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기자]
이 경 렬 농업연구사
농촌진흥청 식물소재바이오공학과
전 세계적으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구제역(FMD) 등 국가 재난형 가축 질병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더불어 반려동물 양육 가구가 늘면서 가축과 반려동물의 질병 예방을 위한 백신 수요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세 속에서 기존 백신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고 안정적으로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백신 생산 플랫폼 개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상용화된 백신은 크게 사백신과 생백신으로 구분된다. 사백신은 병원체를 불활성화시켜 제조하며 안전성은 높지만, 면역 유도 효과가 다소 낮은 편이다.
반면 생백신은 약독화된 병원체를 사용해 면역 효과는 우수하나, 체내에서 병원체가 병원성을 회복할 가능 성이 있어 안전성 확보에 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전통 백신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동물세포나 미생물을 이용한 재조합 백신이 상용화되고 있지만, 생산 비용이 높고 제조 과정에서 바이러스에 오염될 위험이 있어 널리 활용되기엔 제약이 따른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로 ‘식물 기반 재조합 백신 생산 시스템’이 주목받고 있다. 이 기술은 생산 속도가 빠르고, 비용이 저렴하며, 병원체로부터의 오염 우려가 없다는 점에서 높은 안전성을 자랑한다.
또한 대량생산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향후 백신 공급망 안정화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특히 담배속 식물인 니코티아나 벤타미아나 (Nicotiana benthamiana)는 외부 유전자를 빠르게 발현할 수 있어 백신항원 생산에 최적의 기주 식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식물 기반 백신 기술도 NOHSOOYONG 해결해야 할 과제가 존재한다.
우선, 식물내 단백질 축적량이 낮고, 식물이 생성하는 2차 대사산물로 인해 정제 효율이 떨어지는 점이 있다. 의약품으로 활용되기 위해선 니코틴과 같은 독성 물질도 제거해야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유전자 가위(CRISPR) 기술을 활용해 유해 성분을 억제하고, 식물 바이러스 기반의 바이럴벡터 시스템을 통해 단백질 발현량을 높이는 등 여러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 해외 사례로는 캐나다 바이오기업 메디카고 (Medicago)가 식물 기반 코로나19 백신을 상용화 단계까지 끌어올린 바 있다.
국내 기업인 바이오앱 (BioApp)은 세계 최초로 식물 기반 돼지열병(CSF) 및 써코바이러스(PCV2a) 백신의 품목허가를 획득 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역시 식물 기반 가축 백신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제성과 실용성을 높이기 위해 자체 개발한 식물 바이러스 기반 바이럴벡터 3종을 통해 단백질 축적량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고, 관련 핵심 기술은 이미 특허 출원을 완료했다.
더불어 니코틴 함량을 95% 이상 줄인 저니코틴 담배 식물과 단백질 분해효소 활성을 억제한 식물도 개발 중이며, 이를 통해 정제 효율과 생산성 모두 큰 폭으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식물 기반 백신 기술은 기존 백신 생산방식을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백신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국가 차원의 백신 주권을 확보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이는 농업과 바이오 기술이 융합되는 ‘첨단 농업’ 실현의 중요한 단계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면역 효과는 뛰어나되 병원성은 없는 바이러스 유사입자(VLP) 백신도 식물을 통해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머지않아 식물(Plant)이 백신을 생산하는 차세대 공장(Plant)으로 자리 잡을 날이 올 것이다. 식물이 열어갈 미래 백신 생산의 새로운 장(章)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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