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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내들목장 방계용씨

뉴스관리자 편집장 기자  2001.07.23 15: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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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현장은 물론 관련단체와 업계·연구기관 등에서 여성의 역할과 비중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농협중앙회 가축개량사업소 젖소개량부 이춘지검정과장은 『전국의 여성축산인들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를 정도로 가사외 주어진 여건에서 많은바 책임완수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그런데도 불구,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 같은 불익중 절반은 여성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이며 나머지 절반은 남성에 의해 강요되는 것으로 앞으로 여성축산인은 스스로의 권익보호와 한국 축산업을 건전하게 발전토록 하기 위해서라도 할말은 하고 살아야 한다』고 이춘지과장은 주문했다.
이춘지과장 역시 20여년전 축산진흥회에 입사할 당시부터 오늘날까지 맡은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오면서 여성으로서 지위향상에 소홀함이 없도록 노력하는 여성이라는 것이 그를 아는 주위사람들의 평이다.
지난 52년 8월 10일 서울에서 태어난 이과장은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건국대 축산대학에 입학했다. 그의 부모마저 고향이 서울로 시골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던 이과장이 건대 축산대학에 진학한 것은『여고를 졸업하던해 오빠친구의 얘기(건국대 축산대학을 졸업하면 덴마크로 유학할 수 있다)를 듣고 모진동 건대 본교 캠퍼스를 찾았을 때 일감호등 드넓은 캠퍼스에 매료된 것이 동기』라고 밝히고『4년간 공부하면서 농촌과 농축산인들을 위한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면서 졸업(14기)을 하고 2년간 조교생활을 거쳐 78년 4월 축산진흥회(축협중앙회 전신) 홍보실 서기로 입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춘지과장은 입사초기부터 순탄치 않았다. 이과장은 당시 대학졸업 입사동기중 여성은 혼자였는데 직급이 남성은 주사(6호봉)인 반면 본인은 서기 그것도 3호봉으로 낮아 당시 인사담당자에게 직급차이가 성별에 기인한지에 대해 강력히 따져 물었다.
실력보다 성별이 우선 했던 때였으나 이과장의 강력한 건의로 6개월후 서기 5호봉에 이어 79년 2월 6호봉 주사직으로 발령이 났다 한다.
이나마 진급이 순탄한 것은 이과장이 축산진흥회 입사이후 「월간 축산진흥」지 제작 업무를 보면서 그 실력이 인정된점도 들 수 있으나 실력있는 여성이라면 남성보다 우대를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그녀의 승부근성에 기인한다.
그러나 승진의 기쁨도 잠시. 이과장은 80년 7월 해직 되었다. 부정공무원 축출의 일환으로 이뤄진 불똥이 그 산하단체인 축산진흥회까지 튀어 4백여 직원중 80여명이 해직됐다는 것. 당시 여직원은 모두 노무직·기능직이었고 일반직은 이과장 혼자로 남성에게 여성이 양보하라는 전제 조건하에 퇴직을 위한 원인 모를 시험 출제를 받았다 한다.
이에 따라 이과장은 서울 신문로 소재 도서출판 일신사에 입사를 하여 대학교재 간행업무를 보다가 83년 불광동에 소재해 있는 한국여성개발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90년까지 전국의 여성관련 단체장과 총무등 여성지도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시키고, 여성 유망직종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는등 여성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주안점을 두는 업무를 맡았던 것.
그러던중 90년 8월 정부와 축협중앙회로부터 복직 희망자를 받는다는 소식을 접한 이과장은 『10년전의 불명예를 회복하고 대학때 익힌 전공(축산)을 되살리기 위해 축협으로 자릴 옮기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뛸 듯이 기뻤다』면서『해직기간 10년간 받지못한 급여를 산출근기에 의해 1천7백여만원을 받았다』고 귀띔했다.
『90년 8월 젖소개량부로 발령나기전만 해도 하는 업무를 제대로 몰랐었고, 재입사시 직책이 10년전 해직시인 주사직 그대로로 당시 여성개발원 재직시 직책(선임연구원)보다 아주 낮아 갈등을 겪었다』고 전제한 이춘지과장은『그러나 당시 축협연수원 이승우교수의 협동조합론 강의에 감명을 받은 이후 갈등을 겪었던 본인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몰랐다』며『조합은 조합의 이익이 아니라 조합원의 이익을 위해 조직된 단체인 만큼 농축산인의 권익보호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중』이라고 전했다.
이후 93년 4월 축산개발종합센터에서 낙농시설과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업무를 맡고 목우촌육가공사업부에서 교육·홍보겸 소비자상담실장직을 수행하면서 조합에 근무하는 것이 얼마나 보람된 일인지를 터득했다는 것. 과거 여성개발원에서 8년간 근무한 이력은 당시 일반업체들의 소비자상담실장들을 모두 업계인으로 간주해 버리고 대화를 하는 소비자단체장들의 인식을 새롭게하고 대화에 접근하기 좋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2월 17일 젖소개량부로 또다시 자리를 옮겨 젖소검정 프로그램등 젖소개량 업무에 혼신을 다하는 이춘지과장은 『축협이 축산인에게 해줘야 할 가장 중요한 사업은 지도사업과 유통사업』이라며『특히 자본력이 커야하는 유통사업은 농축산인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농·축협이 앞장서야 하는 사업』이라고 피력했다.
젖소개량부 최한부장과 남인식차장은 이춘지과장을 가르켜『업무성격상 여성들이 해야할 역할을 충분히 소화해 내는 동료. 매사에 일을 꼼꼼하게 처리하고 신세대와 구세대를 접목시키는 아이디어가 풍부한 동료. 젖소개량부가 오늘이 있기까지 한몫을 톡톡히 해온 동료』라고 입을 모았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농·축 유통업무를 맡고 싶고, 공부도 하고 싶어 농협대학에서 실시하는 NBA 6개월과정 연수교육에 지원서를 냈다』고 당찬 포부를 밝힌 이춘지과장은 최경태씨(53세) 와의사이 1남1녀를 두고 있다. <조용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