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만주대벌판은 물이 모여있는 호소나 저수지를 찾아보기 힘들었고 자연에 의존하는 농법에 가까워 앞으로 물부족과 사막화에 대비할 대안찾기가 하늘에서 별을 따야 하는 듯 하였다. 사람들의 캐릭터는 조금 투박하기는 하나 진실과 순수가 녹아 있는 듯 전혀 바래지 않은 원초적인 깨끗한 영혼의 냄새가 풍겨 왔다. 일체의 산과 언덕이 없는 수평의 만주벌판이라서 그런지 새벽 4시가 되었는 데 사위는 대낮과 같았고 연길시민은 이미 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기온은 한국과 유사하였는 데 오히려 덥게 느껴지곤 하였다. 아침을 맞는 연길시민들은 가랑비가 부드럽게 대지를 적시고 있었는데 전혀 급한 기색이 없이 3륜자전거에 짐을 이동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비를 맞으며 혹은 자전거를 타면서 다른 한손엔 우산을 받쳐들고, 행인들도 우산을 쓴 사람이나 쓰지 않은 사람이나 그 수가 비슷하였으며 여유가 넘치는 복고풍의 70년대말 한국모습! 그것이였다. 2001년 5월 15일 동북아호텔의 아침식사는 부페식으로 50여가지 종류로 구성된 야채, 생선, 육류, 빵 및 죽종류로써 기름에 튀긴 것, 담백한 것, 쏘는 맛, 부드러운 맛 등 하나 하나가 명품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었다. 오전 7시30분 조식을 마치고 황병주 종우개량장장이 미쓰비시 지프 2대를 제공하여 용정시 축산국 김국장과 1차 회동한 후 세미나장소인 이화빈관을 사전점검하고 용정시의 젖줄인 해란강과 선구자에서 나오는 일송정에 오르니 소리없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100년전 독립군이 이 땅에서 말달리며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을 하였던 바로 그곳이였다. 감회와 더불어 가신 영혼들의 서러움이 하늘을 울린 것이 아니겠는가? 묘한 감정으로 그런 하늘과 땅을 초점없이 바라보다가 일행의 부름에 따라 지프에 몸을 싣고 내리라는 소리에 내려보니 김국장의 부인이 운영하는 천진맥주방이라는 식당이였다. 더덕, 두릅, 돌미나리, 족발, 불고기, 돼지요리, 명태알조림, 취나물 무침, 쑥떡 등 김국장 말그대로 천연식품요리였는데 소재는 같았으나 요리마다 맛에 있어서는 진미! 그것이였다. 성찬과 더불어 39도의 고량주에 몸은 물먹은 솜처럼 풀어져 버려 어떻게 연길시 동북아호텔에 돌아왔는지 모를 정도로 찰라의 순간은 가고 숙소에서 오후 3시를 기억하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용정시는 용이 노니는 우물의 유래에서 붙여졌고 연길시와는 20㎞거리로써 최근에 도로포장이 완공되었으며 6월에서 9월에는 관광시즌으로 이때에만 눈이 녹아 백두산을 등정할 수 있게 된다. 연변자치주에서 국가재정상 공무원, 교수 등 모두에게 봉급의 70%를 지급한지 1년 6개월이 된 점을 보아 상당히 어려운 살림살이를 꾸려 가고 있었으며 종우개량장에서도 재정지원이 크게 부족하여 보유소 250두중 일부를 10개 농가에 10두씩 분양해준 상태이다. 연변황우는 산서성 전남우, 하남성 소 등과 더불어 중국 5대 품종의 하나로써 100년전 우리민족이 끌고 간 한우에 명지소를 교잡시켜 만든 품종인데 현재에는 농가들이 육량이 많은 소를 선호하여 심멘탈, 샤로레, 리무진의 정액으로 인공수정하고 있었으며 모색이 연변황우와 가장 닮은 리무진을 선호하는 경향이였다. 3일째인 5월 16일에는 세미나 행사가 개최되는 날이여서 7시에 조식을 마치고 출발하여 8시에 용정시의 이화빈관에 도착하였고, 연변 축산국 손통순과장의 사회로 용정시 김국장의 사용사례 발표 등 식순에 따라 세미나가 개최되었는데 첫 번째 과제가 발표되고 있는 중에 참석자들은 오랜만에 동료들과 만나서인지 담배도 피우고 얘기도 주고받고 분위기는 나태해지기 시작했다.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