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익 회장(동물자원과학회 낙농연구회 / 농도원목장 대표)
지난 추석에 모처럼 친척들과 만난 자리에서 초등학교 선생인 사촌 여동생이 미국의사 ‘프랭크 오스키’란 사람이 쓴 ‘오래 살고 싶으면 우유 절대로 마시지 마라’는 책 한권을 들고 와서 책에 기재된 우유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이 사실인지를 낙농목장을 하는 오빠에게 확인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우유는 송아지를 위한 것이지 사람이 우유를 마시는 것은 소에게 고기를 먹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유지방은 콜레스테롤 덩어리로 평생 우유를 마시면 동맥경화를 앓는다!’ ‘아토피의 원인은 우유의 독성 탓이다!’ ‘청소년 범죄자는 보통 아이들 보다 우유를 10배나 더 많이 마신 집단이다!’는 등 이 책에는 우유에 대한 온갖 우려와 저주를 다 담고 있었다. 아마 이 책을 한번 읽어본 사람이라면 다시는 우유를 먹지 않을 것 같았다.
사실 이런 주장은 오래전부터 극단적 채식주의자나 일부 환경운동가들에 의해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그것은 사회통념에 반하는 또 다른 시각과 주장일 뿐 그런 주장 때문에 미국에서 우유소비가 결정적으로 감소되거나 축산업이 위축되진 않는다. 그런데 1인당 우유소비가 미국의 1/10 밖에 안 되는 우리나라에선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안티밀크에 대한 주장은 공영방송과 인터넷매체를 통해 여과 없이 확산되어 결국 우유소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몇 해 전 SBS의 ‘잘 먹고 잘 사는 법’이나 금년 초에 EBS를 통해 방영된 ‘소젖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가 방영된 이후 한때 안티밀크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최근 들어 사상초유의 잉여원유 사태가 지속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이다.
지난 6월 ‘한국동물자원과학회 낙농연구회’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안티밀크의 가장 중심에서 활동하고 있는 채식주의 의사단체인 ‘베지 닥터’와 우유의 진실을 논하는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베지 닥터’의 발표자는 ‘나는 왜 의사로서 채식을 권하는가?’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최근 들어 청소년들이 비만과 성인병으로 급격하게 건강상태가 나빠지는 것은 육류 및 유제품으로 인한 과도한 지방과 단백질 섭취에 기인 한다”며 “특히 우유 단백질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카제인은 동물성 단백질의 대표로 동물성 단백질은 IGF-1(Insulin like Growth Factor, 인슐린과 유사한 분자구조를 가진 호르몬) 분비를 촉진해서 각종 암 및 만성질환 발생에 기여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유섭취량이 증가함에도 오히려 뼈 건강은 악화되어 골다공증성 골절도 매년 증가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1인당 우유섭취량이 많은 미국이나 유럽국가에서 아시아 국가보다 골다공증 환자빈도가 높은 그래프를 증거자료로 제시했다. 이렇듯 최근 안티밀크의 주장을 살펴보면 과거처럼 우유 내의 항생제나 성장호르몬에 대한 문제제기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우유 속의 IGF-1성분으로 인한 각종 암 발생, 높은 유지방에 따른 비만 그리고 골다공증에 대한 우려로 바뀌고 있는 추세다.
이날 ‘베지닥터’측의 이런 주장에 대해 축산학계 및 영양학계의 반론은 훨씬 더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가공하지 않은 우유 내 IGF-1의 농도는 1-10 ng/ml 이지만 우유를 가공하게 되면 90%가 상실하게 되어 전혀 문제가 없으며 설령 가공하지 않은 우유를 많이 먹는다고 해도 우유에서 얻는 IGF-1의 양이 혈중 내 정상 IGF-1 농도의 1%도 안 되니 이 또한 전혀 문제가 안 되는 수치이다. 오히려 체내에서 IGF-1은 노화방지 및 면역력 역할과 세포의 성장과 증식에 도움을 주어 어린이 성장에 없어서는 안 되는 성분이다.
또한 우유섭취가 골다공증을 증가시킨다는 그래프를 검토해 보면 세계에서 우유섭취가 가장 높은 핀란드는 오히려 골다공증 발생률이 현저히 낮은 등 통계자료의 일관성 및 정확성을 신뢰하기가 어렵고, 특히 우유섭취가 적은 후진국에서 골다공증 빈도가 낮은 이유는 선진국보다 의료서비스의 부족에서 오는 데이터의 오류라는 판단이다.
이날 토론회장엔 동물복지단체와 소비자단체에서도 청중으로 많이 참석했지만 아무도 안티밀크에 대한 축산 및 영양학계의 반론에 대해 다시 반론하지 못했다. 그러면 도대체 왜 그들은 우유에 대해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그들의 이익과 무관한 안티밀크에 집착하는 것일까?
안티밀크(Anti Milk)운동의 가장 깊은 원점에는 육식을 비인도주의적인 식단이며 축산업을 비효율적이고 반환경적인 식량산업이라는 주장에서 시작된다.
채식주의자들은 한 사람이 1년 동안 먹을 곡식을 생산하기 위해선 200평방미터의 땅이면 충분하지만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50배나 많은 1만 평방미터의 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최근 UN 미래보고서는 기아로 전 세계에서 매년 3천만 명이 굶어 죽고 있으며 8억의 인구가 하루 한 끼 식사로 연명하고 있고 10억의 인구가 일일 1달러 미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고 하였다.
미국의 돼지는 영양사료를 풍부히 먹는데 아프리카의 어린이는 굶어죽어 가고 있다. 제 3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식량부족으로 굶주리는 동안 선진국에서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동맥경화, 심장병, 당뇨병 등 이른바 풍요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환경운동가 ‘존 로빈스’는 그의 저서 ‘Diet for new America’에서 “이 땅에 부족한건 식량이 아니라 정의다!”라고 기술하였다. “육류를 주식으로 하는 한 인류의 식량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채식주의의 절대적 이념이며 그들은 유제품을 끊고 육류대신 콩에서 단백질을 얻고 채식을 하는 것이 인류를 기아에서 벗어나게 하고 지구환경을 지키고 세계평화에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안티밀크운동은 이런 인도주의적 논리보단 외국의 편향된 논문이나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일부학자들의 주장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 무책임하게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마치 지난 광우병사태 때 ‘미국산 쇠고기를 먹느니 청산가리를 먹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언과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장난삼아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죽듯이 우리 낙농산업만 무책임한 방송과 왜곡된 주장 때문에 커다란 타격을 받고 있는 셈이다.
우유에 대한 오해와 소비자의 불신을 풀기 위해선 생산자와 관련학계가 역할분담을 하여 전략적으로 함께 대응하고 풀어나가야 한다. 우유에 관한한 비교적 객관적인 영양학계나 의학계를 아군으로 만들어야하고 적대적인 채식주의 단체와도 소통해야 하며, 끈질기게 설득하고 이해시켜서 그들의 도움은 못 받아도 우유소비를 훼방하지 못하도록 만들어놓아야 한다.
그래도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최근 생산자 스스로가 어려운 경영 속에서도 원유가격 인상을 유보하면서 소비시장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2009년부터 지난 4년 간 국내 유제품 소비는 18% 나 증가했으나 시유소비는 정체되었고, 수입 증가로 인해 유제품 자급률은 이제 59% 밖에 안 되는 실정이다. 전 세계가 자유무역주의를 룰로 삼고 각국과의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마당에 우리 낙농산업만 보호받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수입 유제품에 맞서 가격과 품질과 위생으로 경쟁해서 이겨야만 한다.
그리고 그 첫 과제가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