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기자] Q. <1>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돼지를 키우기 시작했나요? A. 돼지는 인류가 농경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야생 멧돼지를 순화시켜 사육하기 시작해 일찍이 가축화된 동물 중 하나이다. 돼지는 순하고 번식력이 좋으며 발육이 빨라 가축화에 유리했다. 또한, 돼지는 식성이나 환경적 요구가 까다롭지않고 한 번에 10마리 가량을 낳으며, 1년에 20마리 이상의 새끼를 낳을 수 있는 다산성을 가지고 있는 등 가축화에 유리한 동물이었다. 잡식성인 돼지는 습성상 유목 생활과는 어울리지 않는 동물로서 인간이 정착 생활을 시작한 시기부터 사육되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의 집돼지는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 등의 야생 멧돼지 일부가 순화된 것으로 그 시기는 B.C. 6000년경으로 추정되며, 본격적인 가축화는 아시아에서 먼저 진행되었는데, 동남아시아는 B.C. 4800년 경, 유럽은 B.C. 3500년 경부터 돼지의 가축화가 시작되었다. 스페인 북부지방에 있는 *알타미라 동굴의 커다란 수퇘지 벽화는 돼지에 대한 원시인의 관심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우리나라에는 고구려 시대 한민족이 만주지방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들여와 기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
[축산신문 기자] (전 농협대학교 총장) ▶ 초등학교 시절, 그러니까 1950년대 후반 즈음에는 가뭄이 심했던 해가 많았다. 봄 가뭄이 심해지면 모내기를 못했다. 저수지 바닥이 드러나고 논바닥은 거북등처럼 갈라졌다. 그럴 때면 전교생이 바께스, 대야 그리고 호미를 들고 모심기에 나섰다. 졸졸 흐르는 개울물을 길어다 마른 논에 모를 심었다. 그 시절에는 천수답(天水沓)이 많았고 지금처럼 물을 퍼 올리는 양수기도 없었다. 하루 종일 모를 심어봐야 면적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렇게라도 농사를 지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농민의 수는 많고 경작지는 부족해서 논두렁 밭두렁까지 콩을 심었다. 손바닥 만 한 빈 땅에도 작물을 심는 농민들이었다. 땅이 바로 그들의 삶의 터전이고 뿌리였다. ▶ 국민들의 굶주림을 해소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정책은 농업용수 확보를 위한 저수지 건설과 수리시설 그리고 경지정리사업이었다. 농업기반시설 확충에 나선 것이다. 경지정리를 담당할 농업진흥공사가 출범했고 저수지 관리를 담당할 농지개량조합이 지역별로 설립되었다. 시·군과 농촌지도소가 직접 독려에 나서며 노력한 결과, 천수답이 줄어들고 수리안전답이 늘어났다. 가
[축산신문] (북방연구회 연구위원) 이 시기 북한 축산정책의 방향은 국영 축산업과 협동농장의 공동 축산을 기본으로 하고 농민들의 부업축산을 병행해 발전시켜 협동농장들에서는 작업반 당 2톤, 농가호당 100kg 이상의 고기를 생산하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책방향에 근거해 공동소유로 있던 일부 중대형 가축들이 개인의 소로 할 수 있는 공간이 형성되었으며 이 공간은 축산농민들에게는 공동생활과 개인생활이라는 이중적인 일상이 생겨나게 했다. 협동화 초기에는 집단생활에 많은 비중이 실렸지만 점차적으로 개인의 이윤을 위한 일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게 되었다. 집단축산업에 종사하면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종자구입과 새끼생산, 비육, 판매, 가축사육 등 전문적인 전문 축산업자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일반 농산작업반 농민들과는 현저히 차이 나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농산작업반 농민들은 노동당정책을 집행하라는 강요에 따라 의무적으로 1년에 돼지 1마리도 겨우 길러냈지만 축산농민들은 보통 1년에 5~10마리의 돼지를 비육하면서 종축까지 하는 사람도 있었다. 개인 축산업자들이 생산한 가축새끼들이 공동축산에서 국가가 하달한 공급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공급마리 수를 채우기 위해
[축산신문] (북방연구회 연구위원) 북한주민들의 일상을 보는 견해를 논할 때 직업의 환경이 그들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과 같은 사람들이 직업이나 직종의 차이로 서로 다른 시기와 장소에서 왜,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는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부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북한축산농민들의 일상이 왜,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축산업이라는 경제 형태는 인간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먹는 문제의 해결에 있고 따라서 축산농민들의 일상은 축산업 운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은 정책적으로 ‘이밥에 고깃국’을 먹자는 슬로건을 내 걸고 인간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인 ‘의·식·주’의 개념을 ‘식·의·주’로 바꾸어 부르고 있다. 북한의 농촌 환경에서 개인축산업자, 축산농민들이 어떻게 살고, 일하고, 서로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우리는 북한주민들의 일상으로부터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특히 북한 축산과 축산 시장에 대한 향후 반응을 예측할 수 있었으면 한다. 북한의 사회변화와 축산업자 해방 후 개인 농업경리시기 대부분의 축산농민들은 오늘날에 비해 이익률이나 생산성에 훨씬 덜 민감했고, 돈을
Q. <100>목장형 유가공 관련 교육은 어디서 진행되나요? A. 소규모 유가공업을 희망하는 낙농가에게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사항은 마무리 소규모 일지라도 식품안전에는 예외가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최고의 유제품을 가공하기 위해서는 사용하는 원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소비자들이 식품의 선택함에 있어 가장 중요시 하는 사항이 안전성이며 두 번째가 맛임을 명심하고 최고 품질의 유제품의 최고 품질의 원유에서부터 시작됨을 명심하고 유가공기술 못지않게 원유의 품질관리부터 최선을 다할 때 소비자들에게 품질에 신뢰를 줄 수 있다. 축산원에서는 2003년부터 한국목장형유가공연구회를 창립해 지금까지 20여차례의 워크숍을 개최하고 매월 정기 월례회(매월 셋째주 수요일)를 개최하고 있다. 낙농가라면 연구회에 가입 함께 활동하면서 먼저 인허가를 받아 소규모 유가공업을 하고 있는 낙농가에게서 지역별로 정보를 공유하고 인허가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창업·마케팅 등 다양한 정보교환을 나눌 수 있다. <자료 : 국립축산과학원>
(전 농협대학교 총장) ▶ 농축산업 후계자문제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세계적 공통관심사이다. 미국, 프랑스 등 전통적인 농업선진국은 물론 우리와 여건이 비슷한 일본도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여기서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 미국의 경우는 ①신규로 농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신규농가 및 목장경영자 발전프로그램(Beginning Farmers & Rancher Development Program)을 운영하는데 재배·사육기술지원, 작물보험 등 경영안정지원, 사업정착을 위한 금융지원 등이 있다. ②농업생산, 농산물마케팅, 자금관리, 법률문제, 인적관리 등에 관한 위기관리(risk management)교육을 이수토록 지원한다. ③전국 농장이양네트워크(National Farm Transition Network)를 통해 은퇴하는 농가가 운영하는 농·목장을 신규 농업인들이 우선 매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④신규농가개인개발계좌(Beginning Farmer & Rancher Individual Development Account : BFRIDA)를 운용해 농가가 3천달러까지 저축하면 정부
[축산신문 기자] Q. <98> 소규모 유가공업의 충족기준은? A. 최근 정부에서는 농식품의 6차 산업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많은 낙농가에서 소규모 목장형 유가공에 관심이 많이 증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에서 소규모(목장형) 유가공업에 대한 별도의 업종으로 분류되어 있지는 않고 축산물가공업에 식육가공업, 유가공업, 알가공업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소규모유가공업을 시작하는 낙농가에서는 축산물가공업중 유가공업에서 요구하는 공통시설기준과 개별시설기준을 충족하여야 한다. 공통기준은 축산물의 가공시설과 원료 및 제품의 보관시설 등이 설치된 건축물의 위치등과 작업장, 축산물 취급시설, 급수시설, 촤장실, 검사실 등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개별시설기준에는 식육가공업, 유가공업, 알가공업에 대한 기준을 갖추어야 한다. Q. <99> 소규모 유가공업의 인허가 방법은? A. 인허가 방법은 각시도 축산관련 부서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시도의 사정에 따러 담당부서가 다소 다를 수 있으므로 직접 전화나 방문으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근린생활시설, 가공장시설, 폐수처리방법 등 공장시설 등 필요한 요구사항이 많이 있기 때문에 거주하는 지자체별로 많은 차이가 있
[축산신문 기자] (전 농협대학교 총장) ▶ 축산업의 주변여건을 살펴보면 환경규제 강화, 가축분뇨와 냄새, 가축질병 발생, 수입개방, 수급불안, 그리고 농촌의 고령화와 축산전문인력 부족 등 축산업 발전을 제약하는 요인들이 많다. 이러한 난제들을 극복하고 우리 축산업의 밝은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서 시급한 것은 젊고 유능한 전문인력 양성이며, 우리나라의 축산업 발전을 견인해 온 축산농가의 대를 이을 후계자를 육성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우리나라 농업인구(2017)는 242만 명 전체인구의 4.7%, 250만 명이 무너졌고 5%도 무너졌다. 농가인구 중 65세 이상인 농업인의 비율이 2010년 31.8% 2016년 40%에서, 2030년엔 50.5%로 늘어날 전망이라니 큰 걱정이다. 반면에 49세 이하의 젊은 농업인의 수는 2000년 50.1%에서 2010년엔 37.9%로 2016년엔 27.4%로 줄었고, 앞으로도 더 줄 것이라니 걱정이 더욱 크다. 우리의 고향인 농업 농촌이 노쇠해가고 있는 것이다. ▶ 축산분야는 어떤가. 지난 16년간 축산농가수의 변화를 보면 얼마나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한·육우 농가는 2000년에 29만호가 2016년
[축산신문] 북방연구회 연구위원 북한은 축산업을 ‘고기, 알, 젖, 가죽, 꿀 등 축산물과 그 부산물을 생산하는 농업의 한 부문’으로 정의하고 있다. 북한에서 축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은 고기를 비롯한 알, 젖, 꿀 등 식품과 털, 가죽, 뼈, 뿔 등 여러 가지 경공업원료의 보장과 축력, 거름생산으로 지력을 높이고 농업생산을 증대시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북한의 축산업은 극심한 경제난과 그로 인한 자원부족으로 상당한 정도 위축되었다. 북한은 경제난과 자연재해로 인한 곡물사료의 부족으로 위축된 축산업을 정상화하기 위한 대책으로 초식가축위주로 축산정책의 방향을 전환을 하고 일부 축산전문기업소의 현대화 등 축산업 발전을 위해 고심을 했지만 폐쇄적 계획경제와 재원의 부족, 기술과 경험, 약품과 기술인력 설비의 부족 등으로 낙후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이 세포지구에 대규모 축산기지를 건설하고 운영을 시작했지만 초지 조성, 우량가축 공급, 경영방식의 낙후, 방역기술의 후진성을 극복하지 못해 상당한 애로를 겪고 있다. 닭, 오리 등 가금기업은 비교적 현대화 되었지만 돼지, 소, 염소 등의 가축산업은 많이 뒤떨어져 있다. 북
[축산신문 기자] (전 농협대학교 총장) 농업경영 활동을 함에 있어 그 주체가 누구인가는 큰 의미가 있다. 과거에 소작(小作)을 하거나 소규모로 농작물을 재배할 때는 농사(農事)를 짓는다 했고, 그 주체는 농민(農民)이었다. 그 뒤 농지개혁이 일어나고 소작인이 소지주화 즉 자경농민(自耕農民)이 됐을 때도 그 규모는 여전히 작았고, 농가수도 많았으므로 역시 농민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농민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농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농사만을 업으로 하는 농업인(農業人)이 생겨났다. 농사(農事)가 농업(農業)화 되고, 농민(農民)이 농업인(農業人)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이제 농업도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한 모습을 갖추게 됐다. 농축산물을 생산하는 사람을 농업인이라고 정의한다면, 농업을 영위하는 주체가 누구인가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동안 농업의 주체는 농업인이었으나 농업의 효율성 제고와 경쟁력 제고를 명분으로 농업회사법인, 영농조합법인 등 농업법인이 생겼다. 이 중 다수의 법인들은 법인의 형식만 갖추었을 뿐 실질적으로는 몇 사람(심하게는 한두 사람)에 의해 경영되는 예가 많다. 정부는 현재 농업법인에게도 농업인과 같은 지위를 부
[축산신문 기자] Q. <96> 피부진균증의 치료 및 예방법은? A. 동물의 피부에 감염되는 곰팡이(진균)에는 여러 종이 있지만 소에서는 보통 Trichophyton vercosum이라는 곰팡이가 원인이다. 보통 버짐이라고 불리우며 주로 감염된 동물과 직접 접촉에 의해서 전염되며, 깔집, 마구 등과 같은 것에 의한 간접적인 접촉도 중요하며 습기가 많은 장마철과 환절기, 특히 봄철에 영양이 좋지 않은 노령우 및 어린소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소에서 주로 발생된다. 전형적인 병변은 두꺼운 회백색 가피를 형성하며 피부표면상에 뚜렷한 융기가 있으며, 병변은 거의 원형에 가깝다. 병변이 흔히 나타나는 부위는 경부, 두부, 회음부나 어린소에는 전신에 넓게 퍼질 때도 있다. 소양감은 없고 2차적인 좌창발생도 드물다. 이 곰팡이는 사람에도 전염되기 쉬울 뿐만 아니라 더욱 심한 증상을 일으키므로 감염우 취급에 주의해야 한다. 외부에 보이는 병소가 적을 때는 병소를 잘 긁어낸 후 진균제를 매일 1회 이상 발라주며 5% 옥도액을 발라주기도 한다. 또한 10%용액의 요오드소다를 체중 15kg당 10ml를 2회 정도 정맥주사를 실시할 경우 효과가 있다. 유황연고와 약국에
[축산신문] 북방연구회 연구위원 해방 후 북한의 축산업은 자연발생적으로 발전했고 1950년 초 일부 국영목장들이 생겨났으나 한국전쟁으로 심각한 피해를 받아 거의 폐허가 되었다. 전후 북한은 개인경리의 사회주의적 개조라는 명목으로 도시 개인기업과 농촌에서 개인농업의 협동화를 진행했고, 협동화가 완성된 1958년 이후부터 국영축산업의 창설과 협동축산의 확대가 진행되었다. 정부 내각의 농업위원회(지금의 농업성) 아래 축산관리국을 설치하고 축산정책 작성과 장래발전을 계획적으로 추진했다. 또한 축산업의 집약화나 종축개량, 경영방식 개선, 사료산업의 창설, 축산기술자 양성을 위한 대학·전문학교 건립 등 축산업 발전을 위한 기초를 축성했다. 현재 북한의 축산업은 크게 국영부문과 농업부문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농업성 축산국은 농업부문 축산을 담당하고 국영목장관리국(또는 가금총국)이 국영축산부문들을 담당해 관리하고 있다. 북한은 1965~1966년에 또한 축산업의 전문화, 국영화를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국영목장들을 종축장으로 개편했다. 그리하여 축산업을 지대별, 가축별로 전문화한 국영목장들과 국영축산기업소들이 신설되었다. 1965년에 내각국영가금총국을 설치하고 가금농장들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