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와 전쟁 속 사라질 뻔한 재래닭, 다시 태동
1980~90년대, 유전자원 수집·품종 연구로 기반 마련
웰빙 트렌드와 ‘우리맛닭’ 보급, 고부가가치 산업 확장웰빙 확장
[축산신문 김수형 기자] 우리나라 토종닭 산업의 역사는 단순한 축산의 역사를 넘어, 식량 주권과 고유 유전자원을 지키려는 노력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비슷한 듯 하지만 토종닭 산업은 육계 산업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으며, 지금의 산업이 유지됨에 있어서 부단히 많은 노력이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 토종닭은 한우와 함께 자체적인 종자를 보유하고 산업화에 성공한 몇 안되는 가축 품종으로 자리매김했다.
◆토종닭의 수난기 (일제강점기~1970년대)
일제강점기에는 생산성 높은 외국 품종 닭이 도입되면서 전통적인 재래닭의 입지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인해 토종닭의 개체수는 크게 감소하며 멸종 위기에까지 처해졌다.
전쟁 이후 나라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가금산업도 발전을 이루기 시작됐다. 1970년대 들어 미국 등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가금류 품종이 대량으로 수입되며 육계 산업과 산란계 산업이 탄생하게 되었고 이들 품종은 좁은 공간에서 사료를 먹고 단기간에 크는 특징이 있었기 때문에 산업용 동물로서 효율이 높았다. 하지만 토종닭은 이들 품종에 비해 성장 속도가 느리고 사육 기간이 길다는 이유로 산업적으로도 외면을 받아야만 했다.
◆토종닭 종자 보존 및 연구의 태동 (1980~1990년대)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육계와 산란계의 도입으로 토종닭의 설자리가 매우 좁아졌지만 1980년대 들어 토종 유전자원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토종닭을 보존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정부와 학계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재래닭 유전자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사업을 전격적으로 추진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등이 공동으로 참여해 재래닭 육용화 연구 사업 등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 연구는 단순히 토종닭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산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개량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시기부터 토종닭의 정의를 명확하게 하고, 일반 닭과 구별되는 품종적 특성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이뤄졌다. 이는 훗날 ‘우리맛닭’과 같은 토종닭 품종을 개발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산업화와 고부가가치 창출 (2000년대 이후)
2000년대 들어 웰빙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쫄깃한 식감과 독특한 풍미를 가진 토종닭의 장점이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저렴한 고기를 찾는 것을 넘어 맛과 건강을 중시하게 됐다.
2000년대 후반부터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이 개발한 ‘우리맛닭 1호’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우리맛닭’은 기존 재래닭의 단점인 느린 성장 속도를 개선하면서도 토종닭 특유의 뛰어난 육질을 유지하도록 육종된 품종이다. 우리맛닭의 보급은 토종닭 산업화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현재 토종닭은 주로 백숙이나 닭볶음탕 등 외식용으로 소비되다가, 훈제나 삼계탕용 HMR(가정간편식) 등 다양한 가공식품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육계에 비해 여전히 낮은 시장점유율, 그리고 ‘토종닭’의 기준을 둘러싼 혼란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토종닭 산업의 발전은 단순히 경제적인 의미를 넘어 우리나라 고유의 닭 종자를 확보하고 육성했다는 점에서 식량 주권과 생물자원 보존이라는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축산신문, CHUKSAN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