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농협대학교 총장) 건물 옛 모습 그대로 복원 법제화…관광자원 육성 ▶ 천년고도 오비에도(Oviedo)에 입성하다. ( 6월 8일, 17일차 ) 오비에도(Oviedo)는 아스투리아스(Asturias)왕국의 수도였다. 아스투리아스왕국은 서고트의 귀족 펠라요(Pelayo)가 8세기 초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하고 있던 이슬람 세력을 격퇴하고 세운 왕국이다. 오비에도는 천년고도로서 수많은 유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옛 성곽과 옛 시가지가 잘 보존돼 있다. 1985년과 1998년에 오비에도 성안과 인근의 여러 종교건축물 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오비에도 산살바도르 대성당(Catedral de San Salvador de Oviedo)은 서기 781년 프루엘라(Fruela) 왕이 창건했으며, 알폰소 2세가 794년에 수도를 오비에도로 옮기면서 증축을 시작하여 802년에 완공하여 헌정했다고 한다. 이 성당은 신로마네스크양식과 고딕양식 그리고 르네상스양식이 이 혼용된 건축물로서 규모도 상당히 큰 편이어서 당시로서는 대역사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의 입장료는 1인당 10유로인데 순례자에게는 4유로로 할인해줬다. 배낭을 성당 구석에 벗어놓고 이어폰 안내
(전 농협대학교 총장) ▶ 순례길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 6월 7일, 16일차 ) 어느새 16일차, 이제 중간을 넘어섰다. 처음엔 힘들더니 이제 힘든 줄도 모르겠다. 몸이 이제 매일 걷는 것으로 알고 적응이 된 모양이다. 참 신기한 게 사람의 몸인 것 같다. 그러나 몸만의 적응은 분명 아닌 것 같고, 아마도 정신력이 함께 작용하는 것 같다. 나의 경험으로 볼 때 이정도의 운동량이라면 한국에서 같으면 벌써 입술이 부르트고 물집이 잡히고 그랬어야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직은 괜찮다. 처음 나흘째에 입술 안쪽이 약간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는데 잠을 자고나니 말짱해졌다. 정신적인 긴장감을 알아차리고 몸이 비상적인 적응력을 발휘한 게 아닌가 싶다. 물집이 잡혔던 발가락도 다 아물었고, 부르트기 직전까지 갔던 발바닥도 이제 굳은살로 변했다. 사실 지리산 종주나 설악산 등반처럼 정해진 일정도 아니고 매일 25~35km를 걸어야 하니, 나의 정신적 육체적 긴장감은 생애 최고수준이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집안과 지인들에게 산티아고 까미노 850km를 걷겠다고 공언했는데 완주 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자존심 스트레스까지 겹쳐진 것이니, 그 부담감이란 대단히
(전 농협대학교 총장) 젊은이들 떠난 농촌, 우리 실정과 매한가지 ▶ 농촌의 고령화, 공동화(空洞化)는 우리와 같다.( 6월 6일, 15일차) 산에스테반을 출발하여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걸어서 라이슬라(La Isla)를 거쳐 꼴룽가(Colunga)에 당도했다. 배낭을 내려놓고 신발 끈을 풀고 휴식을 취하며 커피향을 즐겼다. 오늘은 그야말로 열심히 걸어서(33km) 목적지인 비야비시오사(Villaviciosa)에 4시경에 도착하여 시내 중심에 있는 콩그레소 호스텔(Congreso Hostel)에 투숙했다. 한 방에 침대가 2개인데 1인당 14유로를 냈다. 시설이 매우 깔끔하고 조리시설도 완비되어 있고 주인여자가 아주 친절했다. 조그만 타운 콜룽가에 들어올 때와 나갈 때 보니 빈집이 많이 눈에 띄었다. 다른 지역에도 빈 가옥이 있었지만 이곳이 특히 더 많았다. 매물이라고 부동산회사가 광고를 붙인 건물과 가옥이 여럿 있다. 새로 지은 아파트 같아 보이는데 분양한다는 광고가 많았다. 아마도 지역개발 붐이 일었다가 경기가 꺾이면서 미분양이 많아진 것으로 짐작된다. 도시지역 뿐만 아니라 농촌지역을 지날 때 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농가가 많이 보였다. 비어있는 축사도
전 농협대학교 총장 해안 초지 위 한가로운 소들과 바다 ‘한폭의 그림’ ▶ 해안의 초지에서 소와 벗하다. ( 6월 3일, 12일차 ) 목장지대를 통과해서 걸었다. 소와 말들이 새벽부터 풀을 뜯고 있는 평화롭고 여유 있는 자연속의 아침이다. 새들도 바쁘게 하루를 시작하는지 이리 저리 날며 지저귄다. 나는 풋풋한 풀냄새와 싱그러운 아침공기에 매료됐다. 1970년대 후반에 안성에 있는 한독낙농시범목장에 근무하던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풀을 벨 때 그 풋풋한 냄새가 여기서도 똑 같았다. 그 풀내음이 얼마나 상큼한지 유심히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대서양 해안을 따라 항구, 해변, 목장, 초지가 이어지는 청정지역이라 공장 등 공업시설은 아예 볼 수가 없다. 입지 여건이 산업지역으로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 보면 개발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 초지를 조성해서 소를 기르는 정도라면 자연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장지대를 지나는 도중에 뻐꾸기 우는 소리를 들었다. 한국의 뻐꾸기와 소리가 같았다. 여기 사람들은 뻐꾸기 울음소리를 어떻게 표현할까 궁금했다. 개짓는 소리를 우리는 ‘멍멍’ 하는데 서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