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양돈과 백선영 연구사
전 세계는 지금 ‘종자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전자원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과거에는 식량자립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우수한 유전자원의 확보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이는 식물의 씨앗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가축의 정액과 수정란도 전략적 자산으로 간주된다.
특히 돼지는 품종 개량을 통해 육질, 번식력, 성장 속도를 극적으로 개선할 수 있기 때문에, 우수한 씨돼지의 유전자를 얼마나 잘 보존·전파하느냐가 축산 선진국의 전략적 과제가 되고 있다. ‘동결정액’은 바로 그 유전자 자산을 저장하고, 공유하고, 수출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이제 실험실을 넘어 농가의 생산성과 국가 축산 경쟁력을 좌우할 실용 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왜 돼지 정액을 동결해야 할까? 돼지는 매우 중요한 산업 동물이지만, 여전히 번식 관리는 사람의 손을 많이 타는 분야다. 돼지 정액을 냉동 보관하면 다음과 같은 이점이 있다. 예를 들어, 우수한 유전자를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고, 전 세계 어디에서나 활용이 가능하며, 교배 시기를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다. 또한, 살아있는 씨돼지를 수입할 경우 검역이 까다로운 반면, 정액은 비교적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고 질병 전파 위험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돼지 정액 동결이 일반화되지 못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돼지는 1회에 사출되는 정액의 양(150∼250ml)이 많고, 산자 수(한 배에서 나오는 새끼의 수, 8∼12마리)가 많으며, 임신 주기가 비교적 짧고(소 약 280일, 돼지 114일) 액상 정액의 유통이 잘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돼지 정자는 다른 가축에 비해 저온에 민감해서, 동결과 해동 과정에서 운동성과 생존율이 크게 떨어진다. 정자의 첨체(머리 부분)나 미토콘드리아(에너지 생성기관)도 쉽게 손상된다. 품종, 개체 및 환경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특수한 장비와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것도 한계로 지적돼 왔다.
동결정액은 어떻게 만들까? 세포는 얼리는 과정에서 손상이 일어나므로 정액에 동결 보호제를 섞어 정자 세포를 안정화 시키고 정액 동결기 장비를 이용해 서서히 온도를 낮춰 액체질소(-196℃)에 저장한다. 이렇게 보존된 정액은 영구보존 가능하며 필요할 때 해동해 인공수정하면 된다.
이처럼 기술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은 돼지 동결정액 기술을 개발하고 안정화시켜 농가에 상용화 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 연구진은 동결정액의 품질을 높이고 인공수정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희석제 조성 실험, 정자 기능 분석(운동성;직진성, 빠름의 정도, 곡선속도, 직선속도, 평균 이동속도, 생존율, 첨체반응 등), 미토콘드리아 활성 증진 연구 등을 수행했다. 또한 동결 손상 방지제, 항산화제 첨가, 냉각속도 조절, 해동 시 보완제 조정 등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그 결과, 기존 연구 대비, 정자의 막 안정성과 미토콘드리아 활성도 증가, 정자 생존율 약 22% 향상, 총 운동성 20% 증가, 임신률 10% 개선이라는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
돼지 동결정액 기술은 단순히 정자를 보존하는 기술을 넘어, 축산업의 효율화, 유전자의 세계적 공유, 전염병 차단, 국가 종자 자산 확보라는 측면에서 미래 축산 경쟁력을 좌우할 열쇠가 된다. 0.5ml의 정액이 담긴 작은 스트로 한 개가 수많은 농가를 연결하고, 우수한 생명을 퍼뜨리며, 국가의 유전자 전략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우수한 유전자원을 안정적으로 보존하고, 이를 개량에 적극 활용하기 위해, 동결정액 기술의 지속적인 연구와 품질 향상이 필요하다. 이는 곧 한국 축산의 미래를 준비하는 길이기도 하다.
축산신문, CHUKSAN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