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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돼지생산과잉해소와 도체등급기준

뉴스관리자 편집장 기자  2000.11.13 09: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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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헌(축산물등급판정소장)

1. 돼지생산과잉 해소의 근본대책
돼지고기 생산과잉 때문에 돼지값이 떨어지고 있다. 과잉이 초래된 데는 돼지고기 생산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에서 수출이 중단된 데다가 경제형편이 어려워진 데 따른 소비감퇴도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생산과잉을 해소하기 위하여는 원론적으로 소비촉진을 통해 수요를 늘리면서, 적정수준으로 공급량을 줄여야 한다. 공급을 줄이는 방법에는 크게 보아 마리 수를 줄이는 일과 마리당 고기생산량을 줄이는 일의 두가지가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소비촉진과 마리수 줄이는 일은 근복적인 대책이고, 마리당 고기생산량을 줄이는 일, 다시 말해 출하체중을 낮추는 일은 아주 단기적인 일시 방편의 수단이다.
마리수 조절은 근본적인 대책이긴 하면서도 어미돼지 조절로부터 시작되고, 그 효과는 10개월 정도 후라야 기대될 수 있는 것이고 보면 눈앞의 생산과잉 대책으로는 바지 위로 가려운 데 긁기 격
이 아닐 수 없고, 따라서 출하체중 낮추기 같은 초 단기적 수단에 매달릴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생산자단체 중심으로 도체 A등급의 무게기준을 하향 조정해 달라는 요청이 정부에 전달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2. 등급무게기준 하향조정에 고려해야 할 조건들
등급판정제도는 정부를 위해 있는 것도, 그것을 운영하는 축산물등급판정소를 위해 있는 것도 아니다. 정부나 등급판정소는 그 제도를 운영하면서 이해관계인의 등급과 품질에 관한 신뢰와 신용을 더욱 높이고, 이를 통해 축산물유통이 발전될 수 있도록 보다 나은 방안을 찾아 개선해 나가는 기관이며, 조직이다. 따라서 도체등급의 무게기준을 하향조정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면 당연히 그렇게 하여야 한다. 이러한 당위성을 놓고 볼 때 도체 A등급의 무게기준 하향 조정에는 몇가지 짚어봐야 할 대목이 있다.
첫째, 도체 A등급의 무게기준을 하향 조정하였을 때 현행기준의 A등급가격을 그대로 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A등급과 B등급간의 가격차가 있다는 것은 A등급의 체중이 갖고 있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낮췄을 때는 이론적으로 평균적인 품질에로의 가격조정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전국의 14개 도매시장·공판장에서 140명(경매사21, 중매인 67, 식육업경영자 52)을 대상으로 관련사항을 설문조사 하였던 바, ①도체중 하향조정시 A등급고기의 품질은 낮아질 것이라는 응답이 81%(경매사 86%, 중매인 85%), ②도체중 하향조정으로 A등급 출현율 증가시 가격은 낮게 형성될 것이라는 응답이 59%(경매사 67%, 중매인 63%)였다.
이렇기로 했을 때 종전의 A등급을 받을 수 있었던 양돈농가는 손실을 보게 되는데, 돼지 등급별 비율이 A등급34%, B등급32%, C등급 17%, D등급 14%임을 감안한다면 도체A등급의 무게기준 하향조정의 손익을 면밀히 가려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특히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돼지도체의 A·B등급간 가격차가 돼지가격이 낮아질수록 커진다는 점이고(서울축공의 경우 금년 1월 도체중 kg당 A등급 3,250원, B등급 3,137원, 가격차 113원, 10월 A등급 1,946원, B등급 1,690원, 가격차 256원), 또 하나는 A등급의 무게 범위안에도 상당비율의 B등급 이하 돼지가 있다는 점(서울축공의 경우 금년 10월 30일부터 1주일간 도축된 5,299두의 돼지중 B등급 36%, C등급 10%, D·E등급 4%)이다.
이런 저런 점들을 고려하여 볼 때 소득전략적 차원에서는 도체 A등급의 무게기준 하향조정보다는 등급을 높여 받을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둘째, 돼지도체 기준에 대한 이해관계 집단의 대체적인 인식이 어떠냐는 점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설문조사에서 ①도체중 하향조정을 반대한다는 응답이 74%(중매인 76%, 식육점경영인 73%)였고, ②도체중이 낮을 경우의 문제점으로서 수율이 낮아져 정육의 원가가 높아지고, 상품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하였으며, ③돼지가격 하락의 해결방안으로 사육두수 감축, 소비촉진 및 홍보, 돼지고기 가공품개발, 돼지고기 수출재개 등을 들고있다. 식육점경영자의 경우 낮은 가격으로 A등급의 돼지고기를 사서 종전대로의 A등급 가격으로 팔 수 있어 좋겠다는 냉소섞인 대답도 있었다.
또한 육가공업체에 따라서는 생체중 105kg(도체중 69kg)이하인 경우 수율이 떨어지고, 삼겹크기가 작아지며, 목심규격이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방침착이 충분치 않아 상품으로서의 경쟁력이
떨어진다하여 105kg이하의 돼지는 납품을 받지 않는 사례가 있으며, "등급기준을 완화하여 A등급을 많이 받으면 농가소득이 그만큼 늘어 날 것으로 생각할 지 모르지만 떨어지는 품질의 도체에 종전 등급대로의 가격을 쳐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는 견해를 피력하는 것 등으로 보아 육가공 업계쪽에서의 도체등급 무게기준 하향조정에 대한 반응 또한 부정적이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등급기준이라는 것이 생산과 유통과 소비에 두루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 현실적인 면을 간과할 수 없는 한 이 점도 도체등급 무게기준 하향조정에 심각하게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양돈경영과 유통·소비에서 등급기준이 갖는 의미가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등급기준은 돼지개량에서부터 양돈시설, 사양기술, 가공·유통 등에 이르기까지 두루 고려되는 지표이자 거래 언어이다. 더욱이 돼지고기 생산단계가 정형화되고, 돼지고기 유통이 부위별 냉장
포장육으로 발전 되어가는 추세에서는 시설·장비·관련재료의 표준화·규격화를 위해서라도 그러한 지표와 언어는 일관성이 유지되어야 하며, 무형의 기반적 자산으로서 관리되어야 한다.
현재 돼지도체 A등급의 무게기준이 생체기준 105kg이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양돈농가에서는 A등급을 받으려 무리하게 그 기준 이상으로 길러 냄으로서 생산과잉을 촉진하고, 생산자의 손실
을 가중시킨다는 문제제기가 있다. 문제제기와 아울러 생산비 이상일 때에는 100kg이상에서, 생산비 이하일 때에는 100kg이하에서 출하하여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무게기준을 95kg으로 낮출 필요가 있고, 이럴 경우 생체 10kg감산에 따른 과잉해소로 불황해결의 길이 트일 뿐만 아니라 생산비도 윗등급을 받는 데서 얻어지는 금액만큼에다가 10kg을 덜 기르는 데 들어가는 사료비 만큼을 더한 금액이 절감된다는 대책과 효과까지 곁들이고 있다.
이러한 문제제기와 대책 및 효과에 대하여는 ①생산과잉이 초래되는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 있는지, ②더 먹인 사료비는 늘어난 고기량의 값으로 상쇄될 수는 없는 것인지, ③무게기
준을 낮췄을 때 현행의 윗등급가격은 확실하게 소득으로 실현 될 수 있는 것인지, ④현행 등급기준에서의 B등급 받을 돼지를 A등급 받도록 하여 보다 높은 소득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⑤부위별 냉장육유통 촉진과 육가공 원료육의 원활한 조달은 돼지고기 수요확대를 위해 매우 필요한데 현행의 무게기준 하향조정이 이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등의 여러 관점에서 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우리나라 돼지고기 산업의 발전구도를 어떻게 잡느냐 하는 점이다.
돼지고기 수출은 우리나라 돼지고기 산업발전 대책에 있어 세계 속의 한국양돈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전략적 기회로서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를 살려 우리나라의
돼지고기 산업을 국제화 하지 못한다면 날로 늘어날 소지가 있는 외국산 돼지고기의 유통속에 한국양돈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나라의 돼지고기 산업은 제시기를 맞았을 때 역동적으로 뻗쳐나갈 항시적 준비태세가 갖춰져 있어야 하고, 이는 국제적인 범용규격의 생산체계, 가공체계, 유통체계를 효율
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산과잉 해소라는 초단기적 차원의 도체 A등급 무게기준 하향조정 문제는 조감되어야 한다.
3. 돼지생산과잉해소를 위해 해야 할 일들
생산비, 나아가 경영비를 밑도는 시장가격조건에서 양돈경영을 한다는 것은 그것이 바로 고통이자 자본잠식으로 이어지는 경제적 손실을 의미한다. 하지만 불황기간은 그렇지 않은 기간에 비해
훨씬 짧았던 과거의 동향으로 보아 머지 않아 마리수 과잉은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한 기대를 앞당겨 실현 시키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두가지 일이 있다. 하나는 공급감축차원에서 마
리수를 줄이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수요 확대차원에서 소비를 촉진시키는 일이다.
첫 번째의 마리수 줄이는 모돈감축은 갖춰진 생산기반, 생산시스템의 전부분 가동을 해야하는 경영주 입장에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누군가 줄이겠지, 누군가 망해 자빠지겠지 하는 생각에서 십시일반적인 모돈감축을 하지 않고서는 생산과잉에 따른 어려움을 배로 나누어 안게 될 것이다. 자율적 모돈감축이라는 소리는 크게 나는데 모돈 도축실적에 큰 변화가 없는 상황은 이 부분에서의 자성적 분발을 촉구하는 것이라 하겠다.
두 번째의 소비를 촉진시키는 일은 그것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시스템적으로 추진하여야만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일이어서 개별 주체로서는 그 추진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일상에
서의 빈약한 돼지요리 가지 수로 보나 외식산업의 발전추세로 볼 때 돼지의 여러부위 고기를 소재로 하는 대중적 요리법을 개발하고 보급할 수 있는 여지는 상당히 있을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이
일이 정부의 지원속에 장기과제로 프로젝트화, 프로그램화 되어 더욱 더 적극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돼지고기 산업주체들이 주도적 역할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