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신문 이동일 기자]
“통장보다 기록을 승계”…경영 지표로
유량·생산성 좌우 ‘체형 개량’에 역점
결국 개량 잘 된 소가 노동력 줄여줘
낙농 2세들에게 “다시 태어나도 낙농을 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고개를 젓는다. 365일 쉴 틈 없는 착유, 치솟는 생산비, 그리고 부모 세대와의 갈등까지. 하지만 전남 함평 은혜목장의 박성술 대표는 “다시 하라면 또 하겠다”고 단언한다. 그 자신감의 원천은 ‘막연한 성실함'이 아닌, 데이터에 기반한 ‘정밀한 개량'에 있었다.
은혜목장은 박 대표의 나이와 같은 45년의 역사를 지녔다. 1980년, 부친이 송아지 한 마리로 시작해 일궈온 터전이다. 2010년 귀향한 박 대표는 “최소 3년은 벙어리처럼 일만 하라”는 불문율을 지키며 부친 밑에서 현장을 익혔다. 그러던 2013년, 부친이 큰 교통사고를 당하며 준비할 새도 없이 경영 전면에 나서게 됐다.
많은 후계농들이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통장(자금 관리)'을 먼저 요구하며 갈등을 빚곤 한다. 하지만 박 대표는 당시 한 선배 낙농가에게 들었던 조언을 가슴에 새겼다.
“아버지를 넘어서려면 통장이 아니라 ‘기록'을 뺏어와야 한다.” 수정 날짜, 분만 예정일, 도태 사유 등 목장의 역사가 담긴 기록장을 손에 쥐고 나서야 비로소 목장의 흐름이 보였다.
박 대표는 “기록을 직접 관리하니 어떤 소가 돈을 벌어주는지, 어떤 소가 구멍인지 보이기 시작했다”며 “자금 흐름은 기록이 잡히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물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처음엔 그도 여느 농가처럼 ‘잘 먹이고 잘 짜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종축개량협회의 검정 사업에 참여하고, 소위 ‘개량 잘했다'는 선도 농가를 견학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100두를 짜는데 평균 유량이 40kg가 넘었다. 우리농장은 30kg도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사료 급여 방식은 대동소이했다.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소의 생김새(체형)'였다.”
박 대표는 선도 농가의 소들을 보며 단순한 덩치의 차이가 아니라, 유방의 부착 상태와 지제(다리)의 강건함이 생산성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잘 개량된 소는 유방이 높고 넓게 부착되어 있어 많은 우유를 생산하면서도 처짐이 없어 유방염 등 질병에 강하다.
박 대표는 “그때 본 소들의 유방 형태와 우리 목장 소를 비교해 보니, 왜 정액을 골라 써야 하고 개량을 해야 하는지 답이 나왔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후 아무리 비싼 정액이라도 목장 개량 목표에 부합한다면 과감히 투자하기 시작했다.
박 대표의 경영 철학은 ‘무조건적인 비용 절감'을 경계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육성우(어린 소) 관리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두당 하루 1~2천 원을 더 투자해서 소가 튼튼하게 자라면, 착유 시기에 한 달이면 그 비용을 다 뽑고도 남는다. 개량은 좋은 유전자를 심어주는 것이고, 사양 관리는 그 유전자가 발현될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것이다.”
이러한 ‘확률 게임'에 재미를 붙이자 목장 운영은 ‘노동'이 아닌 ‘경영'이 되었다.
박 대표는 “내가 선택한 정액으로 태어난 딸 소가 어미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낼 때, 그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며 “성공 확률을 50%에서 80%로 높여가는 과정 자체가 낙농의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체형이 좋고 건강한 소는 잔병치레가 적고, 번식 문제나 난산으로 주인을 괴롭히는 일이 현저히 줄어든다.
“소가 건강하니 하루 종일 축사에 매달려 있을 필요가 없다. 동생과 함께 목장을 운영하며 일주일에 이틀은 완전히 쉬는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개량이 안 된 소들은 농장주를 24시간 대기조로 만들지만, 개량이 잘 된 소들은 농장주에게 여가 시간을 선물한다.”
인터뷰 말미, 박 대표는 후배 낙농인들에게 “경험의 가치는 말로 대체할 수 없다”고 조언했다. 직접 기록하고, 실패해 보고, 개량의 성과를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있어야만 진정한 내 것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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