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사상 최악으로 기록될 이번 AI사태로 인해 국내 가금산업이 휘청이고 있다. 지난 2일 현재 10개 시·도 43개 시·군의 347개 가금농장에서 AI가 발생, 예방적 살처분 농가를 포함해 모두 841농가 3천357만수의 가금류가 살처분 매몰되면서 가금 사육기반이 심각한 손상을 입게됐다.
대량살처분으로 공급량이 급감한 계란 수급안정을 위해 할당관세 적용도 모자라, 운송비까지 지원해가며 계란 수입을 독려(?)한 정부대책을 계기로 100%에 육박하던 자급률 사수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한동안 잠잠했던 AI가 지난달 21일 전남 해남의 오리농장을 시작으로 또다시 추가 발생과 의심신고가 이어지면서 가금업계를 얼어붙게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더 이상 AI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방역과 함께 무너져버린 한국가금산업의 재건 대책도 병행돼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AI의 그늘에서 벗어나 이전의 모습을 조속히 회복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현안과 그 해법은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최악의 AI 사태, ‘심기일전’계기로…현장의 요구들
이번 고병원성AI에 따른 피해는 컸다. 하지만 이것을 국내 가금산업이 더 발전할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 특히 이 소중한 경험을 통해 고병원성AI 재발을 막아내야 하고, 만약 발생했다면, 그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다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중국만 잘 예찰해도
가금류 농장에서 첫 고병원성AI가 발생하기 전, 이미 그 조짐은 나왔다.
첫 발생 5일 전인 지난해 11월 11일, 충남 천안시 봉강천에서 채취된 야생조류의 분변에서 H5N6형 고병원성AI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그리고 지난 2014년 4월 이후 중국, 베트남, 라오스, 홍콩 등 주변국에서는 당시만 해도 생소하기만 했던 H5N6형 고병원성AI가 한창 유행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야생조류 분변에서 고병원성AI 바이러스가 검출된 당일, 방역당국에서는 ‘철새 정보 알림시스템’에 의거해 ‘철새주의’ 단계를 발령하고, 인근 농가를 대상으로 이동제한, 임상예찰, 정밀검사, 일일 소독, 전담공무원 지정·관리, 철새도래지 소독 조치 등 차단방역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방역 전문가들은 “중국만 잘 예찰해도 고병원성AI 발생과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면서 예찰 시스템을 좀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최초 신고시 양성이라도 100% 보상해야
현장에서의 신고 지연이 화를 부르고는 한다.
신고가 늦다보니 강력한 초동방역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농장에서는 왜 신고를 주저하게 될까.
그 첫번째로 거론되는 것은 살처분 보상금제도다.
일단 양성이 확인되면 살처분 보상금이 20% 깎이고 또 다시 질병발생 신고 지연이나 소독 소홀, 방역규정을 위반한 농가 등은 가축전염병예방법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5~100% 감액된다.
살처분 매몰 비용도 큰 부담이다. 매몰비용을 농가에 전가시키는 지자체가 꽤 있다. 그 비용이 수천만원을 훌쩍 넘기고는 한다.
이 때문에 시·군 단위 최초 의심축 신고시에는 양성이라고 해도 살처분 보상금을 100% 지급할 것과 중앙정부에서 살처분 매몰 비용을 지원해 줄 것을 제안하고 있다.
>>상시 살처분 인력 시스템 구축 시급
살처분이 질병 전파 요인으로 지목된다.
발생했거나 발생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방역당국에서는 해당가축에 대해 살처분에 나선다. 당일 살처분이 원칙이다.
하지만 농장이 워낙 대형화돼 있다 보니, 사실상 하루에 농장 내 가축을 모두 살처분하기 힘들 때가 많다. 2~3일 살처분이 길어지면 살처분 인력 등을 타고 결국 바이러스가 외부로 빠져나기기 일쑤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처럼 상시 수의예비군 제도를 도입해 수의사, 수의테크니션, 수의과대학생과 더불어 재난 자원봉사자 등이 온라인 트레이닝, 현장실습 등을 통해 교육을 받은 뒤 유사 시 투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물론 군대, 소방 등을 대상으로 미리 교육해 살처분 인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계란 GP센터 유통 의무화, 대안으로 ‘주목’
이번 AI 사태에서 전파요인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계란유통상인이다. 농장에 하루에도 여러 상인이 들락거리고 상인은 또 이 농장 저 농장을 방문하다보니, 바이러스가 새어나갈 단초가 된다. 계란 뿐 아니라 계분, 왕겨 등을 수송하는 차량도 수시로 농장을 들린다.
이러한 차량을 잘 관리하는 것이 확산을 막을 핵심수단이 된다.
합판, 팔레트 등 오염위험이 높은 사양기구나 장비에 대해 소독 의무화 또는 일회용으로 전환할 것이 제안된다. 특히 계란유통센터를 의무화해 계란유통상인의 농장 출입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소독표준 매뉴얼 보급…사용시 오류 줄여야
질병 확산 과정에서는 소독 미흡도 여실히 드러났다. 특히 소독제 자체의 효능보다는 사용방법 상 오류들이 많이 지적됐다.
예를 들어 차량 소독 전 청소·세척을 실시하지 않는다거나 15~30분 정차대기할 것이 권고되지만,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독약품 희석배율을 잘 지키지 않았고, 사용상 편의 등을 이유로 효능이 떨어지는 소독제를 쓰는 소독시설이 다수 존재했다.
현장 수의사들은 제대로 소독약품을 사용하는 것이 질병을 이겨낼 주요 방법 중 하나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 방안으로는 차량·운전자 동선을 고려해 소독시설 배치, 소독방법 등에서 표준모델을 마련하고, 운영 매뉴얼을 보급해 줄 것을 건의하고 있다. 또한 방역당국에게는 유효소독제를 엄선해 공시해 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위기단계 단순화…방역 신속·유연성 높여야
우리나라의 경우 관심, 주의, 경계, 심각 등 4단계가 있고 발생 현황에 따라 가축방역협의회 등 의견수렴을 거쳐 방역수위가 결정된다.
일본은 그러한 위기단계 구분이 없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고병원성AI 확진 판정 뒤 2시간만에 아베 총리가 ‘철저한 방역’ 지시를 내렸고 강력한 방역조치들이 취해졌다.
물론 방역조치만으로 고병원성AI 확산원인을 돌릴 수 없다. 우리나라 조치가 일본보다 더 미흡하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해도 위기단계를 단순화해 보다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전해진다.
>>컨트롤타워 부재…농식품부 방역정책국 신설을
질병발생 때마다 방역조직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늘 그 때 뿐이다. 특히 컨트롤 타워 부재는 여지없이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언론에서는 컨트롤 타워가 없다 보니 우왕좌왕하다가 이렇게 파탄을 맞게 됐다고 꼬집는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도 방역업무를 진두지휘할 농식품부 내 방역정책국 설립이 고개를 들었다. 특히 국회에서 요구가 컸는데, 국회의원들은 “방역은 축산분야에서 볼 때 규제쪽에 가깝다”면서 “현 산업진흥에 초점을 둔 축산국과는 별도 방역조직이 요구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축방역관 확충 위한 처우 개선 선결과제
지자체 방역인력은 농가와 중앙정부의 손발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머리가 되기도 한다. 방역 핵심이다. 하지만 지자체 방역인력이 너무나 모자라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28개 시·군·구에 208명 가축방역관이 있다. 시·군·구당 채 1명꼴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아예 수의직이 없는 시·군·구도 70개나 된다. 여기에는 축산농가와 가축두수가 많은 시·군·구도 대거 포함돼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지자체 방역인력에 수의사들이 지원을 외면하고 있다는 거다. 결국 처우를 개선해 가축방역관 위상을 높이고, 이를 통해 가축방역관 지원을 이끌어낼 필요성이 있다고 제기되고 있다.
>>휴업보상제·방역세 신설론 ‘고개’ 들어
휴업보상제 카드도 대두돼고 있다.
휴업보상제는 고병원성AI 등 악성가축질병이 활개치는 겨울철 등 일정기간 동안 가금류 사육을 쉬는 농가에 대해 일부 보상해주는 제도다. 한 지자체에서는 고병원성AI 발생에 따라 소요되는 살처분 보상금 등을 감안했을 때 오히려 경제적으로도 이득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재원확보 방안으로는 방역세 신설이 떠오르고 있다.
다만 휴업보상제와 가축방역세가 도입되려면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하고 다른 산업과 형평성도 따져봐야 하는 만큼, 쉽지 않은 여정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가축질병공제제도 도입 힘 받아
가축질병공제제도가 구제역이라든가 고병원성AI 발생을 근절하고, 농가 피해를 줄일 근원적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축산농가가 공제에 가입하면, 지역 수의사가 주기적으로 농가를 방문(연 24회 이상)해 질병을 예방·치료하고, 폐사 시에는 보상하게 된다.
총 비용 중 50%는 농가부담, 50%는 정부지원 형태를 띠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농가의 비용부담이 걸림돌이고 국가예산도 상당히 투입돼야 만큼 질병공제제도 도입에는 쉽지 않은 난관이 남아있다.
>>백신 도입·면역증강제 효능 관심 고조
고병원성AI 백신을 써봤으면 한다는 주장이 현장 수의사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백신을 접종하게 되면 감염축의 바이러스 배출을 줄이고 야외감염 격감과 살처분 최소화 등 장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무증상 감염 나타남에 따라 근절이 곤란해지고 인체감염 우려도 생겨나는 등 단점이 많아진다는 논리다. 특히 상재화를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면역증강제의 경우 가축 면역력을 끌어올려 질병을 이겨내야 한다는 접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