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내가 통솔력이 부족한 탓에 직원들을 다루지 못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 때의 상황은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의 ‘텃세’를 감당해야만 했으니 어찌하겠는가? 그렇게 6개월 정도가 지난 어느 날 바로 옆방에 계신 송찬원 축산과장(축산국장, 한국종축개량협회장, 축협중앙회장 역임)께서 저녁 7시 30분경에 “이 계장 있는가?”하고 목청을 높이시며 찾으시기에 “예 있습니다”하고 대답을 하니 당신께서 오늘 저녁을 사시겠다며 그만 일을 접고 나가자는 것이 아닌가? 축산국의 주무과장인 축산과장께서 저녁을 같이 하자고 하시니 나로서는 영광이 아닐 수가 없어 바로 하던 일을 멈추고 축산과 직원들과 같이 나갔다. 광화문 청사 주위에 있는 족발 집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하시면서 반주도 곁들이고 있었는데 과장께서 소주 3잔을 드시더니 축산과 직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잘들 들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모든 직원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축산과장께선 “내가 오랫동안 여러분들의 행동을 보아 왔는데 새로 우리 국에 온 이인형 초지계장이 무엇을 물으러 오면 서로 이리 저리 보내고 자료도 제대로 주지 않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며 “여러분 중에 이 계장과 같이 시험장을 거쳐 현장을 공부하고 농림부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몇 명이나 있나 한번 각자가 생각을 해 보라”고 지적을 하시면서 앞으로는 같은 직장의 동료로서 친절히 대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의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 후부터는 분위기는 호전돼 내가 하는 일에 많은 직원들이 협조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소속돼 있는 낙농과에서는 아직도 텃세바람이 가시질 않았다. 1978년 7월에 캐나다 정부로부터 낙농 및 육우산업 실태파악을 위해 송찬원 과장을 초청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 뜻밖에도 송 과장께선 내가 캐나다에 갈 수 있도록 추천 해줘 일생에 첫 해외출장을 다녀오게 됐다. 이 계기를 통해 선진국의 축산산업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 송찬원 과장께선 그 후에도 많은 지도와 조언을 해 주셔서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게 됐다. 나는 지금도 송찬원 회장께 늘 고마움을 잊지 않으면서 마음뿐이지 제대로 모시지도 못하고 있다. 어느 직장이고 처음에 가면 반드시 텃세에 맘고생을 하기마련인데, 이런 현상은 농림부나 농촌진흥청이나 어느 기관이 덜한지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막상 마음을 열면 각 부처 공무원 중에서 가장 순박하고 어진 사람들이 많이 모인 집단 또한 이 곳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사람을 사귀고 일을 해야 하니 거의 매일 술자리를 하는 것도 일과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