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산업 새 패러다임 도래…품질관리 지원 등 구심체 역할 강화 사료원료 무관세·부가세의제매입세액 공제율 상향조정 시급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소회는 ▲50년 동안 사료량 증가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1인당 GNP가 61년 78불에서 2010년에는 2만불로 260배나 늘어난 것에 비해 사료 생산량은 62년 7천800톤에서 2010년 1천7백50만톤으로 무려 2천200배나 늘어났다. 국민소득의 질적·양적 성과 더불어 사료 생산 증가율은 엄청난 것이다. 배합사료산업은 1960년대 태동기를 거쳐 70년대 시설근대화 시기, 80년대 고도성장기, 90년대 안정·성숙단계를 지나 2000년대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래했다고 볼 수 있다. -년대별로의 상황을 자세히 소개한다면 ▲60년대인 태동기에는 62년 외국의 잉여농산물인 옥수수, 수수 1만7천500톤을 수입, 서울 용산에 일산 100톤 규모로 최초의 근대적 배합사료 공장이 신설됐다. ’62년 사료생산량이 7천814톤에서 69년에는 36만6천톤에 이르렀다. 이에 앞서 ’61년 7월 3일 5개 사료공장 중심으로 발기인 총회를 개최, 한국사료협회가 창립됐다. 70년대인 시설근대화시기에는 사료협회 구매사절단이 미국을 방문, 사료원료 무역거래를 협의하는 등 국가간 무역거래에 의해 사료원료를 개척하는 시대를 열었다. ’93년에는 산업규모 확대에 따라 서울 남대문로에 자체회관을 마련했다. 특히 ’75년에는 국제곡물파동을 계기로 사료가격 안정을 위해 옥수수 가격 안정기금을 설치·운영하는 등 축산진흥회(축협) 태동의 기반을 마련했다. 한마디로 축산업 발전의 모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77년에는 농수산부가 배합사료공장 시설 근대화 계획을 추진함으로써 사료업이 산업화의 길로 진일보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80년대는 고도성장기로 사료산업의 생산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사료원료 수입체계를 실수요자 체제로 전환이 추진되고, 협회 사업내용 증가에 따라 사료회관을 남대문로에서 서초동 현재의 건물로 이전했다. 85년에는 사료기술연구소가 설립되는데다 배합사료 생산량 최초로 1천만톤을 돌파했다. 90년대 안정·성숙단계에서는 축산업 개방화(UR) 시대 본격 도래에 따른 사료생산 절감노력이 협회의 주요 업무로 대두됐다. 한편으로는 사료의 품질·안전성 제고에도 크게 기여하면서 배합사료 생산량이 1천500만톤을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98년 사상 초유의 IMF 사태를 맞아 배합사료 생산량이 처음으로 감소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97년 1천5백85만톤에서 ’98년 1천4백53톤으로 준 것이다. 2000년대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래되어 사료산업의 해외진출에서부터 사료의 위생·안전성, 방역 등 새로운 경영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방안 모색이 협회의 주요 임무로 자리잡게 됐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앞으로 새로운 50년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게 되는데, 각오나 다짐은 ▲축산·사료산업의 패러다임의 변화가 오고 있다. 축산물 소비자 구매패턴의 변화라든가 가축질병에 대비한 방역시스템 강화, 국내·외적인 환경규제 강화, DDA·FTA 등 시장개방화 시대가 개막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협회는 사료의 소비자인 축산농민을 넘어 축산물 소비자란 인식으로 ‘사료의 품질·위생 안전성 제고’를 위한 회원사 목표를 지원하는 원료 및 제품에 대한 관리기능을 확대 강화하고 있다. -축산업과 사료산업은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인데 ▲축산과 사료는 쌍두마차로서 함께 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바늘과 실의 관계이다. 축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일본과 같이 사료원료에 대한 무관세를 추진함과 함께 사료 부가세의제매입세액 공제율을 상향조정하는 등의 세제개선을 해야 한다. -협회와 회원사의 관계도 마찬가지일텐데 ▲협회는 회원사의 공통문제를 풀어내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현장 중심의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2개월간 전국의 사료공장을 순회했다. 이들의 목소리를 잘 들어 정책적으로, 실무적으로 문제를 찾아 회원사가 불편없이 경영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