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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광복 이후 한국축산 체질 변화

양적ㆍ질적 성장 거듭…선진축산 위상 확립

[축산신문 김수형 기자]

 

올해로 우리나라는 광복 70주년을 맞았다. 광복 이후 70년간 축산업에는 어떠한 변화가 있었을까.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원장 홍성구)은 지난 13일 대강당에서 ‘광복 70년, 농업 70년 축산분야 R&D 성과 조명과 우리나라 축산업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발표회를 가졌다. 이날 발표된 축종별 축산업 발전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한우, 우수품종 육성·사육기술 개발…품질차별화 기틀 마련
낙농, 80년대 들어 급속 성장…원유 생산 기술 세계 5위권 수준
돼지, 출하체중 도달 일령 크게 단축…농업생산액 2위 품목으로
가금, 대형화 가속…90년대 계열화사업 시작 이후 현대화도

 

◆한우
한우산업은 민족의 시련과 역사를 함께했다.
조선총독부는 화우개량, 전쟁식량 조달 등의 목적으로 한우 150만 마리를 일본, 중국, 러시아 등지로 반출했으며 황갈색에 한해 한우로 인정하는 심사표준규정을 만들어 품종 다양성을 말살하고 소 가격 하락 조정 등 수탈을 가속화했다.
하지만 광복 이후 한우의 우수품종 육성과 사육방법이 개발되면서 생산성이 증대, 현재의 고품질 한우로 이어지는 기틀이 마련되었으며, 단순 식용이 아닌 우리 민족과 끊임없이 교감해 온 존재로 이어졌다.
한우산업은 광복 이후인 50년대 들어 산업재건을 위한 증산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60년대는 사료관리법이 제정되고 한국사료협회가 설립되는 등 한우산업 기반구축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다.
특히 인공수정, 정액채취법, 동결정액 보존법에 대한 연구도 이뤄졌으며 비육단계별 에너지 및 단백질 급여수준 시험 등 경제성이 높은 쇠고기 생산과 관련된 연구가 진행됐다.
80년대 들어서는 외국산 생우입식에 의한 소값하락 및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으로 수입개방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 시작됐다.
한우능력검정사업을 시작해 최초의 보증씨수소 선발이라는 연구가 진행되기도 했다.
90년대에는 한우고급육 전용사료 개발 및 생산기반연구로 희망산업으로 거듭났으며, 2000년대에는 한우육종농가제도의 도입으로 국가주도형에서 농가주도형 한우개량 시스템으로 전환됐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우수품질의 씨가축 능력을 개량하는 등 명품한우를 만들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낙농

우리나라 낙농업은 1902년 프랑스인 쇼트가 최초의 젖소를 도입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1910년 고종황제 황실가족에게 우유 및 고기를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이왕직 목장’이 건설됐으며 광복직전 유우두수는 2천261두까지 늘어났다가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기반이 파괴, 낙농기반이 멸실 직전까지 무너졌었다.
이후 1960년경부터 낙농연구와 정부의 체계적인 관리로 사육기반을 부활시켜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10만두 이상의 기반을 구축하는 등 낙농산업 발전이 가속화 됐다.
1975년부터 1989년까지는 낙농업이 급격하게 팽창한 시기이다.
이 기간동안 1인당 우유소비량은 1.6kg에서 38.7kg으로 늘어났으며, 젖소 사육두수는 8만6천두에서 51만5천두로 늘었다.
80년대가 양의 성장을 가져왔다면 90년 이후부터는 질적 성장을 이루고 있다.
젖소 사육두수는 2000년에 정점을 찍고 서서히 경감, 최근에는 45만두 전후를 유지하고 있으며 두당 연간 산유량은 2014년 기준 평균 9천kg(검정농가 1만kg 상회)를 보이고 있고, 원유 1등급 출현율도 90%가 넘으면서 유질의 향상도 있었다.
축산과학원은 “현재 한국낙농의 기술 수준은 전세계 5위권 이내이고 이러한 기반구축의 배경에는 다양한 측면의 연구가 뒷받침이 되어있다”고 밝혔다.

 

돼지

양돈업은 소규모로 돼지를 기르는 부업형 자급자족 형태에서 시작했다.
이후 전업형, 기업형 대량생산에 초점을 맞춘 공장형 단계를 거쳐 현재 환경, 인간, 동물복지에 초점을 둔 생활형 단계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돼지개량을 통한 경제능력이 크게 늘었던 점을 성과로 꼽을 수 있다.
1952년 외래종 씨돼지를 도입, 종돈개량에 활용한 것으로 시작된 육종 개량은 1969년 종축개량협회의 설립으로 날개를 달았으며  90kg 도달일령도 크게 단축하는 성과를 얻었다.
돼지 인공수정 기술도 개발되면서 2008년에는 인공수정 보급률 90%를 기록했으며 축산물 등급제, 돼지고기 등급제 등의 탄생으로 품질의 고급화도 이뤘다.
이와 같은 노력으로 돼지 생산액 순위는 1970년 농업생산액 10대 품목 중 248억원으로 10위에서 2014년 현재는 6조1천260억원으로 2위에 이르고 있다.

 

가금

가금산업 역시 1960년대에는 뒷마당에서 몇 마리씩 기르던 것에서 시작해 80년대 들어 전업화되기 시작했으며 90년대부터 계열화사업이 시작되어 현재 자동화를 기반으로 한 현대화된 산업으로 변모했다.
서서히 농장의 대형화가 이뤄지기 시작해 현재는 산란계의 경우 대부분이 전업규모 이상의 규모를 갖췄고 100만수 내외의 양계단지도 20여개에 이르고 있다.
육계의 경우 닭고기 생산은 대부분 계열업체와 농가의 계약에 의해 생산되며 21개 계열업체가 국내 닭고기 생산량의 90%가량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육계는 일본, 중국, 미국 등에 비해 출하 체중이 작아 이에 대한 연구과제를 안고 있다.
오리산업의 경우 2011년 생산액 1만3천966억원으로 농업의 7대 산업에 진입하는 성과를 올렸다. 사육수수도 평균 1만2천982수로 대형화가 이뤄졌다. 하지만 오리 사육시설의 현대화에 대한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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