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의 농림부 축산국의 분위기를 정리해 보면 1980년 이전부터 계장이나 과장으로 근무하던 축산전문직기술자는 아무도 없었으며 1986년 현재 남아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은 이인형이 하나뿐이었다. 나도 마지막으로 사직(辭職)을 하라는 독촉을 받고 있는 운명에 처해 있었다. 그만큼 1970년대 후반기부터 1980년대의 농림부 축산국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항상 살 어름 판을 걸었다고 생각하면 어떠한 상황에서 근무를 했나 하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차관께서 다시 불러 사표를 내라고 독촉을 하기에 역시 묵비권을 행사하다가 나왔다. 그 다음 날 간부회의가 끝나고 나서 축산국장, 차관보, 차관이 같이 장관실에 들어가서 장관에게 일도 못하고 고집만 부려 사고만 내는 이인형 과장을 농림부에서 내 보내야 하겠다고 보고를 드렸고, 장관께서는 그래 어느 놈인데 그렇게 일을 못하면서 말썽만 부리느냐며 총무과장에게 낙농과장의 기록카드를 가지고 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총무과장이 나의 기록카드를 황인성 장관에게 드리니 잘 모르는 것 같이 내용을 보시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차관에게 그래 이인형 낙농과장이 그렇게 시원치 않고 일을 못한다고 생각해 사표를 받아야 한다면 우리 농림부에 이인형 과장 보다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과장을 한 사람만 찾아오라고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축산국장, 차관보, 차관은 더 이상 말을 못하니 나의 사표 문제는 이것으로써 막을 내린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배석(拜席)했던 한 사람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요약한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황인성 장관께서 나에 대해 잘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장관께서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알고 계셨다. 그 동기에 설명하고자 한다. 장관께서 농림부장관으로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1985년 4월경에 경제기획원 김기환 경제개발기획단장(차관급)의 주제로 수입자유화품목을 결정하는 중요한 회의가 열렸다. 그 때에 축산국장께서 바쁘다는 이유로 나를 대신 회의에 참석 하라고 지시하셔 나는 김한곤 농업정책국장(차관역임)을 모시고 회의에 배석을 하니 타 부처에서 국장이 참석했으며 과장은 나 혼자뿐이었다. 이 날도 각 부처가 자유화품목수를 줄이려고 서로가 눈치를 살피는 살벌한 분위기였으며 농림부에서 관리하고 있는 품목에 대한 심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축산관련 품목으로 통조림, 요구르트, 알파파밀 등이 거론됐다. 김한곤 국장께서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당초에 정한 품목을 그대로 개방대상 품목으로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에 농정국장께서 낙농과장이 참석했는데 의견을 한번 들을 필요가 있다고 건의를 하셨다. 때마침 기회를 통해 나는 우리나라 축산산업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수입자유화품목으로 지정되는 것을 유보를 해 달라고 간청을 했으나 안 된다고 잘라 말하면서 다른 부처의 품목의 심사를 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앉아 있을 이유가 없어 일어나서 나오려하니 김기환 단장께서 놀라시며 회의 중에 어디를 가느냐고 물으셨다. 그 말에 나는 “단장님 저는 어차피 이 일로 인해 공직을 떠나야 하는데 더 앉아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표를 내러 가는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 단장께서는 다시 들어와 앉으라고 종용을 해 다시 자리에 앉게 되었고 결국 개방을 유보하게 됐다. 다음 날 경제기획원 장관과 농림부장관 그리고 김 단장이 농림부 수입자유화 품목을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자리에서 전날 상황이 보고가 되었으며 나에 대한 이야기가 화두된 것이다. 나는 지금도 나를 회의에 대리로 참석하게 한 국장에게 감사를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