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경 수 교수(건국대학교(경상학부))
축산업계의 원로가 우리 축산의 미래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시론에 게재한 적이 있다.
한국 축산은 혐오산업 취급을 당하면서 위기에 봉착해 있지만 실효성 있는 어떤 노력과 구호도 보이지 않고 발등에 떨어진 불마저 제대로 끄지 못한 채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 감각을 잃고 우왕좌왕하고 있어 걱정된다는 심정을 토로했었다(윤봉중, “축산, 어디로 가고 있나”, 축산신문 시론, 2013년).
근래에 들어 축산업에 불리한 많은 여건 변화들이 있었다.
특히 환경보호에 대한 전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냄새와 오수·분뇨 및 축산폐수처리 문제로 축산업은 환경보호와 갈등구조를 갖게 되었고, 전면적 축산물시장개방 이후 어느덧 우리는 동네마트에서 축산강국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격변기를 직면하고 있다.
원로는 이러한 변화에 우리 축산이 현명하게 대응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제 2016년에 들어서 우리 축산이 이 엄정한 과도기에 합리적으로 대응하면서 다가올 더 큰 파고에 잘 대비하고 있는지 의심스럽기는 3년 전 원로의 걱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경영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피터 드러커는 “변화를 성공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변화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했다.
과도기적 변화는 분명 고통스럽지만 현명한 지도자라면 변화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주변 환경에 창조적으로 대응하여 미래에 대처한다는 것이다.
물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계획은 필연적인 위험부담을 수반하지만 시대적 변화에 눈을 감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
축산지도자들은 이를 깨닫고 한국 축산의 능동적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휘몰아치는 여건 변화에 무심해진다면 한국 축산의 미래를 더 이상 기약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장기적 불황에도 불구하고 소값과 돈가가 높게 형성되고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앞으로 질병발생을 잘 관리하고 공급을 조절하면 큰 문제없이 이런 호황이 지속될 것으로 기대하는 낙관적인 분위기도 느껴진다.
축산물시장개방 이후 심각한 파동들을 겪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농가들이 두려워했던 만큼 축산업 경기가 나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 미국과 유럽의 광우병 발병과 같은 사건들이 우리 축산물에 대한 소비자선호를 높였고 이 때문에 수입개방의 영향이 완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우리 축산의 국제경쟁력 강화로 인해 얻은 결실이라고 생각한다면 착시현상임을 주의해야 한다.
축산물시장개방 이래 정부는 20년 넘도록 축산부문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막대한 재정 투융자사업을 시행해왔는데도 해결되지 못한 많은 난제들이 그대로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축산에 그렇게 재정을 쏟아 붓고 나서 바뀐 것이 무엇이냐는 비판까지 들린다.
비록 그런 비판이 지나치다 하더라도, 우리 축산업이 정부가 목표하고 노력한 만큼 성공적으로 변화했다고 평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우산업의 예만 간략히 봐도 그렇다. 한우산업에 일어나고 있는 과도기적 변화는 가히 파괴적이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추진되던 1990년 한우사육농가는 62만호였는데 2001년 완전개방을 맞아 24만7천호로 2.5배 감소했고, 2015년 말에 8만9천호로 더 급격히 감소했다.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소규모 번식농가 위주로 폐업이 가속화되면서 급격히 와해되고 있는 한우번식기반이 우려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떤 대책들이 시행되고 있는지, 한우산업은 어떠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시장원리에 입각하여 취약한 농가들이 퇴출하면 경쟁력 있는 농가들의 규모화를 촉진시켜 산업이 더 강해진다는 초등학생 수준의 매우 단편적이고 원론적인 주장이나 듣지 않는다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다른 한 편으로 한우산업은 소비자들의 육류소비패턴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고 있는지 냉철히 자성해봐야 한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은 현대의 소비자들이 동물성지방의 섭취를 줄이려는 변화는 엄연한 사실(fact)이다. 그러므로 신문기사나 TV 프로그램들이 육류소비에 대한 오해를 부풀릴 경우 반박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소비자 육류소비 추세를 지속적으로 면밀하게 관찰해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다.
필요하다면 등급제 개편도 고민해봐야 한다. 마블링에 대한 매스컴 보도내용의 진위를 떠나서, 또는 소비자 인식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육류지방 섭취를 꺼려하는 소비추세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소비자들은 한우산업에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은 이미 마블링 위주에서 맛과 올레인산 함량을 증가시키는 생산방향을 정하고 이에 맞는 육종과 사양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있음을 참고해야 한다.
누가 이런 변화에 발 벗고 나서야 할 책임이 있는가? 축산선진국들의 예를 봐도 예외 없이 전적인 책임은 생산자인 축산농가에게 있고, 축산지도자들이 이러한 변화를 주도한다. 그리고 변화의 이슈와 미래 방향에 대해서는 축산농가들이 설립한 연구소에서 그 타당성을 분석하고 전략을 세운다.
호주의 육류산업전략안(Meat Industry Strategic Plan 2020), 미국의 쇠고기산업장기계획(The Beef Industry Long Range Plan 2016-2020), 캐나다의 국가쇠고기전략(National Beef Strategy) 등이 좋은 예이다.
지금까지는 우리의 축산지도자들이 급속한 시장개방정책에 반대하여 생존권을 보호하고 정부지원을 획득하기 위한 “운동과 투쟁”을 주도해왔다면, 이제는 축산의 미래 목표를 설정하고 농가 주도적인 창조적 변화를 이끌어야 할 때이다.
그것이야말로 석학 피터 드러커가 말하는 격변기에 변화를 창조하는 리더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축산지도자들이 중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방향과 목표를 설정하고 추진하기 위해서는 축산정책 관련 컨퍼런스, 세미나와 같은 전문가 토론의 장이 다양하게 활성화 되어 멘토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또한 축산선진국들처럼 축산농가 자체연구소가 필요함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