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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축협회장 지금은 뭐하나

뉴스관리자 편집장 기자  2001.09.26 11: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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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축협 중앙회가 통합된지 1년하고도 약 3개월이 경과했다.
이름은 역사속으로 흘러갔지만 축협은 1981년 창립이래 20년간 한국축산업과 고락을 함께 하며 생산자단체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굳이 공과(功過)를 따지자면 공과 과가 교차했지만 1980년대 여명기에 있던 한국축산업이 이만큼 성장하기까지 버팀목으로서 간판역할을 해온 것은 움직일수 없는 사실이다.
양축농가의 대변자임을 자임하며 출범했던 축협에는 지난 20년간 모두 6명의 회장이 거쳐갔다. 이들중엔 재임중 영욕(榮辱)을 함께 맛본 이도 없지 않지만 농협으로부터 독립한 ‘축협호’를 이끌며 때로는 생산자대표로, 때로는 정부와 양축농가를 연결하는 교량역으로서, 한국축산업의 오늘이 있기까지 크든 적든 족적을 남겼다.
역대 축협회장들중엔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뀔만한 세월이 흘렀기에 고인이 된 이도 있지만 아직도 축산분야에서 왕성한 현역으로 활약하는 이들도 있다.
축산진흥회가 모태가 된 축협중앙회의 초대회장은 김일로씨였다.
김씨는 농림부 축산국장을 지낸후 2대 축산진흥회장으로 재임하다 1981년 축협발족과 함께 축산진흥회장에서 초대 축협회장(재임기간 1981. 7. 13∼1983. 7. 12)으로 자리를 바꿔 앉았지만 오래전에 고인(故人)이 됐다.
2대 회장은 이득용씨로 1983년 7월 13일부터 86년 7월 12일까지 재직했다. 농림부차관과 농협중앙회장까지 지낸 이 전회장은 1차산업분야 요직을 두루 섭렵한 마당발답게 당시 출범한지 3년밖에 되지 않은 축협중앙회를 조직기반구축과 경영문제에 이르기까지 축협이 명실상부한 중흥기에 접어들 수 있도록 초석을 다지는데 기여했다.
퇴임이후 바로 경기특수산업 사장으로 취임, 사업을 통해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이회장은 이밖에도 축협출신 임직원들로 구성된 사단법인 축협동우회장직을 맡아 모임을 이끌고 있다.
임명직 회장(3대)에 취임, 임기를 마친후 초대 민선회장(4대)까지 지낸 명의식 전회장은 역대회장중 재임기간이 (1986. 7. 13∼1993. 5. 31)이 가장 긴 회장이다.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후 국회사무처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명전회장은 이후 농림부로 자리를 옮겨 차관보까지 지내다 1986년 3대회장(∼1990. 4. 12)에 취임했으며 당시 축협법개저에 따라 치러진 첫 번째 민선회장선거에 출마, 조합장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초대 민선회장(1990. 4.13∼1993. 5. 31)이 올랐다.
초대 민선회장 임기를 1년정도 앞두고 도중 하차한 명전회장은 재임기간도 가장 길었지만 역대회장중 많은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가축시장부지를 일선조합으로 완전 이관시킨 일이다. 땅은 정부 소유이면서 관리권만 일선조합에 있던 가축시장을 조합에 이관시킨 일은 가축시장현대화를 촉진하고 조합의 경영안정에도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축협이 대내외적으로 중흥기에 있던 시절 회장을 역임한 명전회장은 지난해부터 낙농진흥회장직을 맡아 젊은이 못지 않은 활약상을 보여 주고 있다.
5·6대회장(1993. 6. 30∼1998. 7. 1)을 역임한 송찬원 전회장은 3기 민선회장 임기는 다 채우지 못했지만 역대회장중 유일하게 민선회장에 재선된 케이스.
명전회장 재임시절 축협부회장에 영입된 송전회장은 강원대를 졸업한후 전형적인 기술관료의 길을 걷다 농림부 축산국장과 한국종축개량협회장을 지냈으며 축산분야에서는 몇안되는 ‘살아있는 축산역사책’이란 소리를 듣는다. 특히 구수한 입담으로 유명한 송전회장은 종축개량협회장과 축협부회장시절 각종 교육이나 세미나에 특강을 많이 나간 탓에 양축가들 사이에 인지도가 매우 높은 인사로 꼽힌다.
송전회장은 퇴임이후 운동을 소일삼아 축산업계 원로로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
7대회장(1998. 7. 25∼1999. 6. 19)을 지낸 박순용 전회장은 역대회장중 유일한 축협출신 회장으로서, 안팎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인물.
건국대에서 육가공학을 전공, 농학박사학위까지 취득하고 건대 축산대총동문회장을 지내는등 자타가 인정하는 축산전문가인 박전회장은 그러나 협동조합개혁의 와중에서 개혁문제에 매달리느라 회장으로서 경영문제에는 손도 대지 못한채 중도 하차함으로써 임기를 1년도 못채우는 불운을 맛봐야 했다.
박전회장은 올해 한국종추개량협회장에 당선되어 다른 역대회장들과는 달리 공백없이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8대회장(1999. 7. 19∼2000. 6. 7)을 지낸 신구범 전회장 역시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한채 축협역사 20년의 마지막 회장으로 남는 불운을 맛본 케이스. 극도의 혼란속에서 회장직에 오른 신전회장은 취임하자마자 통합농협법을 심의하던 국회농림해양수산위에서 할복을 하며 강한 카리스마와 조직장악력으로 짧은 시간에 혼란을 수습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자체개혁안을 내놓고 농·축협통합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낸 위헌심판청구가 기각됨에 따라 취임 11개월만에 자리를 내놓아야만 했다.
어떤 연설도 원고없이 할 정도로 달변인 신전회장은 농림부 축산국장과 기획관리실장을 지낸후 제주도지사를 역임했으며 요즘은 내년에 치러질 지방선거에 출마(제주지사선거)하기 위해 준비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축협을 거쳐간 역대 회장들의 공통적인 이력은 박순용 전회장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농림부에서 관료생활을 했다는 점이다. 지금은 은퇴한 많은 축협인들은 회장들이 대부분 관료출신이란 점이 소위 낙하산시비로 번지는 경우가 없지 않았지만 농협에서 독립한후 그야말로 정부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수 없었던 축협조직을 단시간에 궤도에 올려놓는데는 이들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축협이 지난 20년간의 공과에도 불구하고 축산업발전에 끼친 영향을 부인할수 없듯이 역대 회장들 역시 개인적인 공과나 영욕에 관계없이 축협과 축산업발전에 음으로, 양으로 기여한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좀더 구체적인 평가는 역사만이 말할수 있을 것이다. <이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