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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 대 연 형목장 대표

“내일위한 농촌 파수꾼으로 남겠다”

지난 30년 동안 농촌운동을 위해 앞장을 선 축산인이 있다. 특히 이 축산인은 신체조건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한국 농촌이 잘 살수 있는 길이라면 개인의 희생까지 감수했다는 것이 그를 아는 주위사람들의 말이다.
화제의 축산인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성석동 765번지 형목장 김대연대표(60세). 1946년 1월 9일 가난한 농촌에서 차남으로 출생한 김대연대표는 성석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땅 1천2백평으로 당시 동생(김보연·벽제농협조합장)과 함께 살기가 힘들었던 관계로 동리의 궂은일은 거의 도맡아 했다 한다.
1970년 농촌지도자 벽제면회장을 시작으로 농촌운동가가 된 김대연대표는 1976년 젖소1두를 입식하고 서울우유에 가입(조합원번호 4389)했다. 그 동기는 “당시 농촌에서 낙농은 가장 소득이 높았었던 작목으로 거금을 투입, 젖소를 입식했던 1976년 5월 8일은 아직도 어제일 같다”고 회상했다.
좌우명이 ‘최선·노력·극기·성실’인 김대연대표가 농촌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은 아주 남다르다. “농촌이 잘 살 수 있다면 나 하나의 몸은 기꺼이 희생되어도 좋다”는 굳은 결의아래 농촌운동을 하여 ▲1981년=경기도 명예농촌지도사로 위촉 ▲1983∼1986년=영농기술자연합회 벽제면회장 ▲1984∼1988년=고양축협 2·3·4대 대의원 ▲1985∼1991년=서울우유 벽제낙우회장 ▲1989∼1997년=고양축협 4·5대 이사 ▲1994년=고양축협 벽제축산계장 ▲1995년=4-H연맹 경기도지회 감사 ▲1995∼1998년=4-H연맹 고양시지회장 ▲1995∼1998년=서울우유 고양낙우회장 ▲1995∼2001년=고양낙우영농조합 대표이사 ▲1996년=서울우유조합 대의원협의회장 ▲1997∼2003년=서울우유 TMR협의회장 ▲1998∼2002년=서울우유조합 이사 ▲1999∼현재=경기도지도사협의회 수석부회장 ▲2000∼2004년=한국낙농육우협회 자조금관리위원 등 농촌과 지역발전을 위해 많은 봉사를 하였다.
김대연대표가 지난 30년이 넘도록 농촌발전을 위해 쏟았던 열정에 비하여 상훈은 ▲1992년=모범도민표창(경기도지사) ▲1996년=감사장(환경부장관) ▲1999년=4-H지도자 표창(한국 4H중앙연맹) ▲2003년=농정발전과 후계세대 육성공로 표창(경기도지사)이 전부이다.
김대연대표는 농촌과 지역이 보다 발전하려면 배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야간에 고양실업고교를 다녔다. 43세가 되던 1988년 졸업을 하고, 1997년에는 건국대학교 농축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을, 2001년에는 고양명륜대학 진사반·지도자반을 각각 수료했다.
올해로 진갑을 맞이한 김대연대표는 “나이는 못 속이는 것 같다. 과거 충천했던 힘은 어디로 자취를 감추었다”면서 29년동안 나름대로 노하우와 철학을 겸비하면서 경영했던 낙농업을 지난해 정리한 동기를 말했다. 현재 비육우 25두와 밭 6천평·논 5천평 등 1만1천평의 농사를 짓고 있다. “오늘보다 내일, 올해보다 내년이 더 낫도록 오직 농촌의 파수꾼으로 남겠다”고 재삼 강조한 김대연대표는 김정희여사(57세) 와 뒤늦게 둔 외아들 수웅(8세)이가 있다.
조용환 ywcho@chuksa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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