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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

<기고> 꿀벌 건강을 지키기 위한 과학적 접근

[축산신문 기자]

정제원 교수
경성대학교 스마트바이오학과                                     

 

생태계를 떠받치는 작지만 위대한 존재, 꿀벌

꿀벌은 우리가 매일 누리는 식탁 위의 풍요로움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생명체이다. 전 세계 식량의 약 30%가 꿀벌과 같은 수분 매개 곤충에 의해 생산되며, 이는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연간 수천억 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꿀벌의 개체수가 전 세계적으로 급감하고 있으며, 이 현상은 단순한 꿀 생산량 감소를 넘어서 생태계의 균형과 인류의 식량 안보에까지 위협을 가하는 중대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꿀벌 감소의 원인으로는 살충제 남용, 병원체 및 기생충 감염, 서식지 파괴 등이 지목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후 변화가 이러한 모든 요인들과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꿀벌에게 치명적인 스트레스를 주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특히 꿀벌의 생존력과 회복력을 결정짓는 영양 상태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으며, 이를 평가하고 개선하는 일이 꿀벌 보전 전략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꿀벌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 변화의 그늘
기후 변화는 꿀벌에게 매우 복합적인 위협으로 작용한다. 고온 현상은 꿀벌의 날갯짓을 어렵게 만들고, 내부 온도 조절 실패로 군집 전체가 붕괴로 이어진다. 갑작스러운 폭염이나 한파와 같은 이상기후는 꿀벌의 생체 리듬을 깨뜨려 산란기와 활동시기를 혼란스럽게 만들며, 결국 번식과 군집 유지 능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또한, 불규칙한 강수량 변화도 꿀벌의 주요 먹이원인 꽃의 개화 시기와 양을 변화시켜 꿀벌의 먹이 수집을 방해한다. 예를 들어, 가뭄은 꽃이 제대로 피지 못하게 하고, 폭우는 꽃가루를 씻어내 꿀벌의 활동을 제해한다. 특히 꿀벌은 특정 시기와 위치에 개화하는 꿀샘식물(밀원)에 크게 의존하는데, 기후 변화로 식물의 개화 시기가 꿀벌의 활동 시기와 어긋나면서 먹이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은 결국 꿀벌의 영양 불균형으로 이어지며, 면역력 저하 및 질병 감수성 증가를 초래한다.
 

꿀벌 건강, 이제는 보이지 않는 '신호'까지 읽는다
과거에는 꿀벌의 건강 상태를 겉모습이나 행동을 통해 추정했다면, 오늘날에는 꿀벌 체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최첨단 생명과학 기술이 도입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대사체학(metabolomics)’이다. 대사체란 생명체 내부에서 만들어지거나 분해되는 모든 작은 분자 물질들을 말하며, 이를 총체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대사체학이다. 꿀벌이 먹은 음식이 소화되고, 에너지를 만들고, 면역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물질들이 생겨나는데, 이 물질들의 변화를 정밀하게 측정하면 꿀벌이 어떤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어떤영양소가 부족한지를 매우 정확히 알 수 있다. 다시말해, 꿀벌이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몸속에서 보내는 ‘도움 요청 신호’를 읽을 수 있는 방법이 바로대사체학이다.
 

먹이의 질이 꿀벌의 스트레스를 결정한다
본 연구팀은 꿀벌에게 다양한 조건의 먹이를 제공하고, 꿀벌의 몸속 대사 물질 변화를 비교 분석했다.
예를 들어, 단순 설탕 용액만 먹은 꿀벌과 설탕에 꽃가루를 추가한 꿀벌을 비교했을 때, 눈에 띄는 차이가 나타났다. 설탕만 먹은 꿀벌에서는 스트레스 관련 물질이 증가함에 따라 에너지 소비가 많아졌고, 회복이나 방어와 관련된 대사물질들은 부족한 상태였다. 반면, 꽃가루가 포함된 먹이를 먹은 꿀벌에서는 항산화 물질, 면역 관련 아미노산, 신경계 조절 분자 등 꿀벌 건강 유지에 중요한 대사체들이 풍부하게 나타났다. 이는 꿀벌이 단순한 당분만으로는 건강을 유지할 수 없으며, 다양한 영양소가 포함된 먹이를 통해 더 강하고 회복력 있는 상태를 유지할 수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불어, 기후 변화로 인해 먹이원이 줄거나 질이 나빠지면 꿀벌의 체내 스트레스도 높아 생존 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게 된다.
 

꿀벌을 지키기 위한 과학 기반 대응 전략
대사체학과 같은 정밀 기술은 꿀벌의 건강 상태를 조기에 진단하고, 맞춤형 보전 전략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 꿀벌의 체내에서 면역 관련 물질이 감소하고 있다면, 해당지역에 맞는 꿀샘식물을 조성하거나 꽃가루 성분을 강화한 인공 먹이를 공급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사람의 혈액 검사 결과를 기반으로 영양제나 식단을 조절하는 것과 유사한 원리다. 또한, 이러한 데이터를 축적하면 기후 변화에 강한 꿀벌 품종 선정, 지역별 영양 처방, 스트레스 저항력 높은 먹이 개발 등의 연구도 가능해지며, 장기적으로는 꿀벌 생태계를 보다 회복력 있게 만들 수 있다.
 

작은 꿀벌이 다시 자연 속을 날 수 있도록
기후 변화는 더 이상 머나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이다.
꿀벌은 그 영향의 가장 민감한 척도 중 하나로 꿀벌이 사라지면, 우리의 식탁에서 사라질 과일, 채소, 곡물이 늘어나고 생태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꿀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단지 양봉업자나 과학자의 몫만이 아니며 정부, 학계, 산업계, 시민이 함께 꿀벌 서식지를 보호하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며, 꿀벌의 건강을 정밀하게 살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그 첫걸음은 꿀벌의 몸속에서 들려오는 작은 신호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지구의 균형을 지탱하는 이 작은 생명체가 건강하게 날개를 펼칠 수 있어야, 인류의 미래도 함께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축산신문, CHUKSA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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