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악몽을 잊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4개 농가가 힘을 모아 새롭게 조성한 낙농단지에서 만난 그는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활짝 웃고 있었다. 그의 새로운 생활터전은 파주시 적성면 객현1리. 구제역의 악몽을 잊기 위해 고향을 떠나 그동안 모아 둔 돈과 살처분 보상비로 새로운 삶의 터전을 구입하고 우사를 짓는 등 재기의 의욕을 불사르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김사장의 새로운 삶의 터전은 1천여평의 부지에 2백78평의 우사를 포함해 분뇨처리사, 살림집, 착유실 등 모두 4백15평 규모다. 그마나 살림집은 부지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착유실 2층에 마련했다. 아직 절반 정도의 공간이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사육두수가 늘어나면 빈 공간에 다시 우사를 짓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기자가 김사장을 찾은 이달 24일, 그는 아직 정리가 덜된 농장일에 바쁜 손을 놀리고 있었다. 소들을 입식한 것은 지난달 30일 이지만 아직 사료빈 마저도 제대로 설치가 안됐을 정도다. 이곳 부지도 경기도와 파주시가 각각 1억원씩 2억원(부가세 포함)을 지원해 매립을 했다. 또 착유실 건립에 1천만원과 경기도로부터 젖소 5두도 지원 받았다. 이같은 주위의 지원과 격려가 그의 재기의 발판이 된 것이다. 농장 주변은 아직 손댈곳이 한두군데가 아닐 정도로 정리가 덜된 농장이지만 이주를 하고보니 마음이 흐믓하고 부풀어 있다. 질퍽 거리던 우사는 2백78평 규모의 개폐식 지붕에 톱밥이 깔려 있다. 바케스 착유를 하던 착유실도 6두가 동시에 착유할 수 있는 위생적인 자동 파이프라인 착유시설로 교체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빛이다. 살처분 보상비와 그동안 모아 둔 돈으로 현재의 농장부지를 평당 십만원에 매입하고 경기도와 파주시로부터 지원받은 돈은 부지 매립에 모두 썼다. 건축비는 부지와 우사를 담보로 1억5천만원을 융자 받아 지었다. 그래도 입주를 하고 보니 너무 좋다. 지난 악몽을 딪고 재기를 위한 희망에 부풀어 있다. 새로운 삶의 터전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구제역 최초 발생당시를 물어봤다. 생각하기 조차 싫은 듯 손을 내저으며 고개부터 흔드는 김사장. 먼곳을 응시하는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자리를 같이한 그의 부인은 어느새 흐느낀다. 그만큼 고통이 컷으리라. 한참의 시간이 흘러 말문을 연다. "구제역 발생으로 살처분 명령을 들었을 당시 눈앞이 캄캄했어요. 어떻게 지난 세월을 보냈는지도 몰라요. 우리 농장으로 인해 다른 농장의 소들마저 살처분 했을 때 그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고향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갈려고 했어요" 눈물 섞인 그의 부인이 속울음을 삼키며 털어놓은 회고담이다. 그사이에도 김사장은 말없이 허공을 바라본다. 눈엔 가득 눈물을 담은 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 없이 행상을 하며 모은 돈으로 시작한 낙농. 그런 그였기에 소들은 자식처럼 소중했다. 그런 소들을 살처분 하고 돌아섰을 때 그는 못 마시는 술도 몇잔 마셨다. 다시는 소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 비록 그의 소들은 인근 부대의 야산에 묻혔지만 그는 가슴에 소를 묻고 돌아서야만 했다. 구제역 최초 발생농장으로 인구에 회자되며 이웃에 있는 소들마저 살처분 당하고, 통행마저 불편을 줌은 물론 돼지고기 수출길 마저 막히자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잠을 이룰 수 조차 없었다. 결국 파주시민회관에서 개최되는 시민 화합의 날 행사에서 공개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마음이 가벼워 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란다. 뿐만아니라 소독활동 등 방역활동에 애쓰는 방역공무원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그들의 건강마저 걱정했었다. 그만큼 마음이 여리고 심성이 고운 그였다. 살처분 후 그나마 받던 유대수입마저 끊어지고 대학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식들의 학비는 물론 생활비마저 걱정해야 했다. 결국 첫째딸의 결혼자금으로 모아둔 돈 마저도 모두 생활비로 날렸다. 그런 와중에 한참 신경이 예민하다는 장남은 대학입시를 앞둔 수험생이었으니 그의 마음은 오죽했으랴. 구제역이 뭔지도 모르는 그에게 닥쳐온 시련치고는 너무 가혹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면 눈물이 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는 좌절만 하고 있지 않았다. 지난 날의 악몽을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났다. 현재의 농장 기반공사를 할때 만난 그의 모습보다 밝아 있었다. 급하게 이주를 하다보니 농장 정리도 덜됐는데도 그의 표정은 희망에 부풀어 있다. 농장은 급한대로 겨우 비만 가린 셈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그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우수한 사양환경을 갖췄으니 보다 우수한 품질의 원유를 생산하겠다는 포부를 조심스럽게 펼쳐 보인다. 부부인력으로 상시 착유두수 40-50두 정도를 유지하겠다는 것이 그의 꿈이다. 물론 예비 착유두수까지 합치면 그의 사육목표는 1백두 선이다. 하지만 아직은 재기의 첫발을 내딪은 것 뿐이다. 그의 사육두수는 모두 합해야 겨우 20두. 그나마 착유두수는 이제 겨우 5두뿐이다. 앞으로 착실히 사육두수를 늘려가겠다는 소중한 꿈이 현재의 그의 재산인 셈이다. "경기도와 파주시는 물론 주변의 협조 덕분에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어요. 주변에서 많은 격려와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죠" 활짝 웃으며 힘찬 재기의 의욕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의 웃음 뒤엔 그늘이 엿보인다. 3-4년 다시 고생을 각오 하고 있지만 수입원이 될 소들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아직 농장 정리에도 많은 돈을 들여야 되겠지만 소 입식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안타까워 하고 있다. 융자를 받으려 해도 담보가 없으니 은행의 문턱은 김 사장에겐 높기만 하다. 농장부지와 우사가 이미 담보로 들어가 있으니 다른 재산이 없는 그로서는 융자금은 생각도 못하고 있다. 그래도 그는 좌절하지 않고 있다. 구제역의 파동의 한가운데서도 그는 이겨냈던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 사육두수를 늘려가겠다는 부푼 꿈을 소중하게 키워가고 있다. 뿐만아니라 장남을 축산학과에 보내 가업마저 물려주겠다는 기염마저 토하고 있다. 검정사업에도 참여해 고능력우로 개량을 하고 산유량도 늘려가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돌아서며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힘이 느껴진다. "빨리 재기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넌지시 던진 기자의 말에 그는 망설임없이 "도와주신 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라고 답하는 그에게서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