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복지, 고통을 좀 더 일찍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

2024.04.09 11:11:57

[축산신문]

김성진 소장(아태반추동물연구소)

 

ICT와 동행하는 동물복지 ①


호리호리한 키와 듬직한 체격을 가진 파란눈의 마이클. 그는 범죄 조직의 소굴로 들어가 불의를 소탕하는 정의롭고 유능한 사람이다. 이런 영웅의 곁에는 항상 믿음직한 조력자가 있기 마련인데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에 번개처럼 나타나 마이클을 구하는 파트너는 최첨단 슈퍼카 ‘키트’다. 1980년대는 여러 미국 드라마가 TV에 방영되던 시기였고 필자는 “전격 제트 작전”이라는 드라마를 소개 드린 것이다. 아마 많은 분의 기억에 남아있을 것 같은데, 훌륭한 외관에 스스로 생각하고 마이클과 대화도 나누는 인공지능형 자동차 키트는 강력한 조력자로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인공과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 한다. 80년대로 봤을 때 허무맹랑할 것 같은 드라마 이야기는 40여년이 흐른 지금 정보통신,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에 힘입어 현실 가능한 기술로 가시화되고 있다. 
되짚어보면 인류사에 조력자는 늘 있었다. 농경의 시작으로 비롯된 산업화, 도시화의 물결은 인류에게 양적 질적 발전을 가져다줬다. 그러나 화려한 인류 역사를 논하기 이전 인류가 의지해온 강력한 조력자는 바로 동물, 정확히 지칭하자면 ‘가축’이다. 가축은 사람의 필요에 의해 사람에게 길들여진 동물이다. 가축은 자의 혹은 타의로 사람과 공생하기 위해 야생성을 버리고 자신의 생존을 오로지 인류에게 바친 생명 집단이다. 과학적 발견에 의하면 개는 최소 1만5천년, 고양이는 9천년, 양은 1만1천년, 소와 염소는 1만년, 돼지 9천~1만년, 닭은 8천년, 말은 5천500년 전부터 가축으로서 인간의 조력자가 되었다. 
만약 동물이 가축이 되지 못했다면 인류사는 어떠했을까? 과연 오늘날 기록한 인문, 사회, 자연, 문화의 눈부신 창조와 발전이 가능했을까? 동물성 단백질을 충분히 수급할 수 있던 덕에 영양적 균형이 갖춰진 식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그 양 또한 늘어나 인구 증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가축은 농작물 생산에 역군으로 활용되면서 고된 농경 작업에 눈부신 생산량과 효율을 안겨주었다. 집을 짓고 의복을 만들어 인류를 보호했으며, 통신과 운송 수단이 되어 인류 사회 발전을 가속화 했다. 
인류와 가축의 공존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그 공존이 가축을 자식과 같이 기르는 농부의 마음처럼 공생(共生)의 의미를 담고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사람과 동물 사이에는 의사소통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신적, 신체적으로 불편한 가축이 있어도 농부가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뒤늦게 발견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 다른 종류의 생명이기 때문에 모를 뿐이다. 그러나 20세기 초 동물행동학자들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단념하지 않았고 동물의 행동 또는 생리적 정보가 주는 단서에 주목했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대상 동물을 24시간 쫓아다니면서 관찰한 행동 요소를 모눈종이에 빼곡히 기록했고 CCTV가 나온 후에는 방대한 양의 동물 행동을 인고의 노력 끝에 수집, 분석했다. 덕분에 가축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축적할 수 있었고 이것은 동물응용과학에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이러한 결과를 적용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가축은 여러 마리가 길러지고 있으며 한순간도 빠짐없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양질의 정보가 있어도 농장에 활용하기에는 매우 제한적인 것이 현실이다. 
가축 관리자는 아무리 관심이 있어도, 그래서 여러 번 가축을 관찰한다고 해도 개체를 기준으로 본다면 단편만 볼 뿐이다. 개체마다 하루 중 행동 패턴이 어땠고, 변화는 있었는지, 그 변화 폭이 우려할 만한 상황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노력한다면 가축이 처한 환경, 농장시설, 운영관리 변화에 따른 전반적인 상황을 인식 가능하다. 또한 노련한 관리자라면 가축의 외형(설사흔적, 콧물, 상처 등) 변화나 건강이 안좋아졌을 때 나타나는 행동(식음전폐, 다리절음, 무리에서 분리, 침울 등)을 빠르게 인지한다. 그러나 이런 일에는 많은 노동력과 시간을 들여야 하고 우리의 관측영역이 아닌 시간의 영역에서 알 수 있는 정보를 얻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에서 가축과 공생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동물복지의 기본 개념인 신체적·정신적 고통의 최소화는 동물의 현 상황이 어떤 수준인지를 일찌감치 감지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즉 질병, 상처, 두려움으로 인한 고통을 조기에 발견하는 일은 농가에서 동물복지를 실천하는 근본이다. 우리는 동물복지를 어렵게 바라보지만 사실 복지는 가축이 처한 상태를 빠르게 인식하고 적합한 관리를 빠르게 해주면 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은 동물행동학에 날개를 다는 도구인 한편, 농장에서 가축의 행동·생리학적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강력한 조력자가 되고 있다. 인류가 지속 가능한 삶을 영위하려면 조력자와 상생해야 한다. 인류의 오랜 조력자인 가축은 이제 강력한 신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살아있는 동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그것이 우리 축산업 관련 종사자들이 인공지능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을 주의 깊게 봐야 하는 이유다. 축산이 미래로 가는 길은 상생이다. 우리가 가축 상태를 일찍 알고 쾌적하게 관리할 때, 가축은 더 건강한 모습으로 희망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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