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농산업의 특수성에 대하여

2024.05.02 12:36:53

[축산신문] 

 

박종수 명예교수(충남대학교)

 

협소한 국토면적, 높은 토지자격, 제한된 사료자원 등으로 인해 원천적으로 가격경쟁력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한국 낙농의 현실에서 최근에는 마시는 시유시장마저 값싼 수입 멸균유로 대체되는 현상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주요 유제품 수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2026년부터는 우유·유제품이 차례로 무관세(0%)로 수입될 예정이다. “우유가 안 팔리면 원유의 생산을 줄이든지, 더 이상 생산을 멈추면 되지”라는 단순한 생각을 가진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낙농산업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특수성 때문에 여타 농축산물과 같이 수급상황에 맞춰 농가가 임의로 생산을 조절하거나 중단 내지 재개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단기적으로 이에 대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첫째, 원유는 젖소라는 생명체가 생산하는 산물로써 젖소가 최초 원유(原乳)를 생산하는 기간이 최소 2년이 필요하다. 젖소는 식물의 줄기와 잎을 섭취하는 대표적인 초식동물이다. 암송아지가 성장하여 발정하면 종부시켜 임신을 하게 되며, 280여일의 임신기간을 거쳐 첫 출산을 하게 된다. 첫 출산 이후부터 젖소(착유소)는 원유를 생산한다. 그러므로 암송아지는 이러한 생리기간을 고려할 때, 최소 2년이 넘어야 원유를 생산하게 된다. 한편 농가는 이 같이 젖을 짜기 위한 준비기간에 많은 초기 투자를 하게 됨으로써 대부분의 농가는 많은 부채를 안고 낙농경영을 시작하게 된다. 첫 출산을 한 젖소는 이후 대체로 1년을 주기로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거쳐 원유를 생산하게 되며 우리나라에서 사육하는 홀스타인 품종은 보통 5년(3산)을 경제수명으로 보고 있다. 


둘째, 원유를 생산하기 시작한 젖소는 차기 임신 전의 건유기(dry period, 乾乳期)를 제외하고 매일 일정량의 원유를 생산한다. 어느 경우라도 농가는 원유시장의 수급상황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매일 1-2회씩 젖을 짜야한다. 오히려 젖을 완전히 짜주지 않을 경우 유방염 발생 등 젖소의 건강관리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일단 원유의 생산이 시작되면 인위적으로 원유의 생산량을 조절하기란 불가능하다. 소에서 젖을 짜면 유가공업계와의 사전 약속에 의해 판매하게 되며, 유가공업계와 약속된 양을 조금이라도 초과하게 되면 초과원유는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헐값에 판매하게 된다. 또한 매일 착유된 원유는 농장에서 냉각보관 후에 당일이나 다음날에 유가공업계에 납유·판매하게 되는 데, 원유는 영양이 풍부한 완전식품이기 때문에 변질 부패성이 매우 강하다. 따라서 우유는 농장에서 소비자에 이르는 모든 생산·유통과정에서 완벽한 냉장체계를 유지해하고, 이를 위한 추가적인 비용도 수반된다. 


셋째, 원유의 수급이 계절적으로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3월-5월에는 연평균 납유량(納乳量)을 상회하고 있으나 8-11월에는 연 평균 납유량을 못 미치고 있다. 이는 목초를 주로 섭취하며, 고온에 약한 젖소의 생리적 특성에 기인된다. 반면에 원유의 시장수요 즉, 우유의 소비는 3-5월보다는 여름을 지나면서 8-11월에 더욱 많게 나타난다. 따라서 매년 3-5월에는 원유가 남게되고 8-11월에는 원유가 모자라게 됨으로써 계절에 따른 불가피한 원유의 잉여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유가공업계는 시장 수급이 과잉될 시에는 일부 납유된 남는 원유를 분유로 풀어 저장해야 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추가적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넷째, 젖소의 생리적 특성 외에도 젖소가 매일 섭취하는 목초를 포함한 사료공급의 문제가 심각하다. 젖소에게 목초를 급여하기 위해서는 광활한 목초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협소한 국토 면적과 높은 지가 등으로 목초지를 확보하기란 근본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국내 낙농은 대부분 미국이나 호주 등 광활한 땅에서 생산된 목초를 건조한 건초(hay, 乾草)를 수입해서 급여할 수밖에 없다. 일부 국내 남부지역의 논 2모작을 이용해서 생산된 사료작물이나 볏짚 등을 이용하거나 옥수수 사일리지를 만들어 급여하지만 절대 필요량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내 낙농은 외국의 사료작물과 목초의 작황, 수송비, 환율 등에 따라서 사료가격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같이 불안정한 해외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료공급의 문제는 국내 낙농이 갖는 불가분의 문제다.
다섯째, 목장경영에 투입되는 노동조건이 극히 취약하다. 목장의 냄새는 차치하고라도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단 착유가 시작된 착유소는 매일 같이 끊임 없이 원유를 생산하게 된다. 따라서 젖소목장을 경영하는 농가는 1년 365일 젖을 짜고 젖소를 관리해야한다. 별도의 농한기가 없다. 목장에는 트랙터를 포함한 목장경영에 필요한 대형 농기계와 기구 등이 많아서 늘 농기계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젖소의 일상에 내 자신을 맡겨야하는 삶이 낙농가의 일상이다. 최근에 젖소목장의 후계자가 부족한 것도 목장의 취약한 노동조건이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1970대 이후 우리국민들의 체력과 체위가 꾸준히 상승한 이유는 국민들의 영양수준이 개선됐기 때문이며, 거기에는 1차적으로 우리의 국내산 우유와 유제품이 기여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우리의 우유·유제품시장이 이제는 수입우유와 유제품에 의해 잠식당하는 가운데 국내 우유와 유제품 시장이 속수무책으로 위축되고 있다. 어느 경우라도 우리의 우유는 식량안보차원에서도 보호돼야 마땅하다. 1970년대 이후 50여년의 낙농역사를 거치면서 우리의 낙농기술 수준은 엄청난 성장을 해왔다. 우리나라 원유의 위생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착유소 두당 연평균 산유량도 세계 최고 최고수준이다. 이는 낙농경영여건이 취약한 여건 속에서도 개별 낙농가의 피눈물 나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지금껏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좋은 원유를 공급해온 한국낙농이 여기에서 좌절될 수는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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