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복지·친환경 역점, 가치 소비 부응을” 업계 여론
단순 물가 정책 넘어 고부가가치 창출 지원 힘써야
[축산신문 김수형 기자] 한국 축산업에서 한우와 한돈이 높은 생산비와 수입 축산물과의 가격 경쟁력 열세 속에서 고급화 전략을 통해 시장을 지켜왔다면, 그간 저가 전략에 머물러 있던 계란과 닭고기 등 가금 산물 역시 이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변화하는 생산 환경과 소비자 인식 속에서 가금 산물도 고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고급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생산비 상승 압박, 저가 전략의 한계
그동안 닭고기와 계란은 대규모 공장식 생산 시스템과 균일한 품종을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며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국민 단백질원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소비자들도 이들을 ‘불황형 소비’ 품목으로 인식할 만큼 가격 민감도가 매우 높고, 정부 역시 물가 관리를 위해 가금 산물의 가격 안정화에 주력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저가 전략은 이제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생산 현장에서는 동물복지 강화로 인해 사육 공간 확대, 시설 개선 등 생산비 증가 요인이 발생하고 있으며, 사료 가격 상승은 농가에 이중고를 안겨주고 있다.
생산 과정에 선진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지 가격과 소비자 가격이 일정 수준에 고정되면서, 농가들은 소득 향상을 위해 대형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결국 농가 수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졌다.
◆높아지는 품질 기준, 외면받는 시장
계란 업계는 지난 2017년 살충제 파동 이후 식용란선별포장업 도입과 산란계 적정 사육면적 확대 등 품질과 위생 기준이 강화되면서 생산비가 상승했다. 일각에서는 소비자들이 품질 향상에 따라 기꺼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높아진 계란 가격을 본 소비자들은 구매를 망설이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계란 가격 상승 원인을 두고 생산자와 유통인들의 가격 담합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이는 가격 안정화의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계란 생산자와 유통인들은 동물복지 확대로 인한 생산량 감소가 가격 상승의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하며, 동물복지 환경에서 생산된 계란이 시장에서 그 값어치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닭고기 시장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수십 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는 사육비에 생산자들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육계 분야도 동물복지 확대와 함께 농장의 대형화가 진행되었고, 많은 농가들이 이러한 변화 속에서 축산업을 떠났다. 계열화 업체 입장에서는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산지 출하 가격이 적정 수준 이상으로 오르지 못하는 상황에서 농가에 지급하는 사육비를 무턱대고 올리기도 어렵다. 가격이 오르려 하면 정부가 할당관세 수입 확대를 통해 가격을 억제해왔기 때문이다.
◆가금산물, ‘가치 소비’ 시대를 준비해야
생산 현장에서는 가금산물도 이제는 단순히 ‘저렴함’ 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여론이 확대되고 있다. 소비 트렌드가 양적 소비에서 질적 소비, 가치 소비로 변화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친환경, 동물복지, 안전성 등 비가격적 요소에 더욱 큰 가치를 부여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동물복지 및 친환경 인증을 받은 제품을 단순히 '차별화된 제품'이 아닌 '기본 품질' 이상으로 인지시키고 이에 대한 정당한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시장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여기에 특정 농가의 사육 방식, 닭의 품종, 사료 등 차별화 요소를 강조해 프리미엄 브랜드를 육성하고 소비자들이 단순히 계란이나 닭고기를 구매하는 것이 어닌 특정 농장의 철학이나 가치를 구매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더 나아가 ‘좋은 계란’, ‘맛있는 닭고기’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소비자들이 그 품질을 신뢰할 수 있도록 생산 이력, 영양 정보 등 투명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정부 역시 이제는 단순히 가격을 억제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생산 현장의 변화와 소비 트렌드를 반영해 고품질 가금 산물 생산 및 유통 시스템 구축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커지는 상황. 무조건적인 가격 통제보다는 시장의 자율성을 존재하고 가치 상승에 따른 가격 인상을 수용하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가금업계 내부에서는 “여전히 계란과 닭고기가 대중적이고 저렴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생산 환경의 변화와 소비자의 의식 수준 향상을 고려할 때 단순히 ‘싼 값’만을 고수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이제 가금 산물도 생산자의 노력과 가치가 정당하게 평가받는 시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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