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부 고위관계자가 최근 공식석상에서 부실조합을 정리하기 앞서 자구노력으로 경영정상화를 이룰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은 경영부실로 몸살을 앓는 일선축협에 단비와 같은 소식이 아닐수 없다. 정부 당국자의 이같은 언급은 부실조합정리에 따른 여러 가지 현실적 여건을 고려한 것이겠지만 이해당사자들이 바라고 있는 자력갱생(自力更生)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한 일이다. 어쨌거나 이제 ‘공’은 당사자인 일선축협으로 넘어간 셈이다. 그렇다면 공을 넘겨 받은 일선축협의 할 일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넘겨 받은 공을 장외(場外)로 나가지 않도록 잘굴려 ‘점수’를 내는 것외에 달리 있을수가 없다. 그렇지만 길게는 조합 창립때부터, 짧게는 몇 년의 세월이 흐르며 쇠붙이에 녹이 슬듯 쌓여온 만성적 부실구조를 하루아침에 흑자구조로 전환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일선축협에 주어진 시간은 극히 짧다. 부실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게 마련이고 이것은 결국 조합원이나 정부의 부담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조합이 자구노력을 경주할수 있는 시한은 사실상 올 연말까지라고 보면 된다. 올해 결산에서 적자경영을 완벽한 흑자경영으로 전환시키든가, 그것이 안된다면 최소한 결산결과를 통해 조금만 더 고생하면 누적부실을 완전 해소할수 있다는 가능성이라도 보여주어야만 합병과 같은 불명예를 피해 갈수 있다. 부실한 경영을 정상화하는 것은 몸집을 가볍게 하고 씀씀이를 줄이는 길밖에 없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구성원들이 적어도 당분간은 ‘내몫’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몸집을 줄이는데는 경우에 따라서는 살을 도려내는것보다 더한 아픔이 수반되고 씀씀이를 줄이는 것도 간단치는 않은 문제다. 더욱이 노조와 조합이 왜 그렇게 부실인지 영문조차 모르는 조합원들에게 자기몫을 희생하라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나 몸집을 줄이고 조직구성원들이 각자의 몫찾기를 유보할 때 부실조합이라는 멍에를 벗을수 있다. 더욱 강조되는 것은 원만한 노사관계다. 사(使)측이 투명한 경영과 함께 조합의 비전을 제시하고 노(勞)측이 이를 믿고 양보한다면 노사관계가 삐걱거릴 일이 없는 것이다. 조합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의 확고한 신념과 솔선수범, 그리고 협동조합이란 일터를 지키겠다는 직원들의 진정한 열의만이 조합을 부실의 늪에서 건져 올릴수 있는 것이다. 물론 농협중앙회도 적극 나서야 한다. 중앙회가 실질적인 지원을 통해 조합에 길을 안내해야 하는 것이다. 가는 길과 방법은 제시하지 않은채 단순한 감독기능만 수행하며 ‘너희는 도대체 왜 그 모양이냐’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중앙회의 역할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중앙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경영정상화의 주체는 결국 조합이란 점에서 조합 구성원들, 특히 지도자들이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할 일은 너무나 자명하다. 이런 맥락에서 한 축협조합장이 취임하자마자 임원과 대의원, 그리고 직원들에게 조합이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고 설득한 일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처지에 있는 많은 조합에 본보기가 될만하다. “제가 취임해서 파악해보니 우리 조합의 부실은 정말이지 심각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책임의식을 가지고 조합을 살린다는 각오를 가져야 하며 그런 각오가 없다면 지금 문을 닫는 것이 낫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일정기간 희생과 고통을 감내한다면 조합을 살릴수 있습니다. 그러니 모두 힘을 모아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