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제역 발생으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것을 본인은 사과 드리며 아울러 방역에 힘쓰신 당국자 및 주위에서 피해 입은 각 농가에게 미안하고 죄송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본 삼본농장에서 발생은 되었으나 나는 하늘에 맹세코 부끄럽지 않게 혼심의 힘으로 방역 활동을 하였습니다. 소독약은 몇 달 분을 20일 간 쏟아 부었으며 (자료보관) 농장 내 출입금지는 물론 고등학생, 초등학생 등 직원자녀를 장기 결석(학교와 상의) 시켜 외부와 차단시키면서 방역했습니다. 구제역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수의사와 책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하루하루를 숨 죽이며 비오고 흐린 날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비가 와도 소독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주위에서 밤샘한지 8, 9일 째 "이제는" 하고 안도의 숨을 쉬고 저녁 사료를 주려고 돈사에 들어 갔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멍한 상태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오후 5시경 젖통 부위에 물집 몇 개를 발견하였습니다. 간이 검사 결과 음성으로 나왔으나 3-4 시간 후 온 젖 부위가 온통 물집으로 심각하게 퍼지고 손상되며 발굽 주위에도 점점이 병반이 발생되어 있었습니다. 전화 온 축산계장에게 절망적이라고 했더니 "어떻게 단정하느냐"고 반문 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선도양축농가이며 95년 농수산부 장관 표창을 받았으며 IMF때에는 우리나라 사료재고가 없을 때 식이용 옥수수를 구입해 사료로 만들어 먹였습니다. 또 이때까지 T.G.E. PED 등 설사 한번 맞은 적이 없었습니다. 13~4 년 전 부종병이 발생했을 때 구연산을 사용해 장내 pH를 조정하고 원인돈을 제거해 근절 시키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사료에 구연산 첨가는 어떤 사료회사도 시도되지 않았습니다. 내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구제역을 알고 예방하려고 노력하였던 것입니다. 단지 내가 실수를 하였다면 하늘에 그물을 쳐서 비둘기를 오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발생 농장과 반경 500 m 내 살처분 한 후 비둘기가 수없이 많이 날아왔습니다. 직원이 “사장님, 비둘기를 손으로 잡을수 있을 정도로 많이 들어옵니다. 임신사, 분만사에도 요즘 많이 들어와요”라고 말했을 때만해도 별 생각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생각하니 주위 살처분 및 매몰로 먹을 사료가 없으니 이곳으로 날아 온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리고 살처분한 곳 트랙터가 우리 농장과 인접한 논에 와서 3일간 로타리 치고 왔다 갔다 해도 깊이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는 "500 m 내 차단한다고 소, 돼지 키우는 놈만 사람이냐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한다"고 항의하고 다녔다 합니다. 내가 우리 농장 살처분현장을 보니 “아, 이렇게 살처분시 온갖 바이러스는 주위로 확산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살처분하느라 온통 정신이 없는 상태이고, 소독은 그 이후에 이루어짐으로 약 20시간의 살처분 동안은 바이러스에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이런 전례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을 두고 "모두 너희가 소독 않고 돌아다녀서 인재로 전파 되었다"고 하면 안됩니다. 보이지 않는 기류, 조류, 황사 등에도 날아다니는 바이러스 입니다. 정책당국도 예방접종이다, 아니다, 살처분이다, 몇 미터 이내 등 갈팔질팡하지 않았습니까? 다들 처음 당하는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현실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감기도 인재라면 인재입니다. 세상인간이 하는 일은 모두 인재입니다. 농가만 죄인 취급하시면 안됩니다. 이런 일에 책임 소재 규명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약한 농민에게는 뒤집어 씌우지 마십시오. 그리고 5월 농림부장관은 신고일에 따라 100 %, 80% 씩으로 차이를 두고 보상한다고 했었습니다. 위로금 및 생계지원비는 발생농장은 제외시키고 있으며 보상금도 주위 살처분농장은 40% 지급하고 발생농장은 너희가 잘못해 생긴 인재이니 보류한다고 합니다. 발생 후 직원들을 계속 고용하라는 지시는 확산방지를 위해 이해가 가지만 나와 그들이 생활할 수 있는 처우는 해주어야 할 것 아닙니까? 나는 직원 월급 및 생활을 빚을 얻어 계산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니 내가 왜 발병 이후 최선을 다해 방역에 협조했는가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그렇지만 이런 질병은 사라져야 하기에 당국자들이 불이익을 주건 안주건 최선을 다해 방역한 것입니다. 삼본농장의 명예를 더 이상 더럽히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 안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 2002년 6월 24일 <이글은 대한양돈협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입니다. 일부 맞춤법이 잘못되었거나 문장이 어색한 부분을 수정했음을 알려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